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먹으면 안 되나요
오랜 시간 직장 생활을 하며 가끔 듣는 얘기.
"내 밥그릇은 내가 챙겨야지, 누가 안 챙겨줘."
그럼, 학교 다닐 때 도시락이나 엄마가 챙겨 줬지, 누가 내 밥을 챙겨주나 했지만 새로운 직장으로 옮겨와서 밥그릇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새로운 곳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잠시 이 직종을 떠나 있었기도 했었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곳의 원칙과 기존 멤버들의 업무 방식을 바꾸지 말자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고, 특히 나와 함께 많은 일을 해야 할 타 부서 관리자의 의견을 존중하였다. 그러면서도 내가 알아야 할 일, 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묻고, 익혀나가는 중에 익숙지 않은 경계의 눈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와 직급이며 나이, 업무 경력 등 모든 면이 비슷했지만 나보다 1여 년 먼저 회사에서 자리를 잡은 그 타 부서 관리자가 나를 "굴러온 돌" , 스스로를 빠져나가기 싫은 "박힌 돌"로 정의한 것이다. 그(이하 "박힌 돌")는 업무에 관해 내가 묻는 질문에는 정확하게, 그러나 기계적으로 설명을 해주었지만 절대 나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입사 후 2주의 시간이 지나자 내가 참조의 형식으로 받고 있던 그 부서의 메일들을 모두 끊어버리고 마치 지금껏 충분히 먹여줬으니 니 밥은 네가 알아서 먹으라는 듯 행동했다. 십여 명 남짓한 소기업에서 업무 매뉴얼이나 업무 인계서 같은 고퀄의 요구는 사치다. 기대도 하지 않았고 있을 리도 없었다. 거래처며 바이어며 , 제대로 된 연락처 하나 없이 업무를 하게 된 나는 연락처 세팅부터 업무 매뉴얼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할 업무를 하나씩 해나갔다. 그리고 내 업무가 다음 부서의 업무로 이어지는 구조 상, 당연히 내 업무의 결과물을 박힌 돌에게도 공유했고, 내 자리 옆에서 사장님과 그가 대화를 할 때면 나도 경청을 하곤 했다. 경청을 하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내 자리 옆이고 사장님 말씀인데.
그런데 어느 날 박힌 돌은, 우리 두 부서의 업무 방향에 대해 설명을 하시는 사장님께 평소 침착하고 조용하던 모습과 달리 업무를 정확히 구분해 달라며 가느다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무섭게 항의를 했다. 나는 한국인, 그는 중국인이긴 했지만 업무 진행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 달랐다. 같은 회사지만 부서별 업무를 칼로 자르듯 정확히 자르고 , 절대 침범을 해서는 안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고(업무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각서가 필요할 만큼), 사장님과 나는 모든 일에 협조와 공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내가 협조라고 하면 그는 싸움이라고 정의했고, 내가 공유를 얘기하면 그는 간섭이라고 되받아 쳤다. 기존 직원들의 생각이 우선이라는 내 기본적인 생각도 있었거니와 굳이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그냥 지나긴 했지만 사장님은 며칠 동안 박힌 돌을 달래느라 진땀을 빼는 모양이었다.
며칠이 지나 내 유일한 부서 직원에게 들은 얘기는 내가 욕심이 많아 상사 노릇을 하려 하고 있고, 박힌 돌로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장님도 박힌 돌을 상대하느라 지치셨을 테지만 나와의 짧은 면담에서 "그가 언어 표현에 따른 오해를 좀 하고 있는 것 같고, 너의 업무방식이 옳다고 생각을 한다. 시간이 지나면 너에게 수긍할 수밖에 없을 테니 일단은 업무를 철저히 나눠서 하자 "라는 것이었다. 박힌 돌과 제대로 된 대화를 몇 번 나눈 적도 없던 나로서는 언어 표현에 따른 오해라는 말에 조금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회사의 최고 결정권자인 사장님이 그러시겠다는데. 그리고 박힌 돌과 이미 한 편이 된 그 직원들이 보기에 나는 겨우 굴러 들어온 돌 주제일 뿐.
하지만 나는 누군가를 빼고 그 자리를 차지할 생각도 없고, 박힌 돌이 빠진다고 그 자리가 내게 맞을 것이라 생각지도 않기에 나를 굴러온 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나는 이 회사의 다리가 되어 영차 영차 함께 걸어가고 싶은 생각이다.
회사는 공동체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같은 일을 할 수 없고, 그래서 부서별로 일이 나눠져 있기도 하지만 내가 주로 해야 하는 일이 있고, 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알아야 하는 일이 있다. 특히 사람이 많지 않고 업무가 세분화되어있지 않은 작은 기업에서 중간 관리자 이상의 직급이 되면 회사의 크고 작은 일에 신경 써야 할 때가 많다. 내가 관리자로서 일을 한 이후, 내게 딱 이 밥그릇만큼만 소화하라고 주어지는 일은 없었다. 이 밥은 네 밥이라고 떠넘기고 이 밥은 내 밥이라고 품에 쥐고 내려놓지 않는 순간부터 회사는 삐걱대며 걸을 수가 없을 것이다.
박힌 돌의 밥그릇 싸움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싸움에 참여하고 싶지 않고 내 밥을 담을 밥그릇도 없는 나는 홀로 외로이 여기저기 재료나 구하러 다니는 중이다. 계속해서 서로 밥그릇을 품에 안고 내 밥만 바라보게 될지 아니면 결국 모두들 갖고 있는 음식을 내려놓고 함께 맛있는 한 끼 밥상을 만들지 아직은 모를 일이다.
내 고민을 들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얘기했다.
"밥그릇 싸움이네. 너도 니 밥그릇 잘 챙겨."
그냥 다 같이 잘 먹으면 안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