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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의 인턴, 1년 10개월의 정규직 그 끝에 남은 것

정규직 바로 안 하고 인턴만 4번 한 이유?

누군가는 제 이력을 보고 이름 들으면 알법한

종합 광고 대행사,

통신사,

유명 대기업 유통사,

이커머스 유니콘 스타트업을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인턴 경험만 1년 5개월을 꾸욱 채워 일했었습니다.

빨리 취업하지 왜 인턴만 주야장천 했을까? 의구심을 품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시대예보의 저자 송길영 작가님은 최근 EO 이오에서 기획한 콘텐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보여준다는 건
그만큼의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확인받는 일이기 때문에 두렵고,
내가 아직 설익었는데 내가 하는 말이
치기 어리거나 그만큼의 충분한 밀도가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거든요." 

저 또한 스스로도 글로써 누군가에게, 알지 못하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제 경력에 대한 저의 보이스를 들려줄 생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것이라면 저를 잘 알지도 못하는 이에게 보였을 때, 평가 받고 비난 받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유는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저를 잡아먹었던 조급함에서 나와 한발짝 떨어져 제 인생을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저와 비슷한 커리어 혹은 비슷한 생각을 품으셨던 분이 계시다면 

의견을 구하고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것부터 꺼내야할지 두서가 없을 수도 없겠지만 하나의 사건별로 차근차근 꺼내보려합니다.




종합 광고 대행사 체험형 인턴 경험이 나에게 준 것

(2018.08~2019.02)


해가 유난히 매우 뜨겁던 2018년 여름, 첫 인턴을 시작했습니다. 대기업 계열, 누구나 들어보면 알 수 있는 굴지의 종합광고 대행사 디지털 사업부에서 온라인 시장 리서치 업무를 했었습니다. 이때의 업무는 아마존, 찡동 등 글로벌 이커머스 시장에서 LG 가전제품의 광고 현황 데이터(메인 배너, 피쳐드 배너, 상세 페이지 리뷰 등)를 수집하는 업무였는데요. 단순 업무에 가까웠지만 그 당시 제가 인턴으로 일하며 꽂혔던 키워드는 "데이터 드리븐 의사결정", "데이터 시각화", "데이터 기반의 마케팅 전략" 등의 단어들이었습니다.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에서 곧 AI들이 다양한 업무를 대체한다는데,,,, 데이터가 중요해진다는데,,,,"

"취업 준비생인 나는 그럼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취업을 하고 싶다는 욕망과 함께 AI로 인해 도태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제 눈앞에 당도했습니다.

어찌 됐건 취준생으로서, 당장의 과제인 취뽀를 위해 무작정 채용시장에 뛰어들게 됩니다.



2년 동안 오프라인 대기업 유통사 1곳에만 4번이나 지원하는 취준생이 있다고?

(2019.02~2020.12)


네 그게 바로 접니다만(?)


2019년 상반기, 없던 인턴 경험도 생겼겠다. 대기업의 신입 채용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2019년 상반기에는 지원 회사에 대한 생각, 업계에 대한 기준, 심지어 직무도 그 어떠한 기준도 없이

취준 시장에서의 나의 포지션을 알기 위해 난사 지원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서류 지원에서 제일 만만한 곳이 오프라인 기반의 대기업 유통사들이었습니다.

당시, 대기업 유통사들의 경우 서류 단계에서 일정 수준의 정량 스펙을 중시하는 기업들이었고

어떤 기업을 갈지, 아무 생각이 없어도 대학생 시절 하라는 과제는 성실하게 하고 학점이나마 열심히 챙긴 평범한 대학생 중 하나였던 저는 아래 기준에 어느 정도 부합했기에 서류 단계에서 무조건 통과되는 기업이 2,3곳 정도 존재했습니다.


서울 상위권 대학

평균 정도의 학점

평균 이상(Opic IH, TOEIC 950점)의 영어 성적


또 그중에는 인적성 시험까지 해서 취업 준비 기간 2년, 상반기, 하반기를 통틀어 4개의 시즌동안 매번 합격하는 동일한 회사도 있었습니다. 이 회사에 대한 미친 로열티,, 라기보다 지원하면 무조건 합격시켜 주는 회사가 있다는 게 현실적인 취업준비생에게는 든든한 총알과도 같았습니다.


(지금 지나고 보면, 참 저에게 4번이나 기회를 준 그 회사에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어떤 회사는 한 번 지원하고 떨어지면 그다음 시즌에서는 떨어지는 회사도 꽤나 많습니다.)


