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남녀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by 이은경


스물 다섯, 눈부신 청춘일 때 누비던 거리에 다시 와 서 보니 더 이상 청춘이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실감한다. 애써 아니라 생각하려해도 그냥 그게 사실인거다.


여기서 말하는 청춘은 딱 그런거다.

인생은 육십부터라던가, 마흔이면 아직 청년이네. 뭐 그런 의미가 아닌거다. 결혼하지 않았으며, 애인이 있을수도 없을수도 있지만 언제든 새로운 이성을 향해 마음과 촉각이 열려 있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는 작은 기대를 가지고 여행을 나선 이들. 그들을 잠정, <청춘남녀>라 부를란다. 그들에겐 여행일정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해줄 의상도 매우 중요하고, 기회가 있다면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일에 적극적인 태도도 필요하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끌벅적, 와글와글한 게스트하우스의 불편함도 마다하지 않는 것은 그 곳에서 만나고 스치게 될 새로운 인연들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인연들이 모두 이성교제를 염두에 둔 것은 물론 아니다.. 우연히 동경하던 직장에 다니는 사람을 만나게 되기도, 고향 후배를 마주치게도 된다.


한국인들이 유난히 많이 모이는 곳이 좀 있다.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언덕, 스위스 인터라켄 동역, 로마의 천사의 성의 밤.. 돌아보면 한국인이고, 그곳을 오가는 버스 안에는 한국인들로 가득하다. 그런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중 하나는 서로를 알고.싶어하는 청춘남녀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다.


"전공은 뭐에요?"

"(지나치게 새침한 표정으로)맞춰보세요"

"음, 피아노?"

"하하, 아니에요."


맘에 드는 이성을 드디어 만난 탓일까, 좀 컸던 목소리 덕분에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는 내가 다 설레어 걸음을 멈추었다. 서로에 대해 궁금해 견딜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나씩 질문을 주고받는 20대 초반의 풋풋한 청춘남녀들. 나도 저랬던 적이 있었지, 라는 짧은 회상과, 이젠 저럴 일이 없구나, 긴 아쉬움. 아쉬워하지 말라며 내 옆을 번갈아 지키고 있는 나의 세 남자들.


그들의 젊음과 청춘과 호기심과 반짝이는 눈이 부럽고 예뻤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른다더니, 내가 그리 이쁘고 반짝이던 시절엔 그냥 모든 이들이 그렇게 반짝거리며 사는 줄만 알았다. 다들 그렇게 하루하루가 즐겁고 호기심 넘치고 기대가득하며 사는 줄 알았다.


그 시절을 지나 여유와 편안함과 지루함과 평범한 일상을 꾸리며 살아보니 한 때지만 반짝이던 시절이 있었음에 감사하게 된다. 돌이켜 볼 예쁘고 추억 가득한 청춘남녀 시절이 있었던게 기분 좋아진다.


저들도 모를 것 같다. 저들이 지금 얼마나 반짝이는지. 저들이 얼마나 예쁘고, 멋지고, 사랑스러운지. 훗날 얼마나 지금의 자신들의 모습을 그리워하게 될지 지금은 정녕 모를 것이다.


전공이 뭐냐며 질문을 이어가던 남학생 둘, 여학생 둘들은 이내 친해져 깔깔거리며 웃었고, 그 날의 일정을 함께 하기로 했는지 예쁘게 나란히 함께 걷는다. 그들이 어떤 인연으로 발전했을지, 하루의 좋은 여행 친구로 끝났을지 궁금해진다. 어떻대도 좋다.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된다. 잘하고들 있는거다. 그러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청춘남녀의 모습을 실컷 볼 수 있어 참 좋았다. 그들의 설레는 눈빛을 잠시지만 함께 느낄 수 있어서 나도 설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