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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 Oct 19. 2016

나의 룸메이트 연대기

그 많은 방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지었다

두 손을 쫙 펴고, 거기서 손가락 하나를 접어본다. 서울에 올라온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나와 방을 나눠 썼던 이들의 수. 가장 짧게는 두 달, 길게는 1년 9개 월. 서울은 방 몇 칸짜리 집을 쉽게 허락해주지 않는 곳이고, 나는 그 방 하나 조차 혼자 쓰기엔 사정이 녹록지 않았거든.

 

기대에 부풀어 상경한 촌뜨기가 서울에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은 타인과 공간을 나누는 법이었다. 정확히 2분의 1로. 왼쪽 벽과 오른쪽 벽에 침대와 책상을 붙이고, 화장실 변기 머리 부분에 목욕 바구니 두 개를 나란히 놓는다.

 신발장이 6줄이 있다면 눈치껏 3줄만 채운다. 가끔 침대와 침대 사이 남는 공간에 빨래 건조대를 놓을 땐 양해를 구해야 한다. 그곳은 통행을 위한 그린 필드인데, 내 물건이 침범했으니까.

 

그러니 내 몸을 뉘일 곳은 딱 한 군데, 침대 위뿐이다. 양팔과 다리를 벌리면 삐죽 튀어나오고 마는,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자는 내겐 넉넉지 않았던 싱글 침대. 자연히 센티해지는 밤이 많았다. ‘나한테 허락된 공간은 대체 몇 제곱미터인가’ 상심하면서 말이다.

 

서울의 거대함에 압도됐다가 내 작은 방에 갑갑해했다가, 집에 대한 향수까지 겹쳐 마음은 시도 때도 없이 널을 뛰었다. 그렇 게 몸살을 앓다 옆을 돌아보면 곤히 잠든 룸메이트의 얼굴이 보였다.



 




내 오랜 룸메이트 역사의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고향이 가까운 한 살 위 언니였다. 구성지게 사투리를 쓰며 좌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 타고난 인사이더. 안 친한 사람 앞에서 뻣뻣이 굳어있는게 취미인 나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농담을 던지는 언니가 무척 경이로웠다. 농담을 들은 사람들은 이 내 무표정을 풀고 언니와 급속도로 친해졌기 때문에 언니는 친구도, 아는 동생도, 언니 오빠도 많았다. 우리의 방은 언제나 친구들로 북적였다.

 

낯선 사람이 아는 사람이 되고, 아는 사람이 친구가 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해가 바뀐 후엔 언니의 룸메, 내 룸메, 언니 친한 동생과 그의 룸메 등등 ‘어떻게 이렇게 모였지’ 싶은 이들이 만나 파전을 먹으러 다녔다. 그녀는 평생 모르고 살아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실 하나씩을 매어주고, 그것들이 얽히고설켜 저절로 이어지게 만들어주었다.

 

언니만큼 나도 좋은 룸메이트가 되고 싶었다. 나처럼 불안한 것도 많고, 걱정도 많던 두 번째 룸메이트에게. 하지만 실패했다. 그 아이는 스무 살인데도 나 보다 열세 배는 어른스러웠다. 라섹 수술 후 눈물을 질질 흘리며 누워 있는 나를 위해 기숙사 급식을 받아다 놓았고, 다음 룸메이트와의 불화를 견디지 못하고 엉엉 우는 나를 매번 토닥여주었다. 나는 기껏해야 그 애가 가보지 못한 서울의 명소들이 어땠는지, 연애를 하면 어떤 기분인지 같은 시덥잖은 이야기밖에 해주지 못했는데. 온몸과 마음으로 의지했던 건, 서울에 갓 올라온 그 애가 아니라 나였다.

 

그렇다. 사람을 만나는 데도 ‘뽑기 운’이란 게 존재한다면, 나는 신의 예쁨을 많이 받았던 게 틀림없다. 1/2로 나눠진 공간에서 선을 긋는 대신 마음을 건네주는 이들이 더 많았으니까. 물론 공평한 분 아니랄까봐 엄청난 난제를 내리시기도 했다. 죽을 때까지 좋아할 수 없을 것 같은 룸메이트를 보내신 것이다.

