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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디진 Oct 23. 2021

진상고객이 내 단골이 될 때까지

내 사람 만들기

성북구에서 서래마을까지


성북구 정릉동에서 서래마을에 있는 내게 온 고객이 있다. 버스를 무려 3번이나 갈아타고 왔다. 버스에서 내리면 10분이 넘는 언덕길을 걸어 올라와야 했다. 그렇게 주 2회 방문했다. 운동을 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못해도 4시간은 족히 넘는 시간이었다. 나의 고객 중 가장 멀리서 배우러 온 분이다. 그분은 어떻게 정릉동에서 서래마을까지 운동을 하러 오게 된 것일까?




우리의 첫 만남은 3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내가 강남역에서 오전 강사로 취업을 한 직후였다. 원장님은 당신의 고객 중 한 분을 나의 첫 고객으로 양도했다. 환한 미소를 띤 원장님은 고객 프로파일을 내게 넘기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센터에서 가장 어려운 고객이야. 벌써 담당 선생님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몰라. 선생님들마다 도저히 못 가르치겠다고 손사래 쳤어. 힘들겠지만 네가 한번 가르쳐 봐.”


고도의 미션을 부여받은 느낌이었다. 입사 신고식인가? 왠지 이 미션을 제대로 수행해야만 내가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떤 사람일지 몹시 궁금했다. 특히 아무도 해내지 못했다는 부분에서 굉장한 매력을 느꼈다. 승부욕에 발동이 걸렸다.



첫 만남

오전 6시 50분 즈음 문을 열고 한 여성이 센터로 들어왔다. 그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다. 170cm이 넘는 큰 키에 피곤해 보이는 듯한 분위기 그리고 조금 화가 나 보이는 듯한 뚱한 표정이었다. 침대에서 방금 일어난 듯 머리는 헝클어지고 대충 추리닝을 걸친 모습이었다. 그분은 들어오자마자 탈의실에 바로 들어갔다. 운동복을 갈아입고 7시 정각에 나와 레슨을 시작했다.

 

나의 모든 질문에 귀찮다는 듯 건성으로 대답했고 말을 건네도 별 반응이 없었다. 계속 화가 난 듯한 뚱한 표정이었다. 동작을 시켜도 건성으로 제 멋대로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내 말을 듣고는 있는 걸까?' 시범 동작을 보여줘도 곁눈질로 대충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제야 기존에 담당했던 선생님들이 어떤 부분에서 힘들다고 말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수업하기 힘든 것은 둘째치고 왠지 모르게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가엽게 느껴졌다.


우리의 첫 레슨이 끝나고 그녀는 탈의실로 들어갔다. 한 시간 즈음 뒤에서야 탈의실 문이 열렸다. 풀 메이크업에 세미 정장을 입은 ‘직장인 언니’로 변신이 되어있었다. 표정은 역시나 뚱하게, 나한테 대충 인사를 건네고 센터를 나섰다. 정릉동에서 강남역까지 와서 운동을 배우고 역삼으로 출근하는 거였다. 센터를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단하다. 정말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분이구나.’


나는 성실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성실한 사람들은 대부분은 정직하고 진실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사는 사람 치고 악한 마음을 품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분이 좋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늘 괴짜로 분류되는 평범하지 않은 아웃사이더들에게 관심이 갔다. 그 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한결같이 상냥하게 수업했다. 그분이 멋대로 동작을 하는 듯 보이면 나는 멈추고 천천히 자세를 잡아주며 아기라고 생각을 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설명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그분의 체형이 점점 아름다워지기 시작했다. 하루는 원장님이 내게 와서 웃으며 물어봤다.


“그분 어때? 많이 힘들지?”


“아뇨? 힘든지 잘 모르겠는데요?”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원장님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래?”라고 하시더니 이내 웃으면서 “잘 됐다. 앞으로 잘 가르쳐 봐.”라고 말씀하셨다. 3개월 정도 시간이 흐르자 그녀는 내게 먼저 사적인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연예인 누가 어떻고 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고 등의 이야기 말이다. 나는 그분이 겉 보기에 차가워 보이지 속은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여리고 정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분이 나에게 속 마음을 열어서 무언가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하루는 원장님께서 내게 오시더니 활짝 웃는 얼굴로 말씀하셨다.


“원래 결석이 잦은 분인데 민지랑 운동을 하면서 요즘 출석률이 좋으시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나는 이직을 하게 되어서 강남역 센터를 그만두게 되었다. 나는 그 고객님과 헤어지는 게 무척 아쉬웠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그녀에게 말했다.


“저 오늘 마지막 날이에요”


나는 내심 아쉬워하는 반응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분의 입장에서는 예고 없는 깜짝 뉴스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작 돌아오는 반응은 의외였다. “아 그래요?”라는 건조한 대답 외에 특별한 말이 없었다. 그분은 뚱한 반응으로 마지막 인사를 대충 하고 나갔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무미건조하고 씁쓸하게 막을 내렸다.



재회

세월이 흐르고 내 사업을 시작했을 즈음이다.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카카오 비즈니스 계정을 확인해보았다. 레슨 문의를 하는 메시지가 몇 개 도착해 있었다. 그중 낯익은 이름이 있었다. 순간 눈을 의심했다. 3년 전에 강남역에서 가르쳤던 바로 그 회원님이었다. 카톡을 확인해보니 정말 짧게,


'레슨비 문의드립니다.'


라고 적혀있었다.  그래도 그즈음 유독 그분 생각이 나서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나에게  발로 찾아오다니 감격스러웠다. 나는 호들갑을 떨며 그때 그분 맞냐며 반갑게 맞이했다. 레슨은  받아도 되니  놀러라도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녀는 거짓말 같이 나를 보러 우리 집으로 방문했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이야기 봇물이 터졌다. 나의 짐작과는 다르게 그분은 마지막 날 무척 아쉬웠다고 했다. 그간 많은 선생님들에게 배웠지만 나에게 배웠을 때가 몸이 가장 좋아졌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녀는 그날 역삼에서 퇴근하자마자 우리 집에 온 거였는데 무려 1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했다. 이따 성북구에 있는 집까지 돌아가는 데는 더 오래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나와 다시 운동하고 싶지만 거리 때문에 주저했다. 나 역시 수업을 해드리고 싶었지만 워낙 거리가 있으니 등록은 굳이 안 해도 괜찮다고 이렇게 얼굴이라도 비추러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녀는 고민해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내심 그분을 무척 가르치고 싶었지만 이는 내가 강요할 수는 없는 부분이었다.


워낙 멀어서 나는 당연히 연락이 안 올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등록을 하겠다는 메시지가 왔다. 무척 기뻤다. 이렇게 먼저 오겠다고 연락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이 다시 이어졌고 함께 운동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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