지금 보면 부끄럽지만, 제 취준생 시절 제 자소서의 일부를 발췌했는데요.

성장 배경을 묻는 질문 가운데, 저의 어린 시절을 소환시켰습니다.

(지금 보면 매우 X100 오글거립니다. )

 중학교 시절, 도시지리학자이신 아버지의 논문 자료 수집을 위해 도우미를 자처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2,000개가 넘는 상가를 지도에 표시하는 일을 맡아 지친 상태에서, 아버지는 이렇게 조사한 상가들을 수십 가지로 분류해 입지 특성을 밝히는 데 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에겐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떤 데이터라 하더라도 기준과 의도에 따라서 색다른 가치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경험 자체는 사실이지만, 어린 중학생이 200X 년대부터 디지털 전환의 시대를 예견한 나머지, 데이터의 중요성을 실감했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제 DNA, 제 피 안에 데이터 분석 역량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패기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이를 본 면접관의 반응은 이러했습니다.

면접관 : "면접자 OO양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이런 경험을 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데이터에서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이끌어낸 경험이 있나요?"


이런 질문에 사실, 그렇다 할 경험이 아직 부족했으니 아직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떨어졌습니다.


이에 저는 면접에 대한 자체 피드백으로 "데이터 분석 경험이 없으니, 이를 보완하면 취뽀에 다다를 수 있을 거야"라는 가설 실험을 해보기로 결심하게 되었고, 다음 시즌까지 당시 유행하던 데이터 아카데미에서 데이터 관련 강의를 약 40여 시간 동안 수강하며 절치부심의 마인드 셋으로 데이터에 대한 안목을 기르게 됩니다.



통신사 전환형 인턴의 경험, 

그 가운데 전환 실패의 고배를 마시다.

(2020.03~2020.10)


앞선 본문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간절하게 준비하고 대기업 유통사 지원에 있어서는 벌써 4번이나 도전하지만 또 떨어지게 됩니다. (이를 보고 저는 아 아무리 했는데도 안 되는 거면 그냥 합이 안 맞겠거니 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전화위복으로 통신사 Sales & Marketing 직무에서 채용 전환형 인턴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당시 제 기억으로는 20년 1월부터 자기소개서 서류 준비를 했으니 어떻게 보면 10개월 동안이나 한 회사만 생각하며 시간과 노력, 그리고 제 온 열정까지 끌어모아 썼습니다.


20년 3월 - 서류 지원

20년 5월 - 인적성 시험

20년 6월 - 1차 면접

20년 7월~8월 - 인턴 실습

20년 9월 - 임원 면접

20년 10월 - 최종 발표


인턴 경험을 통해 어떻게 보면 데이터 분석과 같은 Hard Skill을 내세우는 것 이상으로 저 자체를 어필하는 능력과 사회성과 적응력과 같은 Soft Skill이 더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배울 수 있었던 값진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동시에 합격/불합격 결과를 기다리며 마음을 졸이며 최단시간에 몸무게가 5KG 이상 빠지는 등 44kg 대의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기도 했습니다.


2020년 10월 불합격했다는 소식과 함께 저는 인턴 실습을 통해 동고동락했던 동기들과 제 자신을 비교했던 이순간에 갈급함이 저를 잡아 먹었던 거 같습니다. 불합격 소식을 들은 동시에 눈물을 머금으며 50개가 넘는 회사에 지원서를 냈고, 외국계 회사에 3차 면접까지 가게 됐습니다.



내가 말로만 듣던 피. 뽑. 탈의 주인공이 될 줄이야.

(2021.12)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사진 동아리를 운영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사진 동아리의 주요 활동인 출사 활동을 100% 출석했다는 이유만으로 저는 이전 회장님의 신임(?)을 얻어 자연스레 회장직에 올라 동아리 출사 모임, 사진 스터디, 강연을 진행하기도 할 정도로 대학 시절에는 사진에 깊이 푹 빠져 있었습니다.


제가 새로 지원했던 회사는 외국계 카메라 제조업 브랜드로서, 렌즈 Product Marketer Position에 지원했고, 채용 공고에는 자주 사용하는 카메라 렌즈, 직접 사진을 예로 들어 설명해 달라는 일종의 과제가 있었습니다.

(업계가 좁혀지면 해당 회사가 유추 된다거나 그에 화살이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지만, 내용상 이 부분을 꼭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여나 이 글로 인해 불편함이 야기된다면 미리 죄송하다는 말을 전해드립니다.)


