식집사의 일상을 시작한 이야기
너는 내가 태어나기 전, 아니 더 아득히 오래 전부터 이 세상에 존재했지. 수많은 생명들의 양분이 되고, 또 이 행성을 산소로 채우며 유일무이한 기적의 별로 만든 주역이었겠지만..
태어나서 내가 제일 처음 본 빛깔은 초록이 아니었겠지만(숲에서 태어나진 않았을 테니까).
그래도 내가 밖에서 뛰어놀 때나 친구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낼 때, 외출을 했을 때 찍힌 사진들에는 초록이 적어도 하나 정도는 포함돼 있었을 거야.
정말 하나도 관심있지 않았다, 이직을 하기 전까지는. 막연히 자연 속에 있는 건 좋아했지만 초록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내 삶에 끌어들일 줄은.
고대하던 싹을 틔워 기쁨에 겨워 하고, 물은 얼마나 줘야 하는 건지 폭풍 검색을 하고,
뜻밖에 새 잎을 밀어올리면 희망에 부풀어 보고 또 쳐다보고. 외출하면 돌아와 제일 먼저 새순의 키를 재어보고 할 줄은.
그러다 열정이 식어서 물 주는 걸 잊기도 하고 번거롭게 느끼기도 하다가, 삶이 잠시 터널 속을 지날 때는 나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워 외면하기도 했던 날들도 있어서. 마른 잎이 바스락 거릴 지경이 되어서야 돌아보며 크게 후회했던 적도.
누가 뭐래도 초록이들은 지금 나에겐
떼래야 뗄 수 없는 동반자가 되었다.
삼년 전, 이제 사 년이 다 되어 가네.
난데없이 이직을 하고 새 환경에 반 강제로 적응해야 했을 때. 알던 언어와 알쏭달쏭한 옛 고어들 사이를 하루종일 헤매며 나 혼자는 너무 크고 또 너무 좁게 느껴지던 그 방에서. 사람들이 축하한다며 보낸 쌩뚱맞은 그 선물들 사이에서. 나는 처음으로 낯설고도 친숙한 초록의 얼굴을 본 것 같아.
그때 예감했지.
연약한 너희들 틈을 비집고 나도 부지런히 내 힘으로 내 잎을 밀어올리는, 꼭 그래야만 하는 존재로 다시 돌아왔구나 하고.
*오늘 물을 주다가 문득, 식물들과 함께했던 몇 년 간의 이야기를 적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고마운 건 사람만이 아니겠죠.
배울 수 있는 존재도요.
잊고 싶지 않아 여기다 차근히 기록해보려 합니다.
이 이야기들은 다른 어디에도 진지하게 해 보거나 적어본 적 없는, 브런치에서 처음 시도하는 글의 종류가 될 것 같아요.
부끄럽지만, 사람은 아니지만 내겐 너무나 뜻깊고 사랑스런 그들에 대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