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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진 Feb 15. 2022

결벽증에 대하여

                  결벽증에 대하여

    

   

  결벽증은 남의 이야기라 생각했다.

  여럿이 외식하고 나면 우리 집 가서 차 마시자고 하고, 밑반찬 꺼내서 이것저것 나누어주기도 하는 참 무던한 성격이었다. 그랬던 내가 코로나 19를 겪고 나서는 차츰 결벽증 증상이 여기저기 발견된다. 때론 까칠 여사가 되어 직설적으로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어리석음도 보인다. 이참에 결벽증에 대해 고찰해 보기로 한다.     


  결벽증은 자기 학대의 주범이다.

  집에 누가 다녀가면, 문을 열어젖히고 식초와 락스를 곳곳에 뿌리고 샤워를 하고 옷을 몽땅 벗어 세탁기에 넣고 식기류를 소독하고 온 집이 홀딱 뒤집어진다.

  코로나 19 발발 초기에는 손 등에 좁쌀 같은 것이 오소소 돋아서 피부과 갔더니, 비누로 손을 너무 자주 씻어서라는 진단이 나왔다. 바이러스에 너무 예민한 반응을 보였으니 연고는 마음에 발라야 할 정도다.


  비대면 거래가 없던 시절에 거래하던 금융기관에 직접 나가야 할 일이 생겼다. 차일피일하다 보니 점점 역병이 심각해지니 더는 미룰 수 없어서 억지 춘향으로 나가게 되었다.

  객장에 고객이 바글바글한 걸 보면서 괜히 나 혼자서 거리 두기를 했나 하는 자괴감도 든다. 시내버스를 이 년 만에 처음 탔는데, 뒷좌석 중씰 한 남자가 재채기를 여러 번 하니 승객 모두의 눈이 그쪽으로 쏠린다. 내가 내려야겠다고 일어섰더니, 마침 그분이 주섬주섬 내릴 준비 하고 있어서 슬그머니 앉았다. 그랬지만, 역시 귀가하자마자 옷은 몽땅 세탁기로 들어가고 양치하고 샤워하고 손을 씻고 또 씻고 게적지근하여 죽을 맛이다. 불현듯 내가 결벽증 환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뒤통수에 손을 받힌다.  

    

  결벽증은 상대방을 불편하게 한다.

  옆에 사는 언니와 오가며 같이 식사하는 맛이 쏠쏠하다. 우리 집에 언니 수저와 컵을 정해두고, 언니 집에 가서도 내 컵과 수저를 정해서 이름을 붙여놓았다.   

  우리 집에서 식사할 때 반찬을 한 자밤도 안 되게 담고, 곰 피 찍어 먹을 초고추장을 각자 병아리 눈물만큼 담았다. “너도 좀 결벽증이 있어. 남 말할 때가 아니야!” 하면서 눈을 흘긴다. 언니는 특히 초고추장을 좋아한다며 안 남기니 걱정하지 말고 듬뿍듬뿍 담으라고 한다. 음식물 버리면 지구 환경 보호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긴 설명이 필요했다. 나도 나름대로 늡늡한 사람이지만, 남겨서 버릴까 봐 전전긍긍한 거다. 아뿔싸! 내 언니였으니 망정이지….

    

  결벽증은 불통을 초래한다.

  유일한 취미인 수영도 겁난다. 다른 동료들은 백신 맞았으니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두렵다. 수영 친구들은 결벽증이라 하지 않고 좀 후하게 봐줘서 겁쟁이라고 한다. 수영장 안에서 마스크는 나만 쓰고 있다. 물속에 얼굴을 넣지 못한다. 바이러스가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아서다. 등록만 해 두고 못 나가고 있었더니, 마침 오늘 전체 휴관한다고 문자가 왔다. 역시 내가 결벽증이 있는 게 아니라 사태를 미리 파악한 거라고 자위해 본다.

  수영 끝나면 늘 우르르 점심 먹으러 가는데, 요즘은 내가 시틋해 하니까 눈치를 살핀다. 소중한 기억들이 인생의 삽화로 가슴 한구석에 남아야 할 그들에게 노을을 가리는 구름이 된다. 그러나 어쩌랴! 조심해서 나쁠 건 없을 것이니.

    

  결벽증은 사회생활에 지장을 준다.

  소위 모 지역 단체의 편집위원장인데, 편집회의에 나가기가 꺼려진다. 출판사에 주차장도 없고 주위에 유료 주차장도 없다고 한다. 대중교통이 조심스러워 불참하니 스스럽고 민망하다. 대신 PDF 받아서 혼자 눈이 빠지도록 2차 3차 교정을 봤다. 그러함에도, 면구스러워 올해는 미리 사의를 표했다. 바이러스의 힘이 대단하다. 돌 심장인 나를 이렇게 소심하게 만들다니….      

  여행 가면 꼭 방을 혼자 써야 한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 그때만 해도 이해하지 못했다. 룸메이트와 마스크 팩을 붙이고 누워서 까르르 피우는 수다는 깔밋하다. 그런 소소한 재미를 모른다고 안타까워하면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큰소리치는 것 아니라고 하더니, 차츰 내가 결벽증 증세가 나오니 독방 고집도 이해가 간다.

  나의 가장 다정한 친구는 입맛이 없고 기운이 없어서 나의 집밥이 먹고 싶다는 SOS를 보냈지만, 선뜻 오라고 하지 못 했다. 예쁘고 포근한 마음결 덕분에 살가운 온기가 스며들었으나, 안타까운 마음만 땅거미 진 하늘가에 펄럭일 뿐이다. 언제 그녀와 늘찬 밥 한 끼 나눌 수 있을지 답답하다. 지난번 수필집을 발간했을 때 판매율을 높여 준 지인들에게 답례를 못했다. 이 거리 두기 시점에 불러내기가 송구스러워서다. 이게 다 나의 결벽증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벽증은 본인을 피곤하게 만든다.

  명절에 아이들이 오니까 음식 준비보다 이불과 청소가 더 중요하다. 아기들 컵과 수저를 꺼내 소독하고, 손님용 식기와 수저를 몽땅 소독해 둔다. 화장실을 소독하고 아끼는 화분은 베란다로 피신시킨다. 이러다 보면, 피곤해서 음식 준비에 소홀할 때가 있다. 평소 아들이 좋아하던 반찬을 모두 만들어주고 싶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아들이 유학 시절 마트에서 들었다 놨다 했다는 더덕구이와 잡채를 해야 하는데 마음만 앞서 간다. 가족 모임도 편하고 걱정 없도록 이 역병이 빨리 사라지기를 고대한다.

  아이들과 바이러스 걱정 없이 새새덕새새덕 떠들며 윷놀이할 그림을 그리면서….     

  역병이 사라지면, 결벽증도 시부저기 사라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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