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얼굴의 난초

식물이 내게 처음 얼굴을 들이민 날

by bbj

2021년 9월 직업이 바뀌었고, 축하 기념으로 난초 2개를 선물 받았다. 예전에 근무하던 곳에서 나를 참 잘 챙겨주시고 아껴주시던 분과, 새 소속이 된 직장의 여ㅇㅇ회에서 보내준 것이다.


첫 번째 난초는 잎이 부드럽고 새순도 풍성하게 솟아 났지만 두 번째는 뻣뻣하고 영 까탈스러웠다.

(편의상 1,2번으로 부른다면) 1번은 날 잘 이해하고 있는 이가, 2번은 잘 모르는 이가 그럴싸한 걸로 보내준 게 티가 났던 것이다.


그 전까지 화분이란 걸 키워본 적도 없고 생전 관심도 없었기에 그 선물들에 적잖이 당황했다.

법정 스님의 수필 무소유에서나 얼핏 보고, 매난국죽 사군자의 하나고, 지긋한 교장선생님 혹은 퇴임 직전 교수님들 곁에나 어울릴 법한 화분이 떡하니, 두 개나 생기다니..


그걸 보며 생각했다. 아 이제 난 ‘강제로’ 이 알듯 모를듯 우아한(척하는) 난초들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건가보다, 하고 말이다.

그래도 생명이기에 혹여나 나의 부주의함과 무성의로 죽기라도 할까봐 필사적으로 공부하고 물을 주며 돌봤다. 특히나 1번은 정말이지 죽는다면 속상할 것만 같았다. 다행히 무난한 성미라 잘 이겨냈지만..


2번이 문제였다. 물을 준다고 줬는데도 잎 끝이 마르기 시작하니. 포기하려 할 때쯤, 입사동기인 분들이 다 같이 받은 여ㅇㅇ회의 난들이 죄다 죽거나 반토막이 나는 걸 보고 ‘나라도 살려 내자’며 열심히 물을 주고, 영양제도 사서 꽂아뒀다.


다행히 둘은 잘 살아남아, 직장이 아닌 우리 집 베란다에서 온 식구들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아직까지도 난초에 대해 잘 모르겠다. 여러 문학작품에서 끊임없이 우아하다고 칭송하고, 우리 아파트 2층은 수십그루 난초를 키우는 게 훤히 보일 만큼 애호가들이 많은 데도, 대체 매력이 뭘까..


뭐 당장 알게 되길 원하지도 않고 평생 몰라도 좋을 것 같지만, 내 난초들이 내게 새겨준 것은 우아함이나 고상함과 거리가 먼

‘살아있는 것이니 어떻게든 죽지만 말고 살리자’는 일념 그 하나였다.

그게 어디서 오고 누가 보내줬고 어떻게 생긴 것이건, 살아있는 생명이었으니까.


그건 어쩌면 새 환경에서 어떻게든 나를 잃지 말고 살아가라는, 세상이 내게 주는 메시지 아니었을까.


좋건 싫건 그 환경에 너는 처했으니,

아직 연약한 너자신을 쉽게 포기하지 말고 그 자리에 걸맞는 사람이 힘껏 되어 보라고.

내게 안겨진 쌩뚱맞은 난초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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