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도 할 수 있어!
통장에 잔고가 1000만 원밖에 없었기에 중고 기구 구입을 알아봤다. 가격이 저렴하면 기구가 낡았고 반면에 상태가 좋으면 예산을 초과했다. 필라테스 기구는 한번 구매하면 최소 10년 이상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중고 기구라고 할지라도 상태가 좋으면 새 상품과 가격차이가 크지 않다.
그러던 도중, 구매한 지 1년도 안 되는 매물을 발견했다. 나는 판매자에게 바로 연락을 하고 어머니와 함께 기구를 보러 갔다. 기구의 상태가 너무 깨끗해서 60% 가격으로 이렇게 좋은 물건이 나오다니 하늘이 나를 돕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매자는 필라테스 강사였다. 갑작스럽게 결혼을 하게 되어 급하게 처분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중 한 개만 구매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기구를 개별로 판매하면 잘 팔리지 않아서 무조건 한꺼번에 구매할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막상 기구를 실제로 보니 한 세트를 모두 갖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마침 판매자도 묶음으로만 판매가 가능하다고 하니 나는 어쩔 수 없이 모두 사야 하는 분위기로 상황을 몰아갔다. 옆에 계시던 어머니가 의외로 긍정적인 대답을 하셨다. 여전히 그 당시 어머니가 왜 쉽게 허락하셨는지 의문이다. 바로 직전까지 기구 한 개 구매도 겨우 허락받았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나는 판매자에게 당일 구매를 할 테니 가격을 깎아달라고 네고했다. 그녀도 하루빨리 센터를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라 530만 원에 거래하기로 최종 결론이 났다.
때 마침 미국에 체류하고 있던 언니가 현지에서 직장을 잡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타이밍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마침 기구를 들여놓을 공간이 없었는데 언니가 쓰던 방을 비우고 필라테스 기구를 들여놓을 수 있게 되었다.
앞서 언급했던 기존 회원님들의 보상 수업을 하던 상황으로 돌아오겠다. 대관료를 지불하며 수업을 하는 것이 막판에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불편했다. 결국 회원님 한 분을 우리 집으로 초대해서 남은 수업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 마침 운동방을 만든 시기와 오버랩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가장 처음 방문한 회원님이 현관을 들어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문이 열리자마자 천진난만한 얼굴로,
“쌤! 제가 쌤 집에도 다 와보네요!”
라고 말하며 생글생글 웃으며 들어왔다. 나보다 다섯 살 어리기도 했고 동안이라 더 천진난만해 보였다. 그간 친하게 지냈지만 그렇다고 해도 회원님을 집까지 초대하다니 나도 이 상황이 조금 웃기기는 했다. 하루는 그분이 운동을 하다가 멈추고,
“선생님 저는 여기 너무 좋아요. 선생님! 그냥 여기서 일 하세요!”
라고 말했다. 순간 멈칫했다. 나는 집에서 일을 하는 것을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 반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에이~ 불편하지 않을까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러자 회원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전혀요. 저는 여기 너무 좋은데요? 이렇게 집에 필라테스 룸을 꾸며 놓으니까 더 아늑하고 편하고 좋아요.”
내가 손수 만든 공간을 좋게 봐주니 기분이 좋았다. 집에 있는 운동방에서 일해볼 생각은 애초에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가볍게 웃고 넘겼지만 수업이 끝나고 회원님의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마침 호텔과 구두 계약이 갑자기 불발된 상황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나의 성격상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하는 것은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오픈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분 말대로 정말 이 공간에서 일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절히 바라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이런 걸까?’라는 생각이 처음 든 경험이었다.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기적같이 타이밍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상황을 정리하자면 대략 이렇다. 원래 기구 한 개만 사려고 했지만, 때 마침 저렴한 가격으로 거의 새 기구나 마찬가지인 기구를 한 세트 구매하게 되었다. 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언니가 현지에서 직장을 잡게 되었다. 언니 방이 비게 되었고 그곳에 기구를 들여놓을 수 있었다. 도중에 이직하려던 호텔과 계약이 불발되었다. 기존 회원님의 보상 수업을 제공하다 집에서 사업을 시작할 아이디어와 용기를 얻었다.
마치 누군가가 계획해놓은 것 마냥 모든 상황이 설명할 수 없게 동시 다발적으로 톱니바퀴 돌아가듯 맞아떨어졌다. 우연이였을까? 우연이란 표현은 무언가 부족하다. 기적과도 같은 운이 내게 온 것이다. 이제 그 운의 흐름을 잘 타고 흘러가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