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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듬 May 19. 2018

석차를 알려주고 싶지 않다

교실 속 이야기

우리 반 친구들은 겁이 없다. 이들에게서는 고학년들이 쉽게 보이는 태도를 찾아볼 수가 없다. 과제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피기도 전에 '저것은 내가 접근할 수 없는, 성공할 수 없는 과제이다'라며 미리 판단하는 태도 말이다. 가만 보면 실제로 내가 무엇을 잘 못 외우는지, 무엇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지 등에 대한 감도 별로 없다. 누가 특별히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모두가 열심이다. 수업 중에 그 어떤 활동을 들이밀어도 모두들 거침없이, 거리낌 없이 연필을 쥐고 입을 연다. 시를 읽고 소설이나 수필을 쓸 때, "어려워서 못하겠어요."하는 친구들이 하나 없다. "누가 발표해 볼까?"하니 자신이 하겠다며 벌떡 일어나 교탁 앞으로 걸어나와 자신의 글을 씩씩하게 읽어 내려 간다. 누가 발표를 하네 마네, 잘했네 못했네 따지지도 않는다. 발표하기 전에 "하면 뭐 해주실 거예요?"하는 친구들도 없다. 아... 보상 없이 수업을 꾸려 나가는 게 가능한 해가 있었던가.

모르는 것이 있을 때는 번지수를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한참이나 물으러 다니기도 한다. 왜냐? 그들의 눈에도 누가 월등하게 나은지 판단이 안 서고, 다 비슷해 보이니까. 사실 누군가에게 물어서 아예 답을 얻어낼 생각을 하는 이들도 몇 없어 보인다. 몇몇이 모여 문제를 해결해 내려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모습이 더 자주 눈에 띈다. "아냐! 그거 아니야.", "이거 아니야?", "이 방법 아니야?" 갑론을박, '아니야'를 무한반복하면서.


생각해 보면 이 친구들은 중학교 입학 후 자신의 성적을 상대적으로 평가 받은 일이 없었다. 수업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하나 하나 해결하며 일 년을 보내왔고, 자신의 학업 성취를 숫자 몇 개로 확인해 본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그마저도 수행평가 결과물들을 점수화한 것이었다. (나는 그마저도 탐탁치 않지만)

혹시 상대적 평가를 경험해 보지 않은 덕에 학업에 있어 적극적이고 거침없는 태도를 보이게 된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자유학기의 긍정적 효과는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4월 30일과 5월 1일. 첫 지필고사 날이었다. 일이주일 전부터 단톡방에 여러 정보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ㄱ이 역사 서술형 예상 문제의 답을 정리했다며 사진을 찍어 올리니 '이 답은 어떠하냐며' ㄴ이 또 보충 설명을 올렸다. 그 뒤로도 여럿이 예상 답안을 올렸고. ㄷ은 역사 과목에서 도움 받아 고맙다며 과학 시험범위 내용을 요약해서 올렸다. ㄹ은 수학 공부하다 잘 모르겠다며 문제를 사진 찍어 올렸고, ㅁ과 ㅂ이 재빨리 직접 풀어 풀이 과정과 답을 알려주었다. ㅅ은 선생님께서 학급 게시판에 붙여놓은 정답지라며, 8페이지 분량의 서류를 일일히 사진으로 찍어 올려 놓았다.


단톡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난 솔직히 말해 '뭐 이런 애들이 다 있나' 싶었다. 다른 반은 단톡방에서 욕하고 싸우다 혼나고, 문제가 자꾸 발생해서 채팅방을 폐쇄하는 것도 본 적이 있는데... '우리 반 애들은 왜 이러는 거? 얘네 천사임?' 싶은 느낌. 왠지 성적도 잘 나오겠다 싶은 좋은 예감도 들었다.


시험이 끝나고. 우리 반 친구들은 썩 좋은 반 평균 점수를 내진 못했다. 그래도 역사 서술형 문제만큼은 훌륭한 결과를 얻었고, '함께, 같이'의 승리라 우리끼리 자평했다. 한 아이는 '의미있는 경험으로 시 쓰기' 활동의 소재로 '우리 반은 경쟁자가 아니라 공동체였다'는 내용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석차가 나왔다. 끝까지 숨기고 싶었지만 여기저기서 정보를 얻은 우리 반 친구들이 나를 찾아왔다. 우리 반이 공동체 같았다는데, 이들에게 석차를 알려 준다는 건, '너는 우리 반의 누군가보다 몇 등 뒤진단다. 더 열심히 해서 밟고 올라가 보렴.'이라고 말하는 셈일 것 같아 정말 말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는 단톡방에서 함께 공부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예쁜 모습을 볼 수 없을까봐, 앞뒤에 앉은 친구들에게마저 자신의 공부 내용을 숨기게 될까봐...


하지만 고등학교 입시 준비를 시작하는 이 단계에서 석차 정보를 마냥 숨길 수도 없는 일이라, 결국 개별적으로 나를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석차 자료를 보여 주며 말을 몇 마디 덧붙였다.


"석차는 그냥 잠깐 보고 잊어도 돼. 중요한 건 네가 얼마나 알고 있느냐야. 특히 학급 석차는 의미 없는 거 알지? 우리 안에서는 누가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아. 서로 도와가며 계속 공부해 보자."


이런 말이 효험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앞으로 이들의 앞에 놓인 것은 결과만을 평가하여 줄세우는 일뿐이라는 게 너무 속상했다. 몇 년간 3학년을 담당하며, 고입을 앞둔 친구들에게 석차를 따지며 학습 동기를 이끌어 낼 수밖에 없던 내가, 올해 유난히도 속상하고 마음 아픈 이유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하기만한 우리 아이들을 내 손으로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것만 같은 자괴감 비슷한 감정이 솟아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여닐곱 명에게 석차를 알려주었는데, 나는 아직도 어떻게 하면 석차를 알려주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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