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선물

아닌척, 내심 기다리고 있을 사랑하는 사람들

by 이은경



촌사람, 옛날사람인지라

누가 먼 곳으로의 여행을 다녀왔다는 얘기를 들으면 혹시 작은 선물을 준비해오지 않았을까. 작은 기대를 한다.

해외여행이 작정하고 붐을 일으키며 너도나도 한 번씩 다녀오기 시작하면서, - 어쩌면 내 주변 사람들만의 얘기인지는 모르겠다. - 그들이 여행 후에 쥐어주는 작은 선물에 며칠 동안 내내 행복해진다.


그랬으면서 호기롭게

'요즘 누가 해외간다고 선물 사와? 난 선물 없음!' 이라고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연히 사오려고 했었다. 당연히 당연히.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고. 이 사람도 주고 싶고, 저 분은 꼭 챙겨야 할 것 같고.

그렇게 욕심이 뭉게뭉게 커져갔다. 문제는 세 가지였다.


1. 도대체 어떤 선물을 주면 좋아할지 요것과 저것 사이의 갈등이 끝이 없다. 결국에는 흔해빠진 열쇠고리를 집어들 수 없을만큼 여행자들은 많은 고민을 한다. 콕 찝어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주문을 주고받는 편한 사이가 아닌 다음에야 받는 사람이

'어머어머, 나 이거 정말 갖고 싶었는데'

혹은

'우와, 정말 멋지다. 진짜, 고마워'

요 정도의 리액션이 나올 수 있는 선물을 모든 사람에게 딱 맞게 구하기가 어렵다는게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내게 가장 어려운 부류는 초등학생 여자아이 그룹과 60대 중년남성의 취향이었다. 조카들 중 여자아이들이 몇 있는데, 도대체 무얼 좋아할지 감이 안온다. 여행 내내 기념품샵을 기웃거리며 고민한 끝에 콜로세움이 예쁘게 그려져 있는 손거울을 사긴 했는데, 그 아이들이 손거울을 사용하기는 할지 지금도 의문이다.

또 하나 어려웠던 60대 중년남성은 바로 친정아부지와 시아부지. 두 분은 동갑내기에 체형도 비슷하시고, 그럭저럭 형편도 비슷하신 듯 한데, 도대체 어떤걸 좋아하실지 감이 안온다. 때마다 넣어드렸던 현금 봉투가 가장 쉬웠어요.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해외 다녀왔다고 봉투에 유로를 넣어 선물로 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30대인 남편 몸에 이리저리 대어보며 간신히 넥타이 하나씩을 골랐고, 저렴하긴 하지만 나름 이태리 넥타이라며 선물해드렸더니 기뻐하셨다. 정말 기쁘셨을지, 진짜 메고 다니실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2. 요래조래 따져보니 선물값이 만만치가 않았다. 선물이라는게 늘상 그렇듯 사는 사람의 수고와 고민과 지출에 비해 받는 쪽에서는 그만큼의 가치가 느껴지지 않는 법인데, 그 넓고 넓은 유럽 땅에서 가성비 좋은 선물을 알뜰하게 구해낸다는게 일종의 미션처럼 느껴졌다. 저렴한 파스타는 부피가 너무 크고, 부피작고 예쁜 가죽지갑은 선물하긴 비싸고. 하나씩 볼 땐 괜찮은 가격이다 싶다가도 모임에 하나씩 다 드리고 싶어 계산해보면 만만치가 않아 슬그머니 다시 내려놓았다. 감사했던 마음에 비하면 심하게 저렴한 가격의 선물을 끝내 집어들고는 내 마음을 계속 다독인다.

'이 정도면 됐어. 좋아해주실거야. 고마워해주실거야. 더 좋은 것은 다음 기회에 드리자.'

그러면서도 맘이 편치는 않았지만, 이게 지금 상황에서 최선이라며 맘을 다잡는다.


3. 도대체 누구에게까지 선물을 줄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는 피를 나눈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이 심플하니 좋다. 선물을 할지말지 고민하지 않게 해주어 좋다.

<당연히 무조건 선물해야하는 사람>

<선물을 줄거라 기대하고 있을 사람>

<꼭 선물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할 것 같은 사람>

<선물받을거라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을 것 같지만, 주면 완전 깜짝놀라며 좋아할 사람>

<안해도 되지만, 선물하고 싶어지는 사람>


선물 고르기 미션 수행 중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저 그룹들과의 밀당. 넣고 빼기를 무한 반복, 이 그룹에서 저 그룹으로 왔다갔다를 하기도 하고, 없던 사람이 리스트에 오르기도, 있던 사람이 없어지기도 했다. 그건 모두 내 머릿 속에서 그 날의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조정되고 있었기에 기념품샵에 들어가 예쁜 것들을 볼 때마다 내면의 갈등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만 이렇게 복잡한가 싶어 남편에게 물었다.

'선물 드려야할 분이 몇 분?'

대답은 심플했다.

'선물해야되?'

'주면 다들 좋아하시지. 빨리 결정해.'

'무난한 걸로 10개만'


남자들에 둘러싸여 살면서 이제 남자의 언어에 왠만큼 적응됐다 생각했는데, 여전히 헉 하는 순간이 많다. 바로 이런 때. 누구에게 어떤 걸 선물하고 싶고, 좀더 신경써서 사야할 것과 아닌 것이 몇 개인지. 그런 개념 자체가 없다는게 신기하다. 10개를 사서 누구에게 줄건지, 모두 같은 그룹의 사람들인지 아닌지, 어떤 정보도 중요하지 않았다. 안 줄 수 없는 사람이 10명이라는 얘기인 듯했고, 그걸로 끝. 단순해서 좋겠다.


그렇게 고심끝에 선물을 이것저것 골라왔다. 양가의 어머님들께 드릴 유명하고 고급스런 영양크림도 샀고, 대학 친구들과 똑같이 바르고 다닐 립스틱도 샀다. 요리 좋아하는 동네 언니를 위한 파스타면을 샀고, 아이들 친구들 모임에 하나씩 주고 싶어 아이들 취향의 깜찍한 연필깎이도 샀다.


선물이라는게 주려고 보면 생각보다 초라하고 별것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다. 명색이 유럽대장정을 마치고 돌아와 작은 손거울 하나 내밀었다는게 서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럼에도 고맙게 받아주고, 정말 예쁘다며 호들갑 떨어준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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