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진화심리, 인간이 처한 곤경

by 밈바이러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뇌가 인간을 잘못 이끌고, 심지어 노예 상태에 빠지도록 자연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방식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 로버트 라이트 -



제 마음에 성공적으로 침투해서 강력하게 뿌리를 내린 밈.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 중 하나가 진화심리입니다. 로버트 라이트는 그의 책 <불교는 왜 진실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이 지금과 같은 마음을 갖게 된 이유를 생물 진화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학문이다. 유전자 전파(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유전적 특징은 살아남고 이어지며, 그렇지 않은 특성은 사라진다. 자연의 시험대를 통과한 특징에는 인간의 신체적 특징 뿐만 아니라 정신적 특징도 포함된다. 우리의 일상을 끌어가는 것은 실재에 대한 정확한 그림을 제공하는 지각과 느낌이 아니라,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데 유리한 지각과 느낌이다. 인간의 뇌는 인간을 환영에 빠트리도록 ‘처음부터’ 설계되었다.”


사람은 쾌락을 쫓고 불쾌에서 벗어나려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번식에 도움이 되는 것에는 쾌(고기)를 느껴 추구하게 되었고 생명에 위협이 되는 것(벌레나 병균)에는 불쾌를 느끼며, 저절로 피하게 됐습니다.


진화는 아주 천천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아주 정력적인 밈의 활약으로 뒤늦게 출발한 문화의 진화가 생물학적 진화를 진즉 추월해버렸습니다. 그 결과, 수렵 채집 환경에 맞추어 자연선택된 우리의 마음은 현대 도시 생활과 불일치(mismatch)합니다. 지금은 풍요로운 문명 사회입니다. 먹을거리든, 정보든 모든 것이 전부 다요.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비교적 인위적이고 자극적이며, 중독적입니다(릴스, 햄버거, 유튜브, 마약, 포르노, 넷플릭스). 그래서 선사시대 때 우리를 올바르게 이끌었던 느낌(쾌와 불쾌)을 있는 그대로 따르면 건강에 여러모로 해가 되기도 합니다.


가령, 과체중과 주의력 결핍이 현대 사회에서 흔하게 보입니다. 원시인 루시와 제시가 있다고 합시다. 둘이 길을 가는데, 나무에 바나나가 열려 있었습니다. 루시는 당장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아서, 한 송이의 바나나만 먹었습니다. 다음날 다시 배고파져서 그 나무로 돌아갔더니, 누군가 바나나를 전부 따먹고 난 뒤여서, 배를 곯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에 제시는 먹을 수 있을 만큼 바나나를 먹어 놨기에, 다음 바나나를 찾을 때까지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수렵채집을 하던 시절에는 먹을 것을 언제 또 발견할지 모르니까 일단 먹어서 지방으로 축적해두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돈만 있다면 언제든 음식이 진열된 마트나 배달을 통해서 충분한 음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번에 몰아서 먹지 않아도 되지만, 예전의 본능이 남아 있기에 우리는 단순히 체중 관리에 실패하는 것을 넘어 건강에 해가 될 정도로 지방을 축적하기도 합니다.


한편, 집중을 잘하는 사람이 무조건 유리한 세상처럼 보이는 오늘날입니다. 하지만 왜 아직도 ADHD의 기질이 흔할까요? ADHD에 진화적 이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위험이 도사리는 수렵채집 시절, 언제라도 주변에 일어나는 작은 일에도 신경을 쓰고 즉시 주의를 전환할 수 있도록 만반의 태세를 갖추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또, 수렵채집 시절 한 덤불에서 끈기를 갖고 열매를 1시간 내내 뒤적이는 사람과 여러 덤불을 왔다갔다하며 열매를 찾아보는 사람 둘 중 더 많은 열매를 획득할 수 있던 사람은 단연 후자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만큼 온갖 것들이 우리의 관심을 차지하려는 시대가 없습니다. 넷플릭스의 덤불, 유튜브의 덤불, 인스타의 덤불.

