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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론자 Mar 19. 2022

미노루 후루야 "낮비"

당연하지 않은 평범함

나는 요즘 사는 것이 재미가 없다. 말도 안 되는 어리광이다. 하지만 왜 아직도 살아있는지 잘 모르겠다. 존재해야 할 이유가 마땅치 않다. 사는 게 시시해진 나는 만화책으로 도피했다.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줄, 인생철학이 담긴 드라마 만화, 미노루 후루야의 “낮비” 읽었다.


나는 만화의 초장부터 주인공에게 이입했다. 주인공인 청년 오카다는 25살의 빌딩 청소원이다. 바닥을 닦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 그의 하루 일과다. 그는 불만이다. 아무것도 없고 새로울 게 없는 하루하루에. 뭔가가 되지도 못하고 뭔가가 되고 싶다는 의지도 없는 자신에게. 그저 시간이 헛되이 흘러간다는 것을 인식할 뿐.


오카다는 이렇게 허송세월 하다가 인생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리는 것이 아닐까 걱정한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저마다 소중한 무언가를 갖고 있다고 짐작하면서. 보람 있는 일이나 장래의 꿈 혹은 함께 살아갈 소중한 사람 말이다. 하지만 오카다는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그 소중한 뭔가를 찾지 못하면 언제나 외톨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카다는 그와 같이 일하는 5살 연상의 선배 안도 씨는 퇴근 후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궁금하다. 그와 저녁 약속을 잡은 오카다는 그의 불만을 안도에게 털어놓는다.


안도는 오카다의 불만을 듣고는 답변한다. 자신도 특별할 거 없는 매일을 보낸다고. 사람은 누구나 불만을 갖고 살며, 불만이나 불안이 없으면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고. 그걸 조금이라도 없애기 위해 매일 열심히 살아가는 거라고. 또, 유감스럽게도 불만이나 불안은 끝이 없다고. 너는 이상할 게 없으며 괜히 불쌍하게 자기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그리고 안도는 오카다와 달리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안도가 말하는 자신과 오카다의 결정적 차이는 이거다.

“나는 매일 엄청나게 사랑을 하고 있어.”

안도는 다음날 오카다를 카페에 데려가 아르바이트생 유카를 보여준다.


사실 안도는 그녀와 손님과 아르바이트생의 대화 그 이상의 대화는 해본 적 없었으며 완전히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다. 그런 안도에게 경쟁 상대가 있었으니... 매일매일 하는 것도 없으면서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으면서 안도의 천사(?)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금발머리 남자다. 그는 공교롭게도 오카다의 고등학교 동창 모리타였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두 명이다. 청소원 오카다와, 그의 동창 모리타. 언제 내릴지 모르는 낮비는 건조하고 메마른 땅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사람들에게 내일을 살아갈 희망을 준다. 카페 아르바이트생 유카는 오카다의 낮비가 되어 내린다.


다만 모리타의 낮비는 독특하다 못해 전혀 평범하지 않다. 모리타는 작중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고등학생 동창을 시작으로

경찰관과 이웃을 비롯해 총 10명을 죽인다.

모리타는 중학교 때 자신이 오직 사람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닐까 완전히 오싹해진 순간을 회상한다. 왠지 꿈을 꾸는 듯하고 일상에서 현실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는 사람을 목졸라 죽이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그는 병이다. 뇌에 이상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리타는 자신이 병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연히 자신의 평범함이 남과는 달랐을 뿐이라고.

발이 빠르거나 노래를 잘하는 거랑 실제로 큰 차이가 없는 거라고. 단지 운이 나빠서 평범한 인생을 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에게 병이라고 하면 불쌍하지 않냐고. 그 바보 같은 단순함과 거지같은 인간들의 잔혹함이 너무나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병이라는 단어는 필요가 없는 단어라고.


세상의 그 누가 그를 이해해줄까. 이 세상에는 많은 즐거운 일들과 다양한 재능이 있다. 하지만 희소한 쪽에 속하는 사람들은 손해다. 이해받지 못하고 소수자로 숨어 지내야 한다. 심지어는 법에 저촉되는 경우도 있다.


모리타는 점점 사람을 충동적으로 죽이기 시작하고 깊은 수렁에 빠진다. 그러다가 벤치에서 노숙을 하는데 꿈을 꾼다. 꿈에서 모리타는 휠체어를 탄 채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다. 그는 자신의 뇌가 밀봉된 봉지를 들고 의사에게 묻는다.


“저도 이것만 붙으면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의사는 모리타가 아직 젊기 때문에 20%라고 대답한다. 모리타가 병원에서 나와 휠체어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검은 형체가 그를 밀치고 칼로 수도없이 푹푹 찌른다.


“어때? 아프지? 어떤 기분이야? 너에게 살해당한 사람들도 모두 이렇게 무섭고 아팠어.”

“뭔가 지금... 갑자기 생각이 났어... 중학교 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정말로 평범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날의 일.”

“기분이 어땠지?”

“너무 속상했어... 진짜로... 정말로 속상해서 그 자리에서 죽고 싶었어. 하염없이 울었지.”


경찰이 그를 깨우고 체포한다.

“뭐야 너 울고 있었어...?”

“네?”


(낮비 마지막 장면)


이렇게 만화는 끝이 난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인생 고민과 살인마 모리타의 평범하지 않은 고민

그리고 추적추적 내리는 낮비.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한 캐릭터들의 감정선에 공감하며 재밌게 읽었다.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세상에는 별별 사람이 있고 가지각색 인생 이야기가 있다. 평범이 뭔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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