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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돌 Jun 24. 2024

글쓰기 강좌

[보돌에 관하여]

 때는 21년 6월. 회사 생활에 찌들어서, 돌파구를 찾아 등록했던 글쓰기 강좌.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던 기분을 극복하고 싶어서 등록했었다. 총 5회 수업이었는데 퇴근하고 도곡에서 서대문까지 가는 전철이 얼마나 붐비던지. 7호선만 지옥인가 했는데, 3호선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생각에 만원 전철도 나름 즐거웠던 추억. 5회 수업 중에 3회는 비가 왔었다. 심지어 첫 수업 일에 천둥번개에 폭우가 내려서 학생들이 물에 젖은 생쥐처럼 출석했다.      


 대전에서 강의를 듣기 위해 오시는 분도 있었다. 대전이 아니더라도, 경기도 전역에서, 학교 선생님들이 많이 오셨다고 했다. 작가님이 어디 교사 커뮤니티에 소문났냐고 농담을 하셨더랬지. 최민석 작가님의 에세이를 평소에도 좋아해서 신청했었다. 다른 수강생들도 대부분 작가님의 팬 같았다. 수업 마지막 날에 다들 야무지게 책에 싸인 들을 받아갔었거든요. 강의 내용도 충실하고, 입담도 책만큼 좋으셔서 만족했었다. 강의 마지막 날에, 책 끝내야 하니까 5분만 더 시간 달라고 나훈아 기자회견 흉내를 내셨는데, 그 장면이 얼마나 웃겼던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하면 웃기네요. 재치 쟁이 작가님. 요즘 MZ세대들은 나훈아 기자회견 5분 퍼포먼스를 모를라나. 괜찮다. 어차피, 글쓰기 강좌에 MZ는 몇 명 없어보였다.      


 5회 수업 듣고 기억에 남는 것이 나훈아 성대모사와 담당자분들이 마지막 날 주셨던 경기떡집 이티떡의 맛있음이라니. 이렇게 글을 마무리해서는 안 됩니다. 작가님께 누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함께 했던 분위기도 좋았다. 서로가 쓴 글을 함께 읽으면서 공감하기도 하고, 나라면 저 주제로 어떻게 썼을까 생각 해 보기도 했다.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글을 전개 해 나가는 분들도 있어서 자극을 받기도 했다. 각자의 세계에서 각자 열심히 생각하고 글을 쓰고 있구나. 그래도, 배웠으면 뭔가 남은 것이 있을 것 아니냐. 최보돌아. 올해 목표를 내돈 내산 책 출판으로 정하고, 예전에 강의를 듣고 메모 해 뒀던 내용을 찾아보았다. 오. 그래도 내가 뭘 적어두긴 했구나.      


한글 파일 바탕체에 10포인트 줄간격 160% 

한 꼭지당 원고지 분량은 일정하게

A4 2장 혹은 0.5장 내외 오차 

20꼭지가 한 권 분량 

에세이는 목차를 정하고 작성하기 보다는 글을 작성한 후에 키워드에 따라서 묶기 

출판사 투고 시에는 저자 소개, 기획안, 목차, 샘플 원고 

문장은 길게 쓰지 말고, 단문으로 간단하게

      

 문장을 짧게 쓰라는 조언이 기억에 남아있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단문이란 [둘 이상의 절이 접속되지 않고 자기 안에 내포문을 갖지도 않는, 즉 동사를 하나만 갖는 문장] 이라고 한다. 형용사도 많이 쓰고, 콤마도 자주 쓰는 습관을 돌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전문가는 다르시군요. '너무, 매우, 많이, 진짜' 안 쓰려고 노력하는데 안 쓰면 글이 안 써진다. 이론과 실전에는 이런 간극이 있군. '졸라, 짱나, 개짜증'을 안 쓰는 것만으로도 칭찬 해 주고 싶다. 희희.     


 20꼭지를 작성하면 bookk에서 한 권 만들 수 있다 이거지. 뭐 15꼭지면 어떠랴. 21꼭지여도 상관없지만. 또, 딴 얘기로 빠지지만, 유튜브에서 봤는데 사람들은 숫자가 0, 5, 10 이런 식으로 끝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13, 17 이런 식으로 일을 마무리해도 좋다고 한다. 그냥 생각나서 적어봤다. 내가 19꼭지로 책을 쓴다면, 1꼭지를 더 쓰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인 것이라고 생각 해 주십쇼. 하여간에! 우선 20꼭지를 기준으로 작업 해 보자. 2년 전에 수강료 내고 배운 보람이 있네. 어떤 일정으로 작업해야 할지 (거창하다 아주) 기준도 세울 수 있고 말이야. 이티떡과 나훈아만 남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민석 작가님. 글쓰기 수업에 작성했던 과제 하나를 첨부 하며 이번 글은 마무리하련다. 앞으로도,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조건 등록하고 보자. 앞으로 또 어떤 것 들을 배워갈까. 재밌을 것 같아.      


