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돌에 관하여]
내 안의 덕후 유전자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학창시절에 난 항상 덕질을 했었다. 내 첫사랑은 차인표 오빠. 중학교 1학년때, ‘사랑을 그대품안에’를 보고 한 눈에 반해버린 나. 그전에, ‘캔디 캔디’를 읽으면서 테리우스를 좋아하긴 했지만, 종이가 아닌 실물 남자 사람을 좋아한 것은 인표 오빠가 처음이야. 그땐 TV 가이드라고 매주 나오던 연예 잡지가 있었는데 그거 사서 사진 잘라서 베개 밑에 넣고 자고는 했다. 꿈에서라도 만날까 해서요. 오 마이 러브. 우리 인표오빠가 68년생. 내가 81년생. 나이 차이를 극복 못하고, 다음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는 바로 키아누 리브스.
‘스피드’라는 영화를 보고 또 폴 인 러브. 아니 근데 지금 찾아보니까 키아누는 64년생이네. 연상남을 좋아했구나 사춘기 보돌이. 키아누가 나온 ‘폭풍속으로’ 라는 영화도 좋아해서 10번도 넘게 돌려보고, ‘스피드’는 아예 비디오테이프를 사서 맨날 돌려보고. 대여점가서 포스터도 얻어 와서 방에 붙여두고 난리. ‘스피드’가 히트를 쳐서, ‘리틀 부다’라는 키아누 리브스의 영화가 개봉을 했다. 선착순 100명인가 영화 포스터를 준다고 해서. 혼자서 종로에 있는 극장에 (시청에 호암아트홀이었던 것 같기도) 새벽같이 줄을 서서 받아왔었지. 줄서있던 뒷모습이 찍혀서 스포츠 신문에 올라오기도 했었다. 이때 키아누 리브스 인기가 어마어마했거든요. 근데 포스터 사진이 부처님 분장을 한 키아누여서 그렇게 악착같이 받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잘생긴 역할도 아니고, 부처님인데. 레어템에 집착하던 덕후 어린이.
그리고는 또 다른 헐리웃 신예 배우로 갈아타게 되는데 그는 바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레오는 진짜 심각하게 좋아해서, 만나면 결혼해야 되니까 영어공부에 매진했다. ‘토탈 이클립스’에서의 레오의 미모는 천상계였으니까요. 왜 대머리 아저씨랑 동성애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구요. 그러기에는, 너의 미모가 너무나 아름답다고요. 사랑은 나랑 하기로 했잖아. 오빠! 그리고, ‘바스켓볼 다이어리’, ‘로미오와 줄리엣’. 이 시절 레오에게 완전 미쳐있었다. 심지어 ‘바스켓볼 다이어리’는 고등학생이 마약하는 내용이라 극장 개봉을 못 해가지고, 영화잡지 포스터만 얻어서 방에 붙여놓고 있었지. 자기 전에 오빠들 보고, 일어나서 또 오빠들 보고. 덕후의 하루. 하여간에, 현재의 레오의 모습은 할 말은 많지만, 말은 줄이겠다. 잭 니콜슨 닮았다고 말 안했어요. 안 했다구요. 25세 이하의 여자들만 만나는 것도 변태 같다고 말 안했어요. 안 했다구요.
장르가 헐리웃 배우에서 아이돌로 넘어가서 영국 보이밴드 테이크 댓에 빠져들었다. 심지어 그룹 해체하고 좋아하기 시작했음. Mtv에 나온 20분짜리 영상보고 또 비디오를 돌리고 돌려보다가, 비디오 플레이어가 뜨거워져서, 선풍기 틀어주면서 또 돌려봤다. 한 번 빠지면 백 번 보는 스타일. 멤버인 마크의 치골 주변에 돌고래 문신이 있었는데, Mtv 자막에서 국부에 문신이 있다고 적혀있었다. 국부가 어느 부위인지 모르던 나는, 영어 과외를 해주던 윗집 언니한테 “언니. 국부가 어디에요?”라고 물어봤다. 언니가 얼굴이 빨개지더니 허튼소리 말고 단어나 외우라고 등짝을 때렸다. 요즘 같으면 네이버에서 바로 쳐 봤을 텐데. 흠흠. 아니 왜 문신을 그런 엉뚱한 부위에 한 거야. 마크씨.
