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 쓰는 채소인고?

강제로 맛을 알게 된, 그러나 맛있는 중국 채소들

by 보부장


어렵게 구한, 반쯤 물러졌지만 그래도 매운맛을 지닌 파는 내 눈물과 함께 냉동실에 꽁꽁 얼려두었다.

너무너무 비싼 가격에 배송된, 꽃대가 가득했던 배추는 강력한 소금물로 단단한 줄기와 꽃대들의 숨을 죽여주고 고춧가루에 2차 고문까지 해서 냉장고에 가둬두었다. 꽃을 품은, 맛있고 예쁘기까지 한 김치로 거듭나려나.

단단한 조선무와 달리 금방 물러지는 중국의 무는 깍두기로도 별로다. 이번엔 동치미로 만들어 역시 냉장고 행.



누가 한국 사람 아니랄까 봐 채소들을 구할 때마다 장기간 먹을 수 있는 저장식품으로 변신시켜 열심히 냉장고에 넣어두고 있다. 하지만 싱싱한 채소가 참 아쉽다. 어차피 볶아지고 데쳐지고 삶아지겠지만 그래도 초록에 연두에, 보기만 해도 눈이 편해지고 씹으면 아삭아삭 귀까지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싱싱한 채소는 봉쇄 중인 사람들의 로망이 되어버렸다. 가끔 공구로 구매하는 채소꾸러미는 비싸기도 하고 양이 너무 많아서 함부로 사재기를 할 수도 없다. 온갖 저장식품과 감자, 당근처럼 오래 보관해야 하는 채소들로 점령당한 냉장고에 부드럽고 부피가 큰 채소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일주일에 한 번쯤 정부에서 나눠주는 구호품 상자에 간장에 조려진 닭이나 머리끝까지 털이 깨끗이 뽑힌 통오리, 특유의 향이 나는 소시지, 햄과 함께 채소들이 섞여 들어온다. 영양을 고려한 구성이겠지만 사실 공장에서 만든 식품은 반갑지 않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불량 구호품으로 소동이 한번 났던 터라, 그나마 최근 들어 채소의 양이 많아지긴 했다.

문제는 많은 한국 주부들을 혼란에 빠뜨린 중국 채소들. 다행히 아이들을 봐주시는 중국 아주머니와 오래 생활한 나에게는 익숙한 채소들이 많았지만, 집에서 한국 음식만 해왔던 사람들에게 이 낯선 중국 채소들은 큰 숙제 거리가 되었다. 싱싱한 채소를 버릴 순 없고 똑같은 채소를 받았을 중국 이웃들에게 매번 나누기도 미안하고. 이 참에 친구들에게 맛난 중국 채소들을 소개해 주기로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중국 채소는 워순莴笋.


겉모습만 봐서는 그다지 싱그러워 보이지 않고, 정신 사나운 이파리가 몽둥이처럼 퉁퉁한 줄기에 잔뜩 붙어 있어 그다지 호감이 가는 채소는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워순의 사진은 “도대체 이건 뭐야?”라는 난감함이 가득한 질문과 함께 도착했다. 사전을 찾아보니 줄기 상추, 궁채라고도 불리나 보다. 겉에 붙은 지저분한 이파리들과 껍질은 벗겨내고 맑은 연둣빛 속 줄기를 주로 먹는데 씹으면 아삭, 고소하니 갓 지은 흰밥 향이 난다. 나는 잘게 채 썬 줄기를 뜨거운 물에 한번 데쳐 내고 소금, 참기름, 깨소금만 넣어 무쳐 샐러드 대신으로 먹는다. 별다른 소스 없이도 입맛을 돋워주고 맛이 자극적이지도 않아 워순을 먹고 나면 정말 건강한 음식을 먹었다는 기분이 든다. 어떤 분은 줄기 상추라는 이름을 들으셨는지 어쨌는지 맛있는 줄기는 뎅강 잘라 버리고 이파리만 앞에 둔 채 이걸 어쩌나 고민하셨다 한다. 물론 이파리도 먹을 수는 있다는데 싱싱한 줄기와 달리 짙은 초록의 이파리는 주로 풍파에 지치고 지저분한 모습일 때가 많아 나는 과감히 버리는 편이다.




