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의 의미
물리치료사로 일하며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절단환자, 신경계, 근골격계 및 종양 환자까지.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세상엔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구나."
어쩌면 오늘 하루,
눈을 떠서 일어나 걷는다는 것 자체가 기적일지도 모른다.
아프고 나면 일단 '내 힘으로 걸어 다닐 수 있느냐, 없느냐'가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하게 된다.
이를 위해선 세 가지가 필요한데,
내 몸에 대한 이해, 몸의 근력, 그리고 마음의 근력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는 아프고 난 뒤엔 회복하기가 어렵다.
몸은 잘 느껴지지 않고, 근육의 힘은 빠지며, 마음은 점점 지쳐가기 때문이다.
나는 바랐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만이라도, 아프기 전에 혹은 병을 겪는 중이라도,
그 고통 속에서 조금은 힘을 덜 수 있기를.
그래서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이라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찾아갔다.
재활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왜 이 사람이 이런 움직임을 만들까'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원인이 근골격계라면 그에 맞게, 신경계의 문제라면 그 흐름에 따라 운동하면 된다.
이론적으로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환자가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움직이고 있지?"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린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현재 몸 상태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마치 죽음을 받아들이는 퀴블러-로스의 5단계처럼,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의 감정 단계를 거친다.
"젠장, 내가 제대로 걷지 못하다니. 그럴 리 없어."
→ 부정, 분노
"그래도 열심히 운동하면 예전처럼 될 수 있을 거야."
→ 타협
그러나 몸은 마음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운동해서 뭐해... 어차피 빨리 좋아지지도 않는데."
→ 우울
이 단계에서 멈추기도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그래. 차라리 나를 돌아볼 기회야. 지금을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해보자"
→ 수용
물론, 처음부터 수용하고 꾸준히 운동에 임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정말, 정말 어렵다.
그리고 나 자신조차도 그런 환자를 완전히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란, 참 그렇다.
그렇기에 재활은 공감과 교감이 더욱 중요한 분야다.
이별한 친구를 위로하듯, 공감하고 함께해야만 한다.
텔레파시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움직임'으로 공감하려 노력한다.
여기서 말하는 '움직임으로의 공감'은
단순히 환자의 동작을 따라 하는 것을 넘는다.
먼저 서로의 호흡을 느낀다.
숨소리를 들으며 호흡의 양과 수를 맞춘다.
발바닥의 촉감을 함께 느낀다.
양말을 벗고, 바닥의 온도와 감촉을 공유한다.
시선을 마주한다.
일그러진 표정은 함께 일그러지고,
웃음은 함께 웃고,
슬픔은 함께 머문다.
이렇게 감화된다.
이제 오감을 토대로 고유수용기를 함께 자극한다.
움직임이 부족한 관절을 부드럽게 이완하고,
힘이 부족한 부위를 함께 단련한다.
서로 숨차게 땀을 흘리고,
운동이 끝난 뒤엔 나란히 물 한 모금을 마신다.
그렇게 모든 감각을 공유하고 있노라면,
조금은 환자와 내가 하나가 된 듯한 감정이 든다.
진짜 재활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신입 시절의 나는 환자를 많이 탓했던 것 같다.
재활 커리큘럼을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에 속상하고, 답답했고,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그들이 나빴던 게 아니라,
내가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가만히 앉아 환자를 '운동시키는 것'은
재활이 아니었고, 공감이 아니었다.
나는 재활하는 척, 공감하는 척만 했던 것이다.
몸의 회복은 지식과 기술을 넘어서 감정이고, 감각이고, 상호 간의 교감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늦게야 깨달았다.
내가 가진 기술보다
상대방의 마음에 닿는 진심, 그게 더 중요하다는 걸.
치료의 과정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마주 서는 일이다.
나는 말뿐이 아닌 내 온몸으로 대답하고 싶다.
같이 숨 쉬고, 같이 흔들리고, 같이 일어나는 것으로.
그래서 나는 오늘도 숨을 맞추고, 시선을 마주하고, 발끝을 함께 움직인다.
과학과 기술, 정보는 더 다양하고 정교해지지만,
그럴수록 우리가 회복에 있어서 더욱 집중해야 할 것은
공감이고, 사랑이고, 철학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