그룹을 해체하고 나서 좋아한 것이 억울해서, 2009년 런던에서 한 재결합 콘서트에 다녀오기도 했었다. 일본에서 어학원 다니던 시절인데, 아르바이트를 두 달 동안 하루도 안 쉬고 해서 모은 돈으로 다녀왔었다. 당시 학원비를 3개월에 한번 15만엔씩 내야했는데, 영국에 일주일 다녀오려면, 플러스로 15만엔 이상은 모아야 했다. 도가니가 어렸던 시절이라 가능했지요. 콘서트 티켓은 몇 달 전에 이미 사놓고, 갈까 말까 했었는데, 한 사건이 있어서 그냥 저지르기로 했다. 여행사 동호회에서 알고 지냈던 부산 사는 동생이, 출근길에 트럭이랑 사고가 나서 하루아침에 하늘나라로 갔던 것. 20대 중반의 어린 동생이었는데.. 인생이 허무해져서, 하고 싶은 일은 다 하자. 라며 런던 행 비행기 표를 10만엔 주고 예약했다. 고생해서 갔던 콘서트 자체도 좋았지만, 런던 웸블리 스태디엄에서 ‘아, 중학교 때의 나는 내가 여기에 올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라며 감격했던 기억. 1년 뒤에는 ‘아, 내가 로또 1등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싶다. 이번 주는 되나요. 제발요.
테이크 댓 이후로는 일본 쟈니스 아이돌과 라르크라는 락밴드를 좋아했는데, 이 부분은 너무 매니악한 이야기가 되니까 패스하도록 하겠다. 그들 덕분에 일본어 실력은 일취월장을 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고마운 부분. 역시 언어를 익히려면 덕질 만한 것이 없느니. 요즘에는 덕질도 시들시들해서 뭐 언어 실력이 늘어날 계기가 없군요. 에버랜드 사는 판다 바오 가족 덕질만 하고 있는데 판다어를 배울수도 없고. 그래도, 판다들은 사고치는 일도 없고, 얼굴도 귀엽고, 행동도 순수한 것이 마음이 편안 해 지는 덕질이다. 푸바오야 사랑해.
2013년부터 좋아한 샤이니와 2015년부터 좋아한 조성진 이야기를 쓰면 얼추 분량이 맞겠다. 그 외에도 잔잔바리 덕질들이 있었지만, 이렇게나 길게 좋아한 것은 이들뿐인걸. 나는 빨리 질리는 스타일이라, 보통 1년 반 지나면 흥미를 잃는다. 그런데 샤이니와 조성진은 10년이 넘었다니. 나로서는 기록적인 덕질 기간이다.
일본에서 샤이니 콘서트를 제일 처음 갔던 것은 2013년 겨울. 나와 한국어 공부를 하던 일본인 학생이 “친구가 예매해서 남는 티켓이 있는데 혹시 구입해서 가겠냐”고 물어봤었다. 샤이니야 뭐 한국인들은 ‘링딩동’으로 다 알고 있었으니 재미삼아 은영이랑 콘서트에 가게 되었던 것. 생각보다 콘서트가 재밌어서, 2014년의 도쿄돔 데뷔 콘서트도 동일인에게 양도 받아서 또 가고, 그렇게 빠져들었링딩동링디기리리. 티켓을 양도 해 주시던 분들은, 60대의 주부 분들이셨다. 내 한국어 학생의 친구가, 슈퍼쥬니어 콘서트 끝나고 갔던 라멘집 옆자리에 앉아서 덕질 얘기를 하다가 친해진 사이라고 했다. 나중에는 나와 은영이랑 일본인 주부 덕질 멤버 3인이 친해져서, 5명이서 콘서트를 같이 다녔다. 오사카 쿄세라돔 공연보고 뒷풀이로 먹었던 교자와 생맥주가 얼마나 맛있었던지. 샤이니 자체로도 좋았지만, 같이 즐길 사람들이 있어서 더 재밌었던 덕질의 추억.
콘서트가 끝나고는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꼭 은영이랑 생맥주나 진토닉에 카라아게를 먹었단 말이죠. 프론토라는 카페가 저녁에는 bar로 변신해서 애용했다. 한 잔씩 들이키면서 공연 소감을 나누던 시간들이 우리들이 스트레스 풀던 방법. 콘서트도 티켓이 1만엔 정도 했으니까 만만치 않았는데, 둘이서 외국 생활하면서 쌓인 스트레스 심리 상담료 내느니, 콘서트 보러가는 것이 더 싸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고는 했다. 도쿄 콘서트도 가고, 한국에서 하면 또 한국도 가고, 가끔 오사카도 가고, 태민이가 솔로콘서트 하면 그것도 가고. 하다보면 3개월에 한 번씩은 콘서트에 갔었던 듯. 데뷔하고 몇 년이 지나도 매너리즘 없이 열심히 하는 샤이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도리어 우리가 응원 받는 기분이었다. (주저리 핑계가 길군요).