제가 유럽여행을 하면서 바르셀로나에서 미놀타 X-700, 30mm 단안 렌즈로 촬영한 필름사진을 제출했고,

이 사진을 기반으로 30mm 단안렌즈가 고객에게 주는 심리적 benefit을 분석하여 새로운 제안 PT를 영어로 진행했습니다.  


이외에도 회사 브랜드의 렌즈, 경쟁사의 렌즈 제품 등 시장에 출시된 거의 대부분의 제품을 추려 가격대 별 라인업과 포지셔닝 맵을 구성하여 제출하였습니다. 시키지도 않은 일이었지만 그만큼 카메라 제품에 대한 지대한 관심, 시장 분석 역량을 어필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나 이렇게 하면 덕업일치 할 수 있는걸까...?"


덕업일치가 요새 트렌드라는데, 내가 그동안 좋아했던 사진 취미를 업으로 이어갈 수 있다는 어떠한 기대감이 제 안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분이었습니다. 새로운 제안에 대한 내용까지 외국계이니만큼 영어로 PT를 진행해 1차 면접, 2차 면접을 거쳐 사장님 앞에서 발표하는 3차 면접까지 이어졌습니다.


이곳은 특이하게 3차 면접 직전에 채용 건강 검진을 진행했는데, 건강검진을 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피까지 뽑혔는데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3차 면접을 끝으로 한달이 넘게 결과적으로는 또 한 번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해당 포지션에 지원한 사람이 저뿐이었음에도 경쟁자가 없어 내부 규정상 채용을 다시 원점으로 진행해야 할 것 같다는 HR 담당자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제가 당시에 결과를 듣고 제 블로그에 비공개로 올렸던 포스팅을 이제야 용기를 내 올려봅니다.

제가 당시에 결과를 듣고 제 블로그에 비공개로 올렸던 포스팅을 이제야 용기를 내 올려봅니다.제가 당시에 결과를 듣고 제 블로그에 비공개로 올렸던 포스팅을 이제야 용기를 내 올려봅니다.

띄어쓰기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점, 온갖 부정적인 단어가 쏟아진 점에서 그 당시의 참담했던 순간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당시 44kg이라는 최저 몸무게를 찍으며 건강검진에 쏟아낸 피가 생각나 정신적 빈혈을 겪는 기분이라고 하면 될까요. 아득해졌고 까마득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분리 수거안된 쓰레기통에 온갖 쓰레기를 버리는 것처럼 제 감정의 단어들을 배출해낸 이 글을 지우지 않고 계속 두었던 이유는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 일과 사람, 각종 다양한 문제들로 힘에 부칠때마다 꺼내 마주하곤 했습니다. 

"이때 이렇게 힘들었는데, 그래 견뎌냈잖아, 그렇게 원하던 job도 얻어냈는데 뭐가 또 그렇게 힘든거야? 이때의 힘든 순간이 지나갔듯 지금의 순간도 다 지나가게 될거야."라며 과거의 나가 저에게 큰 위로를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다른 말로 초심이라 표현하면 될려나요.


취업 준비를 하는 2년 동안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요즘 같이 취업 시장이 열악해진 시기에는 인턴 경험도 2개정도면 평균치로 생각하는데, 저만 해도 대기업 인턴 경험을 4번이나 1년 6개월을 채웠습니다. 그 사이에 각종 빅데이터 교육, 강연들을 들으며 데이터 드리븐 마케팅 인재로 거듭나기 위해 연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될 듯 말 듯하다 한끗차이로 연이은 고배를 마시며 더 이상 이를 이어나갈 힘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러한 마음상태를 주변인에게 내비출 때마다 저의 가장 가까운 가족인 친언니는 그렇게 힘들면 잠깐 쉬어도 된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누구보다 빨리 취업해서 멋진 직장인이 되고 싶었던 저에게 쉬라는 말은 어쩔 때는 악담으로 느껴지곤 했었는데, 이때만큼은 이 말이 생명수처럼 느껴졌습니다.


"정말 쉬어도 되는걸까? "

딱 죽지 않을 만큼 견뎌낼 수 있도록 저에게 다가온 건 다름 아닌 실업 급여였습니다.

체험형 인턴을 거쳐 채용 전환형 인턴까지, 어찌 보면 열심히 달려온 제가 받을 수 있는 최선의 금융치료가 아니었을까요..?



받은 실업급여로 무엇을 했을지,,, 이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긴 이야기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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