수렵 채집 시절에는 하루에 세 시간 정도 이런저런 덤불에서 열매를 채취하면 됐다고 합니다. 오늘날만큼 하나의 과업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길게는 수십 년간 긴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는 과업이 없었습니다. 우리 뇌는 장시간 집중하는 방향으로 진화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중세 시대의 기록을 보면, 요즘만큼 재미있는 게 넘쳐나지 않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집중력 문제를 호소했습니다. 특히 자극을 추구하지 못하는 수도사들한테서요. 우리들의 잠재되었던 많은 덤불에서 최대한 많은 열매를 따 모으려는 본능을 불 지피는 치열한 주목 및 관심 경제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지금 ADHD의 형질이 (후성적으로) 다시 점화되었고, 화제가 되어 떠오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쾌를 맞이하면 해소해서 쾌로 넘어가고 싶어하며, 쾌락을 얻으면 더 강한 쾌락을 바라게 설계되었습니다. 하지만 맹목적인 쾌락을 쫓는 것은 위험합니다. 쾌락에는 함정과 역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로버트 라이트가 말하는 쾌락의 설계 원칙 3가지

1. 목적을 달성했을 때 쾌락을 느껴야 한다. 그래야 그 쾌락과 연결된 행위를 더 열심히 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상적]

2. 쾌락은 포만감과 비슷하게 긴 시간 지속되지 않는다. 그래야 다음 쾌락을 찾아 나서기 때문이다. 쾌락은 빠르게 사라지며, 결국 더 큰 쾌락을 갈망하게 된다. [일시적]

3. 쾌락이 곧 시들해진다는 ‘이성적’ 사실보다, 목적 달성에 쾌락이 따를 것이라는 ‘느낌’을 더 강렬하게 인식해야 한다. 순간적인 충동의 상황에서 사실을 더 강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열렬한 쾌락 추구가 무슨 소용인지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런 사람은 구석에서 존재의 권태에 빠져 철학이나 하면서 번식에 덜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일시적일 수밖에 없는 쾌락의 감정적인 느낌에 강하게 끌리도록 자연선택된 게 당연하다. [압도적]


풍요 기술 사회에서는 다양한 쾌가 도처에 있으며, 너무 쉽게 쾌의 느낌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핸드폰 톡, 톡으로 재밌는 콘텐츠와 음식을 제공받습니다.) 쾌의 느낌에 익숙해지다 보면 쾌의 역치가 높아지고(쾌락 적응),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심심함과 불쾌를 느낍니다. 만성적인 불쾌감 때문에 다시 더 많은 쾌를 추구하게 되니 악순환입니다.


그 굴레를 끊어야 합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느낌과 생각에 자동 반사적으로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느낌은 생각의 대용물로, 특정 느낌은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실행하도록 돕습니다. 가령, 우리는 두려움 앞에서 심박수를 올려 도망칠 준비를 합니다.) 느낌은 원래부터 따르도록 설계되었지, 느낌을 떨쳐내도록 설계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는 정돈된 숙고를 통해 떠오르는 느낌이 옳은 것인지, 인도를 받아도 되는지 아니면 틀린 것이라 털어내야 하는지 거리와 틈을 생성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도움이 되는 것이 마음챙김 명상입니다. 우선, 특정 느낌이 떠오르면 알아차립니다. 그 느낌을 밀쳐내지 않고, 오히려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 느낌이 신체 부위의 어디에서 솟아나는지 면밀히 살펴봅니다. 마지막으로 그 느낌을 나와 동일시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느낌에 다가감으로써, 오히려 그 느낌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느낌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력을 변화시키기’, ‘느낌이 나를 대신해 판단하거나 행동하지 않게 하기’가 마음챙김 명상입니다. 하지만 명상에도 3가지 역설이 있습니다.



명상의 역설 3가지

1. 명상에 소질이 없는 사람일수록 명상이 주는 유익함이 가장 필요한 사람이다.

2. 명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면, 바로 그 문제 때문에 명상을 시작하기 어렵다.

3. 명상으로 효과를 보겠다는 성공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명상에서 성공하는 길이다.


로버트 라이트가 말하기를, 마음챙김으로 산다는 것은 평소 덧씌워진 정신적 혼미함을 걷어내고, 지금 일어나는 일을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조금은 통제된 환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환상 속에서 살게 하듯이, 자연선택의 과정에서 탄생한 우리는 ‘생존과 번식’을 더 잘 해 갈 수 있도록 우리는 세상 그 자체를 보지 못하고 무엇인가 덧씌워진 것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자원이 희소하던 시대에 적합하게 맞추어진 우리의 마음. 하지만 대부분의 위험이 사라진 풍요사회에서 현실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우리는 걸어 다니는 욕망덩어리가 되어, 우리가 그렇게 바라 마지않던 행복과 영영 멀어질 수 있습니다.



+ 생각을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 법:

그 생각을 옆에 있는 철부지가 떠들어대는 소리라고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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