 

갈등의 발화는 매우 사소했다. 책상 위에 핸드폰을 올려놓고 문자를 쓰고 있는데, 등 뒤에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아, 시끄러워.” 무음인데…? 손가락이 스마트폰 액정에 닿는 ‘톡톡’ 소리가 시끄럽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도 그녀는 자주 한숨을 쉬었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거슬린다는 티를 냈다. 모든 행동에 눈치가 보였다. 그 애는 나를 배려 없는 애라고 생각했을 거고, 나는 저게 일상생활이 가능한 예민함인가 의문을 품었다.

 

스트레스는 빠르게 미움으로 번졌다. 아무렇지 않게 남의 옷차림을 지적하고 궁금하지도 않은 물건을 보여주며 자랑을 늘어놓는 행동이 혐오스러웠고, 얼굴도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그냥 학교에서 만나 같이 수업을 듣고 헤어지는 친구였다면 그러려니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활의 영역에선 그런 너그러움이 잘 발휘되질 않았다. 위태위태한 동거는 쓰레기통을 발로 차고 악을 지르는 ‘개싸움’을 벌인 후에야 막을 내렸다.

 

사실, 방을 나가는 날 유치한 복수를 단행했다. 걸핏하면 내 옷장을 보고 칙칙 하다고 오지랖 떨던게 괘씸해서 걔의 신상 원피스 겨드랑이 제봉선을 반쯤 뜯어놓은 것이다.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팍 뜯겨나가라 주문을 외우면서. 커터칼로 실을 살살 자르는데 더럽고도 복잡한 기분이 밀려들었다. 죄책감과 더불어 알고 싶지 않았던 나의 미운 얼굴을 확인한 느낌. 그러나 끝내 손길을 멈추진 않았다. 내가 이렇게 의지가 강한 인간이었다니. 그것도 처음 알았다.





 프로이트는 “마음은 빙산과 같다.”고 했다. 의식할 수 있는 자신과 이성은 물 표면에 떠 있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그 아래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무의식이 있다는 뜻이다. 그의 모든 이론에 동감하진 못하지만, 9명의 룸메이트를 거치며 그 말만은 뼈저리게 이해하게 됐다.

 

사람은 사람과 부대끼며 미처 몰랐던 수면 밑의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 사람이 너무 고맙고 좋아서 평소와 다른 나를 끌어내 서투르게 애정 표현을 하기도 하고,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 을 때 상상도 못했던 행동을 저지르기도 한다. 어떨 땐 최악의 얼굴로 자신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남의 원피스를 망가뜨리는 그런 모습으로.


그동안 누군가에게 룸메이트 연대기를 읊을 때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참 다양한 사람들을 알아왔구나.

 하지만 그 아홉 명을 통해 가장 많이 알게 된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내가 얼마나 소심하고 사람을 사귀는데 서툰 인간인지, 배려가 부족해 타인을 힘들게 할 때가 있다는 것도. 견딜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좋아하는 인간과 싫어하는 인간, 나의 좋은 점과 나쁜 점…. 혼자서 앉아 골똘히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끝내 알지 못했을 면면들을 한 방에서 살을 맞대고 살아온 그들이 펼쳐서 보여주었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나를 잘 아는 것은 내가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나의 방이었다.
나를 서울에서 살아내게 만들었던, 나를 자라게 한 사람들.


들어갈 때마다 마음이 포근했던 방도 있고, 문 여는게 두려웠던 방도 있지만 그 많은 방들이 모여 오늘의 나를 지었다고 믿는다.

 

지금은 슈퍼싱글 침대를 혼자 차지하고 누워, 소리를 한껏 키우고 드라마를 본다. 씻고 나와선 나체로 집안을 활보하기도 한다. 기분이 진짜 좋은 날엔 춤도 춘다. 저기서 내 고양이 룸메이트가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지만 괜찮다. 저 친구는 나한테 전혀 관심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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