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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돌 Aug 09. 2024

시작하며

언젠가 책을 쓰겠다며 허풍을 날리고 살아온 세월이 이십년은 된 것 같다. 이번 생애 책 한 권을 쓰지 않으면 죽어서 지옥 갈 것도 아닌데, 왜 집필 계획을 떠벌리며 다녔단 말인가. 교보문고에 가서 에세이 코너, 동네 도서관에 독립출판물 코너 책들을 보며 “아니. 야, 이건 나도 쓰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생각만 하고 자판은 두들기지 않았던 지난 세월. 최소 그 책을 낸 사람들은 결심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낸 존경할 만한 이들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남을 평가하는 것은 쉬운 일. 나도 쓸 수 있으면, 쓰면 되는 것 아닌가?      


 책 제목이 왜 [매일, 보돌]인가. 그것은 나, 최보윤보돌이 살아온 매일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 보돌이가 어디에서 나온 이름인가부터 설명해야겠구나. 국민 학생 시절 머리모양을 숏컷으로 잘랐는데, 그 모습이 남자아이 같아서 지어진 별명이다. ‘보’+남자아이의 별명인 ‘돌’=보돌. 온라인에서도 닉네임을 지을 때는 항상 ‘보돌’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보윤이는 수줍고 생각이 많고, 보돌이는 좀 더 재밌고 활기차고. 보윤이라는 본체와 온라인상에서 보돌이라는 부캐로 살아가면서 느낀 차이점이다.      


 참, 내가 태어났을 때 작명소에서 받아온 이름이 보윤 아니면 유리였다고 한다. 난 보윤이라는 이름을 좋아하는데 최유리라는 이름으로 살았으면 어땠을까 상상 해 봤다. 이름 따라 간다고 공주님처럼 자랐을까? 최유리로 살았을 내 인생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보윤이라서 다행이야.     


 그래도, ‘블로그를 이십년 가까이 작성 해 왔으니 꾸준하게 글을 쓰는 버릇이 들었다.’고 생각했으나, 사진 아래 단순하게 캡션을 다는 것. ㅋㅋ 와 ㅎㅎ를 남발하며 가볍게 쓰던 블로그글 과는 달랐다. 잘 쓴 글이던 아니던 오롯이 자기의 생각을 A4 2~3장씩 채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것도 글을 쓰기 시작 한 다음에야 알게 된 사실. 글쓰기 강의나 책을 읽어도, 글을 잘 쓰는 방법은 무조건 많이 쓰는 것이라고 했다. 운동처럼, 글쓰기도 꾸준하게 해야 성장한다. 일주일에 가능하면 두 꼭지, 보통은 한 꼭지씩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글은 허접해도, 마음가짐만은 완전 무라카미 하루키 아니냐면서.       


 자판에서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여서 써지는 에피소드 들도 있었고, 제목은 정했는데 머리를 쥐어짜도 써지지 않는 글도 있었다. 글 쓰는 사람도 나, 소재를 정한 것도 나인데, 차이가 난다는 것이 참 이상하기도 하지.   글쓰기가 막막한 날도, 무조건 꾸준하게 쓰라기에 썼다. 뭐라도 쓴 다음에 수정을 하면 그래도 한 꼭지 채울 수 있더군요. 원고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블로그에 올려도 ‘좋아요’가 많이 눌리는 것도 아닌데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 것인가 회의도 들었다.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고 있는 이유는, 결국 내가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이다.      

 일반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서, 결혼을 한 보통의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이직도 자주하고, 오랜 기간 외국에서 살기도 했다.       


나의 장점: 호기심이 많다.

나의 단점: 호기심이 너무 많다.      


 닥치는 대로 해결하며 살아온 경향이 있는 20-30대를 지나, 40대 초반에 (만 나이로 계산) 들어서니, 지나온 날들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구난방 찍어온 점들을 이어서 선으로 만들고 싶어졌다. 마음은 항상 있었는데, 문득 작년 12월 31일 저녁에 에세이 목차 제목들이 떠올라서 아이폰 메모장에 적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십년간 기다려 왔던 영감이 내려온 날. ‘여행을 좋아하는 보돌’, ‘보돌이 좋아하는 도시’, ‘외국어 공부와 보돌’ 등등. 나에 대한 이야기로 책 한 권을 채우고 싶었다. 에세이라는 것이 이런 것 아니겠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 생각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해서 전해주면 좋을 것 같았다. 이런 나라도 괜찮겠습니까!? 아니면 말고.      


 생각 해 보면, 20대~30대는 항상 ‘이건 꼭 갖고 싶어.’ ‘이건 꼭 해내고 싶어.’라는 마음이 컸다. 당연히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은 열 개 중에 하나라도 있으면 고마운 일. 마음대로 안 되는 일에 대한 불만을 버리기 위해 40대에 내가 새로 만든 신조는 ‘아니면 말고’. 양희은님의 ‘그러라 그래’에서 감명 받은 나. 뭔가 초월한 듯, 심드렁한 듯, 쿨한 단어를 찾아 헤매다가 발견한 것이 ‘아니면 말고’이다. 자매품으로는 ‘싫으면 말고’.      

 중간에 안 될까봐 무서워서 시작 자체를 안 하기보다는, ‘해보다가 아니면 말고. 될 일이면 될 테니까 우선 시작 해 보자.’ 라는 마음으로 세팅 값을 바꿔보았다. ‘해야만 해!’가 아닌, ‘우선 해 보자!’로 살아가는 40대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재밌고 활기찬 인생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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