[제목: 주말 밤의 단상]      

 지금은 토요일 자정이다. 월요일은 출근을 해야 하니, 에세이 클래스 과제를 작성하려면 오늘 밤과 일요일 밖에 시간이 없다. 하지만, 내일의 나는 조조로 ‘탑건 : 매버릭’도 봐야 하고, 운동도 가야하고, 쓱배송 받아서 냉장고 정리도 해야한다. 도서관서 빌려 놓은 ‘프로젝트 헤일메리’도 반 권은 읽어야 반납일에 맞출 수 있다. 동네 도서관 5월달 우수 회원인 나는 연체를 할 수 없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이것은 나와의 싸움. 주말 밤은 항상 시간이 아깝지만, 오늘은 유난히 해야 할 일이 많다. 솔직히 오늘 밤은 글을 쓰기 보다는, 그냥 읽고 싶다. 으아아.      


 작가님과 같은 최씨인 나는 C반이라 코멘트는 넷째 주에나 받을 수 있다. 작가님도 분명 과제에 부담 갖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의 모범생 콤플렉스가 숙제 미제출을 견딜 수 없게 한다. 셀프로 왜 이렇게 고통을 받는가 생각 해 보았다. 나는 이 에세이 클래스를 왜 듣게 되었는가. 다른 수강생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최민석 작가님의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베를린 일기’는 아는 언니가 재미있다고 선물 해 줬던 책이었다. 당시의 나는 도쿄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어로 된 책이 항상 그립고 고팠다.      


 언니에게 책을 받았을 때 난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고, 전기밥솥이 고장이 난 상태였다. 그래서, 집 앞 슈퍼에서 사온 1990엔짜리 냄비로 밥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책에서 작가님이 베를린에서 찍어서 올린 냄비 밥 사진이 지금 내가 짓는 밥과 똑같이 생겼었다. 타국에서 냄비 밥 지어먹어 보지 않은 자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사진을 본 순간부터 이 책에 친근감을 갖게 되었다. 새로 지은 냄비 밥을 떴다. 고추 참치 싹싹 비벼 먹으며, 한국어로 된 종이책을 맛있게 읽었던 추억이 있다.      


 그 후로, 몇 년 뒤, 나는 한국으로 귀국을 했고, 이북 리더기를 구입했다. 한국에서 한국어로 된 책을 읽는 건 편의점서 새우깡 사는 것만큼 손쉬워졌다. ‘베를린 일기’를 읽던 시절과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말씀이다. 이북을 열어 다운 받아 두었던 ‘40일간의 남미일주’를 읽기 시작했다. 아니 세상에. 냄비 밥을 지어먹으며 고독한 외국 생활을 하는 작가님이라고 동지의식을 가졌었는데! 어느새, 결혼도 하시고 아이까지! 하기사, 두 책이 4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출판됐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지. 책을 읽기 시작하자, 작가님 특유의 발랄함과 개그감은 여전해서 안심을 했다.      


 책에서 ‘매번 자연이 좋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도시에 살아야겠구나’ 라고 적힌 대목을 읽었다. 이때 나는 강릉 본가에서 일 년 동안 백수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도시 생활에 목말라 있었다. 매일 경포바다를 보고 있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주말이면, 지하철 타고 광화문 가서 미진 메밀국수 먹고, 교보문고 가서 책 한 권을 사고 싶었다. 마무리로는 교보문고 건너편 커피빈에서 얼음이 잘잘한 ‘아아메’ 마시면서 책 읽는 것.     

 

 그때의 나에게 스며든 저 문장. 최민석 작가님은 나에게 ‘냄비 밥’과 ‘도시생활자’ 이미지로 남게 되었다. 나도 뼛속까지 ‘시티 걸’이기 때문에, 바다보다는 빌딩이 좋아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어느 날 글쓰기 강좌를 검색하다, 작가님 성함을 발견하고, 오늘 날에 이르렀다는 이야기이다. 이 강좌가 끝나고, 작가님을 생각하면 ‘비’라는 이미자 추가될 것 같다. 강의 있는 날마다 비가 너무 내리네요.      


 글쓰기 숙제가 셀프 고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글쓰기는 재밌다. 코멘트를 받는 넷째주가 오면 또 고통 받겠지만, 오늘 밤은 재밌었다. 그러면 된 것 같다. 이제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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