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사회 문화, 밈의 슈퍼 복합체

by 밈바이러스

물고기가 물에 살듯이 우리는 사회 속에 살아갑니다. 물고기는 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늘 물과 함께 살았으며, 물 없는 세상에서는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심지어 물고기는 환경을 의도적으로 변화시킬 힘이 없으니, 물에 대해서 고민하고 따질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사회 문화 속에서 숨 쉬지만, 다시 숨을 내쉬어 사회 문화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사회 문화는 공기와도 같아 우리의 삶에 스며들어 거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사회 문화는 우리의 생각을 조작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사회 문화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물속에 살면서도 물을 모르는 물고기와 같습니다. 우리는 사회 문화가 우리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줄도 모른 채 사회 문화의 숙주처럼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진화는 개개인에게 최대의 행복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행복 버튼이 자주 눌리고 늘 행복한 사람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계속해서 포만감을 느껴서는 다음 먹이를 찾아 나갈 동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사회 문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행복을 챙겨주지 않습니다. 특히 자본주의라는 슈퍼 밈플렉스의 맹목적인 독주로 소외되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한병철 철학자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경제적 자유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고 하지만, 사실 자본주의가 정말로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돈 그 자체다. 돈은 사람을 자신의 성기 삼아 휘두르며 무한히 증식해 나간다”고 말합니다.


클로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문화의 어떤 속성이 그것을 수행하는 개체에게 적당하지 않거나 심지어 해로워 보여도 놀랄 것 없다.” 클로크는 ‘문화적 지침’을 숙주의 행동을 통제하는 ‘기생생물’에 비유합니다. 실제로 어떤 기생생물은 숙주의 몸을 장악해 화학적으로 거세해서 자신의 번식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유전자-유전자 갈등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유전자-밈 갈등도 있습니다. (앞서 살핀 대학 진학률과 출산률의 상관관계 참고)


클로크는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문화적 지침’은 생물체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일한다. 잘 해봐야 우리가 유전자들과 공생하듯이 그들과도 공생하는 관계이고, 나쁘게 보면 우리가 그들의 노예라고 말합니다. 그의 다음 말은 더 장관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정말로 ‘우리’ 문화 형질들의 노예라면, 이제는 그 사실을 알 때가 되지 않았는가?”


지진 같은 자연재해에 좌절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제도로 괴로워합니다. 우리의 편의와 질서를 위해 만든 도구와 시스템이 역으로 우리를 사용하고 부립니다. 다음은 사이먼 배런코언의 책 <패턴 시커>에서 나온 덴마크 자폐인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우리는 바닷물 속에 던져진 민물고기와 같습니다. 민물고기를 바닷물 속에 넣으면 몸을 뒤틀며 고통스러워하고,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그대로 죽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를 민물에 넣어주면 잘 살아가고 번성하겠죠.” 책 제목인 <자신의 존재에 사과하지 말 것>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사회 속에서 태어나며, 그 사회에서 숨 쉬고 내쉬면서 그 사회 문화를 알게 모르게 공고히 합니다. 어느덧 어른이 되어서는 정말 싫었던 그 사회 문화의 하수인이자 수호자가 되어버립니다. 사회 문화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떠나기가 쉽지는 않아서 일단 따르고 봅니다.


병리적인 사회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정신병자, 부적응자라고 부르는 참 이상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밈 바이러스의 피해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째선지, 우리의 공격은 함께 화이트 해킹(또는 디버깅)해야 할 사회가 아니라 서로를 향합니다.




+ 사람들이 체제에 순응하고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 실제로 체제를 옹호해서가 아니라, “(나는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체제를 옹호할 것이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연구가 있습니다(Puga, 2022). 우리는 타인의 신념을 직접 알 수 없어서 사회 구조에 의해 제약된 타인의 행동을 보고 그의 신념을 잘못 추론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싫어하는 회사라도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성실한 직원처럼 행동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를 ‘애사심 있는 사람’으로 오해하게 되는 식입니다.


결국, 실제로는 다수가 변화를 원하더라도 이들이 ‘다른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믿으면서 집단행동이 억제되는 ’환상적 합의’가 형성됩니다. 겉보기에는 안정적이었던 사회가 이러한 환상적 합의 덕분이며, 불만이 임계점에 다다르면 정치적 위기가 서서히 드러나는 대신 갑작스럽게 폭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칠레의 사례가 있습니다.



다음은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나오는 문화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우리의 문화는 각 인간들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네. 우리에게 거짓된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그러니 제대로 된 문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굳이 그것을 따르려고 애쓰지 말게. 그보다는 자신만의 문화를 창조하게. 신호등 같은 사회적 규칙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라, 작은 것들은 순종하되, 어떻게 생각할지, 무슨 가치를 중요하게 여길지 등 줄기가 큰 것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네. 다른 누군가가 우리 대신 그런 사항을 결정하게 내버려둘 수 없지.”


모리에 따르면, 무조건 더 많은 것이 좋다고 세뇌시키는 문화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 사이에 큰 혼란이 생깁니다. “우리는 연민을 느끼고, 서로에게 책임감을 느껴야 하네. 사랑이 없으면 모두 멸망하리.”


자칫 극단적인 금욕주의나 회의주의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견유주의 철학자들은 필요와 욕망을 구별하고 가능한 한 간소하게 생활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우면서도 자유로운 삶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부귀와 권력은 물론 문명과 내가 속한 사회라도 인위적이고 거북하다면 무엇이든 거부하고 벗어던지기를 주저하지 않았지요.

- <인생은 개처럼 사는 편이 좋다> 출판사 서평


이제 보니, 그들의 법과 제도는 모두 사람을 잡아먹는 도구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이동생의 고기 몇 점을 먹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는 내 자신의 차례다. “사람을 먹어 보지 않은 아이들이 혹시 아직 있을까? 아이들을 구하자...”

- 루쉰, <광인일기>


일본의 자본가가 그들 기업의 위기를 침략 행위로써 타개하고자 하여 모험적인 일본 육군이 그에 동조한 결과, 나는 38식 소총과 수류탄 한 개를 갖고 필리핀에 왔다. 루스벨트가 전 세계의 데모크라시를 힘으로 지키겠노라고 결의한 결과, 그 순진한 젊은이가 자동소총을 메고 내 앞에 나타났다. 이리하여 우리는 우리 사이에 개인적으로 싸워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싸워야 했다.


끔찍한 것은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갇혔으며, 더구나 이것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 오오카 쇼헤이, <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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