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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부장 Sep 04. 2020

나의 중국어 입문기

만나는 이 모두 나의 선생님

누군가가 저에게 저의 중국어 실력을 물으면 ,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혹은 먹고 싶은 거 , 쏙쏙 골라서 잘 시키고)



길 잃지 않고, 밥 잘 먹고, 웬만해선 사기당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 


중국 생활이 이미 15년 정도면 시간의 힘 만으로도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물을 수도 있겠지만

중국에서의 처음 1년 동안 배운 중국어가, 어쩌면 지금 사용하는 중국어의 전부인 것 같기도 합니다.


2005년 10월, 처음 상해에 도착했던 날. 그때의 스카이 라인은 지금보다 조금 아담하고 야경도 조금 촌스럽게 화려했지만, 수많은 조명만큼 눈을 반짝거리며 만난 상하이 황포강(黄浦江)의 모습은 크고, 아름다웠습니다.





당시 회사의 사장님은 독특한 인원으로 상해 사무실을 구성하시고 , 별도로 통역 인원을 구해주지 않으셨습니다. 알아서들 생존하며 빨리 적응하라는 의미였지요.


그때 전, 중국어에 대해선 귀머거리 벙어리였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중고등 6년 동안 한자를 배운 덕에 까막눈은 아니었고,



중국에 오기 전 , 회사에서 준비해 준 새벽공부에서 성조의 중요성을 철저히 배운 덕에 (당시 수업을 해주신 교포 선생님은 한자, 읽기, 문법 등은 뒷전이고 성조 연습에만 반 이상의 시간을 썼더랬습니다)








나름 쉽게 중국어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동안은 매일매일 이것 (这个 : 중국어 발음으로 쩌거 )과 한국말 "저것"도 구분하지 못해 맨땅에 헤딩하듯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외국인들의 중국 거주를 관리하는 파출소에서 제 비자기간이 이미 시간을 넘겼다고,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불법 체류자가 될 수 있다고, 열렬히 열렬히 알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해 비자 연장을 그냥 지나쳐 버린 적도 있습니다(당시니까 가능했던 일이지만, 불법 체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역시 불법으로 처리하였었지요).


막 중국 땅에 떨어진 데다 말도 할 수 없었던 저는 다행히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던 터라 낮에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한국에서 공수해온 EBS 교재로 중국어 공부를 하며 



때아닌 주경야독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저녁에 새로운 내용을 배운 다음날은 그 말을 써먹을 기회를 찾기 위해 아무나 붙잡고 대화를 나누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 중국어 선생님은 늘 여러 명이고 딱히 정해져 있지도 않았지요. 




 중국 각 지역 출신의, 교육 수준이 높지 않으셨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친절히 저와 대화 해주시는 선생님들 덕에, 제가 하는 중국어는 그닥 고급지지 않습니다. 초급 중국어를 일 년쯤 EBS 중급 중국어를 이수(?) 하지 않은 탓에 문법도 아마 엉망일 겁니다. 그래도 그때 그 길거리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수많은 길거리의 라오바이싱(老百姓), 일반 중국 사람들과 친근히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름도 모르고 , 이젠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저의 수많은 선생님들께 제 지난 15년의 중국 생활에 대해 감사를 드려야겠어요. 


谢谢大家, 씨에 씨에 따자.

감사해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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