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동네에서 아이 친구 엄마로 알고 지내는 사이에는 굳이 교사라는 걸 먼저 말하지 않는 편인데,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공개되는 순간이 결국 온다. 상대는 대부분 좀 놀라고 새삼스러워한다. 칙칙한 패션에 허구헌 날 놀이터를 지키며 남편 욕을 해대던 평범하기 그지없는 아줌마가 알고 보니 교사라니, 교사에 대한 환상을 깨부시는 그 순간이 제일 미안타. 내 잘못은 아닌데 미안해진다. 환상이 깨지고 현실로 돌아온 동네 엄마들은 순식간에 상담을 원하는 학부모로 돌변하여 평소 교사에게 궁금했던 질문들을 해대는데, 보통 두 가지의 질문이 단골이다.
“애들 공부는 어떻게 시켜야 되요?”
나도 모른다. 반에서 유난히도 죽어라 책을 읽던 아이들이 일류대에 턱턱 들어가더라는 경험에 의존한 어설픈 통계를 내놓는다.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히라는 유치원생도 할 수 있는 평범한 답을 내놓고는 부끄러워 죽겠다. ‘할 놈은 하고 안할 놈은 죽어도 안한다. 어떻게 시켜야할지 나도 아주 그냥 답답해 죽겠다. 할 놈인지 안할 놈인지 궁금해 죽겠다. 일단 방치 중이다.’ 이렇게 말할 순 없지 않은가. 첫 번째 질문은 대충 얼버무리며 패쓰.
“선생님들 정말로 커피 한 잔도 안 받는 거 맞아요? 다음 주 상담인데,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말라고는 하는데 정말 빈손으로 가도 될지 너무 고민 돼서 묻는 거에요.”
이런 질문 자신 있다. 촌지의 역사는 김영란 여사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뭔가 애매하고 찝찝했던 학교의 촌지 문화에 큰 획을 그어주셨다. 그 분께서 이 글을 꼭 읽으셨으면 좋겠는데 방법이 없을까.
실은, 교사들끼리도 그간 미묘한 신경전이 있었다. 어떤 반은 받고 어떤 받은 받지 않았다. 받는 반은 떳떳치 못해 하고, 안 받는 반은 그 나름에 고충이 있다. 받는 물건은 어떤 거냐면 상담 주간에 가방에 살짝 넣어서 들고 오시는 롤케잌이나 핸드 크림, 립스틱, 썬크림, 고급 볼펜 같은 것들을 말한다. 스승의 날에 보내시는 스카프나 손수 만드신 카네이션 볼펜, 해외여행 후의 화장품 선물 같은 것도 포함된다. 학년이 끝나고 나면 감사 선물을 챙겨 보내시는 분들도 계시다. 소풍날의 교사 도시락은 학급 반장의 의무였고 배가 찢어져라 먹었다. 뭣도 모르고 감사하다며 받았었다. 받기가 좀 찝찝하고 송구스럽고 부담스러웠지만 주시니까 받았다. 제대로 한 살림 챙기시는 분들도 많이 봤다. 별명이 ‘샤넬’인 분에 관한 얘기를 들었는데 실제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뭔가 답답했다. 박봉이지만 월급 받아 굶지 않고 살면서 굳이 안 받아도 되는 걸 받아가며 엄마들 입방아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홀로 조용히 시작했다. ‘거절’을 시작했다.
거절엔 용기가 필요했다. 미안함과 민망함을 견뎌야 했다. 보내주신 것을 돌려보내면서는 수도 없이 ‘죄송하다’고 해야 했고 뭘 혼자 그렇게 깨끗한 척, 강직한 척 하느냐는 동료들의 시선은 따갑고 민망했다. 소풍 날 아이가 수줍게 내미는 캔커피 하나를 돌려보내려면 구구절절 사연을 적은 포스트잇을 붙여야 했고, 상담 오신 어머니들이 가지고 오신 것을 다시 들고 돌아가시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는 민망하고 미안하고 어색해했다. 빈손으로 오시라고 상담 안내문에 그리 적어 놓아도 혹시나 싶어 꼭 들고 오신다. 빈말인 줄 알았나보다. 제주도 여행에서 사다주신 감귤 상자를 돌려 드리자 거절당해서 너무너무 서운하다며 눈물을 보이셨다. 죄송하다며 고개를 수도 없이 숙였다. 어떤 마음으로 그걸 샀고 학교까지 들고 오셨는지 절절히 잘 알기에 더 죄송스러웠다. 마음이 안 좋았다. 그냥 받을 걸 그랬나. 받는 것보다 주는 것보다 거절하는 게 가장 힘든 거란 걸 그 때 알았다. 살다보니 알게 되는 게 제법 많아진다.
엄마가 되고 보니 나도 감당하기 힘든 내 아이를 인내해가며 돌봐주시는 선생님에 대한 감사가 샘솟았다. 그걸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고, 더운 날 땀 식히시라고 시원한 커피 한 잔 이라도 드리고 싶은 순수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절절했다. 드릴 수 있을 때가 좋은 거였다. 여름 방학이 다가오는 오후, 시원한 커피를 들고 교실을 찾아가던 시절이 좋았던 생각도 든다. 그렇게도 열심히 부지런히 뭔가를 갖다 주시던 엄마들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이 뭔지 잘 안다.
그러나저러나 오만가지 감정은 뒤로 하고 이제는 김영란법이라는 이름도 신기한 법 아래 살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가 학교에서 일어났다. 받는 사람은 물론이고 주는 사람도 처벌받는 이 엄격한 법 덕분에 동료 교사들끼리의 미묘한 신경전도 정리됐고 주고, 받고, 돌려주고, 돌려받고 하던 복잡다단한 프로세스들이 사라졌다. 상담 주간에는 누구나 빈 손으로 학교를 드나들고 스승의 날에는 아이들이 써온 편지만 오고간다. 덕분에 학교에 빈손으로 가도 되냐고 묻는 엄마들에게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빵빵 큰소리 칠 수 있어 좋고, 돌려주는 수고 안해도 되어 좋고, 스승의 날 전날에 애들 담임 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어 좋다.
김영란 여사님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