샤이니하면 종현이가 하늘나라 갔을 때 이야기를 빼 놓을 수가 없는데, 이때 회사 동료부터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까지 괜찮냐고 카톡과 라인 메시지가 왔었다. 아니, 내가 샤이니 팬인 것이 이렇게 전국구로 알려졌었단 말인가. 하고, 나중에 카톡 사진첩을 봤더니 누가 봐도 샤이니 팬이었음. 하여간, 그런 아픔을 이겨내고 지금도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응원과 사랑밖에 보낼 것이 없다. 샤이니는 춤도 노래도 좋아하지만, 덕후 친구들과 콘서트 보면서 쌓인 추억들이 많아서, 내 마음의 친정 같은 그룹. 그들은 나를 몰라도, 나는 영원히 사랑하리.
마지막으로 조성진 덕질 이야기를 하자면, 아 또 얘기가 길어지는데. 클래식 문외한이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류이치 사카모토는 좋아했었다. 피아노 연주 듣는 것을 좋아했다. 2015년 10월 한국인이 처음으로 쇼팽 콩쿨에서 우승했다는 뉴스 자료 화면으로 ‘영웅 폴로네이즈’를 치는 모습이 나왔는데, 그걸 보고 또 나는 폴 인 러브. 인간의 손가락이 저렇게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인가. 도쿄 예술극장에서 열린 쇼핑 콩쿨 입상자들의 갈라쇼에 간 것이 내 덕질의 시작이었다. 그 뒤로 얼마나 많은 가산을 탕진했던가. 내 통장 눈 감아.
2017년 1월. 조성진의 나고야 리사이틀에 가기 위해 도쿄역에서 아침에 신칸센을 타야했다. 하지만, 늦잠을 자버린 것. 신칸센 티켓값만 1만엔인데! 머리도 안 감고 양치만 한 채로 도쿄역으로 달려갔지만, 5분 차이로 티켓을 날리게 된 나. 눈물을 흘리며 다음 차편을 예약하고, 나고야 도착해서는 찜질방에 가서 목욕재계를 했다. 노천탕 티비에서 추리 드라마를 틀어줘서 그거 결말까지 보느라고 1시간은 있었더니 인간 배추찜 될 뻔 했던 추억. 산뜻하게 목욕하고 나와서 나고야의 명물 장어 덮밥도 먹고, 느긋하게 콘서트 홀로 갈 수 있었다. 그 날 연주는 언제나처럼 좋았지만, 지금까지 생각나는 것은 노천탕과 장어덮밥이다. 티켓값을 날린 것은 안타까웠지만, 즐거웠던 하루로 기억하고 있다. 도쿄에서는 산토리홀 로비에서 파는 커피를 좋아해서, 공연을 보면 꼭 커피를 마셨다. 도자기 잔에 나오는 진한 드립 커피에 설탕이랑 크림을 넣고 스푼으로 휘휘. 연주를 들으러 가지 않는 날도 커피만 마시러 갈까 생각했다. 하지만, 연주회 직전이라는 설레임이 없으면 그 맛이 아니겠지 싶어서 포기했다. 덕질을 매개로 추억을 쌓는 것이 궁극적 목적인 것 같기도 하다.
드라마 ‘밀회’를 재밌게 봤었는데, 마지막에 유아인이 모차르트의 ‘론도 k.511’을 연주하면서 끝난다. 그 마지막 장면과 피아노 선율이 인상 깊게 남았었다. 그리고, 조성진이 낸 앨범에서 이 곡을 듣고 가슴이 찌잉-. 조성진 연주 중에는 역시나 쇼팽 곡을 좋아하긴 하지만, 음. 제일 좋아하는 연주 1개만 고르라고 하면, 론도를 고를 것 같다. 말로 설명은 어려우니 한 번씩 들어주세요. 뭔가 가슴속 깊이 절절해진다. 애절한 연애사라고는 1도 없는 인생이건만. 앞으로도 항상 무엇인가를 좋아하고, 즐거움을 찾으며 살고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