두 번째로 등장한 낯선 채소, 쨔오바이 茭白


쟈오바이는 생김새가 꼭 예쁜 곤봉 같다. 혹은 몸을 가볍게 들어 올린 발레리나의 토슈즈처럼 생기기도 했다. 뭉툭하고 하얀 받침 같은 기둥을 둘러싸고 날씬한 줄기가 위로 뻗어 있는데 초록 부분은 제거하고 흰 속살 부분만 먹는다. 생긴 모양이나 식감이 꼭 죽순 같기도 하지만 죽순보다는 연하고 부드럽다. 위에서 얘기한 워순과는 달리 깨끗하고 단정한 아이라, 사람들이 첫눈에 부담스러워 하진 않았지만 어떻게 먹는지를 모르는 건 마찬가지. 꼭 뚱뚱한 대파 같기도 한데… 어떻게 먹는담?

쨔오바이는 흰 부분만 납작하게 혹은 채로 썰어 다진 돼지고기와 함께 간장에 볶아 먹으면 꼬득 꼬득 씹히는 느낌이 아주 좋다. 한국 간장도 괜찮겠지만, 개인적으로 중국 채소는 라오초老抽 라고 불리는 중국 간장에 볶는 것이 더 맛있는 것 같다.



다음 채소는 후꽈 瓠瓜


사실, 이 채소를 자주 사 먹기는 했지만 이름이 후꽈라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다. 한자대로라면 조롱박이라는데, 조롱박보다는 길고 마치 애호박처럼 생기기도 했지만 애호박보다 단단하고 속살도 쫄깃쫄깃하다. 열심히 운동을 해서 단단하고 늘씬해진 애호박이라 하면 딱 맞겠다. 얼룩 덜룩한 애호박과 달리 고르고 매끈한 연둣빛 피부를 가졌다. 얇은 껍질은 감자칼로 홀랑 홀랑 벗겨버리고 하얀 속살만 채 썰어 잠깐 소금에 재었다가 물기를 꼭 짜낸 후 밀가루, 물, 잔파를 섞어 얇은 전을 부쳐먹으면 아주 맛있다. 고소한 파향이 나고 쫄깃쫄깃 씹히는 후꽈전은 박 종류의 물컹한 식감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도 맛있게 먹어 준다.


엄마가 예전에 둥근 박으로 해주던 방식대로 잘게 채 썰어 데친 다음 식초, 고추장, 조갯살과 함께 초무침을 해 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 아, 조갯살은 봉쇄기간이 끝나야 구할 수 있는데, 괜히 떠올렸네. 침만 삼킨다.







물론, 내가 먹는 방식이 전통 중국 조리법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쨔오바이를 볶을 때도 중국 사람들처럼 파 , 마늘 기름을 내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방인에게 도착한 전통재료인걸. 맛있게 먹어주면 그걸로 이 채소들과 주방장의 의무는 끝.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무슨 채소인지 정체도 모르겠고, 고기를 다지자니 귀찮고, 기름까지 내자니 국에 넣을 파 마늘도 부족할 땐, 그냥 한 가지. 기름 넣고 달군 팬에 굴소스와 함께 휘리릭 볶아 주자. 맛있다. 이렇게 맛날 수가 없다. 낯설고 말고, 재료 본연의 맛이고 뭐고 그냥 맛있는 반찬 하나가 뚝딱 완성된다. 소위 솥뚜껑 운전을 시작한 지 15년 동안 이렇게 많은 기름과 굴소스를 써보긴 처음이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니 지금까지 써내려 온 개성 있는 중국 채소 이야기가 무색해지기도 하지만, 하루 세끼 음식을 만들어야 하고 시들해져 가는 채소들도 살려내자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오늘도 나는 얼른 글을 마무리하고 굴소스 공구를 찾아 공구 시장을 어슬렁 거려야 할 지경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