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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진 Jul 12. 2022

바보들의 대행진



바보들의 대행진

     

   주말에 정동진행 KTX 예매를 끝냈다는 공지가 떴다. 고향 친구 모임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지라 조금 염려스럽지만, 협조 차원에서 반대의사를 접었다. 하루 전날이 되어도 일정 계획표나 안내가 뜨지 않아 답답했다. 마침 부추와 당근이 있기에 전을 부쳐 갈까 해서 일정을 올려달라고 했더니 청량리 가는 길만 안내된다.    

온도 습도가 높으니, 음식은 걱정되어서 포기한다.

시간상으로 언제 먹을수 있는지 일정을 모르니, 냉장고에 도로 집어넣었다.  

  정동진 해변에서 갈매기에게 새우깡 던지느라 깨금발을 들고 난리 법석을 떨다가 잠을 깼다. 새벽 4시다. 수학여행 전날처럼 잠이 달아나 더 잠이 들지 않는다. 노트북을 켜고 글 한 꼭지 쓰다가, 시간 맞춰 참외 하나 두유 한 병 마시고 청량리로 고고씽. 혹시 몰라서 멀미약을 먹었더니, 속이 울렁거리고 기분이 좋지 않다. 마침 우리의 종합 비타민인 상큼한 친구가 내 민 커피 한 잔으로 조금 진정이 되었다.  


   

  청량리서 열 명이 만나 가슴 부푼 여행이 시작되었다. 열차 안에서 음식을 못 먹는 줄 알았는데, 벗들이 갖고 온 방울토마토, 파프리카, 가래떡, 송편, 밭에서 갓 따 온 오이 등 갖가지 간식이 풍성했다. 열차 짝꿍과 지난 이야기로 꽃을 피우다보니 어느덧 정동진에 도착했다.

 내려서 단체 사진을 찍고, 바닷가로 가자니까 선발대가 말도 없이 전진한다. 삼십분 정도 바다를 보고 식사하러 가면 동선이 훨씬 절약되는데, 목소리도 안 나오고 저 멀리 내 뺀 선발대를 잡을 수 없어 그냥 따른다. 여기까지 까블싹 거리며 사진 찍고 들떴는데 끝인가 보다.



  

점심 예약 시간을 너무 타이트하게 했다는 생각을하며  땡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뒤따랐다. 그런데  이게 웬일? 예약을 안하고 무작정 그냥 왔단다.  홍합비빔밥을 먹는다고 들어간 집에서 예약도 없이 열 명이 들이닥치니 푸대접이다. 젊은 놈이 욕설을 내뱉으며 나가라고 하니 기가 막힌다. 사람은 대접 받으려면 받을 만한 행세를 해야 한다는 말이 새롭다. 이 염천에 열 명 정도면 예약 손님이 아니면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은 빤 한 이치다.  고객이 왕이던 시대는 끝났다. 바야흐로 종업원이 왕이다.  예약이 안된 우리팀 머피의법칙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욕을 배터지게 먹고 쫓겨 난 우리는 옆집으로 가서 끓인 걸 먹는다고 순두부전골을 시켰다. 국물 한입 딱 넣는데 재탕 국물 냄새가 확 난다. 바로 끓인국물은 말갛지만, 재탕삼탕은 고추가루가 불어터져서 텁텁하고 걸쭉하다. 맛도 재탕은 다르다. 두부만 골라 한 숟갈 넣는데, 옆에서 “아우, 콩나물이 질겨 먹을 수가 없다.”고 한다. 분명 콩나물도 재탕이라, 수분이 빠져 가늘고 질겨졌다. 아침부터 속이 울렁거리더니 급기야 토가 나올 것 같다.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옆자리 국수를 한 종지 얻어먹었다.


 원래 계획은 부챗길을 걷기로 했으나 폐쇄되었다고 하니 갑자기 우왕좌왕하게 된다.

 “호텔 커피숍 시원한 데 가서 두 시간 정도 놀다 가자.” 이게 말이냐 방귀냐? 차비 써서 정동진까지 와서 바다도 안 보고 커피숍에 가자고? 커피숍은 서울에도 천지삐까린데 굳이 여기까지 와서? 커피는 식당에서 모두 마셨는데? 그런데 우리 바보들은 적극적인 반대도 의견도 내지 않는다.      

  바보들의 대행진은 여기서 부터 벌어진다. 땡볕을 한참 걸어 내려오는데 호텔 승합차가 정동진역으로 가고 있었다. 선발대가 냉큼 올라타면서 빨리 타라고 성화다. 무슨 일인가하고 역까지 걸어갔더니, 일행 중 반은 벌써 자리에 앉아서  타라고 강요한다. 차는20분후 출발이다. 가고 오는 시간 한 시간 계산하면 커피숍에 머물 시간 10분 남짓이다. 아무리 수포자라도 피타고라스의 정의는 차치하고, 인수분해는 생각도 말고 덧셈만 해봐도 계산이 나오는데, 왜?  어째서? 뭣 땜시? 호텔을 가야하는지? 목소리가 크게 안 나오니 가슴만 치다 삼킨다. 결국은 봉고를 타고 재 넘고 고개 넘어 도착하니 바로 출발 시간이라 사진 두 컷 찍고 돌아 나와 차를 타는 바보들의 행진이  시작된다.


    

  “여기까지 왔으니 케이블카 한 번 타자.”는 목소리가 나오니 묵호를 가야한다나? 다시 묵호행 티켓팅을 하고 묵호로 출발! 묵호역에 내려서 선발대를 따라 땡볕을 걸어가다니, 어느 여자 두 분이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다. “케이블카 타려면 어디로 가야합니까?” “ 아으아으아아 아!” 하고 손짓 발짓이 요란하다. “ 저어어어 그으어아아어어어 와아아 아!” 손가락이 가리킨 쪽으로 걷다니, 그 여자가 뛰어와서 다시 “아아느어으 저어어어어 가아아앗!” 하며 뒤로 돌아가라는 듯 손짓을 한다. 두분 다 언어장애인이시다. 저렇게 곱다랗게 생긴 분들이 안타깝다. 엉덩이 가볍고 날쌘돌이같고, 생파리 뭐같이 성 바른 회원 하나 안경점으로 뛰어 들어간다. 그 지역 유지 젊은이의 자기 피알을 다 들어주고 겨우 얻은 정보는 “케이블카는 삼척 가야 탈 수 있습니다.” “뭐, 뭐, 뭣이라고라고라?” 정동진에서 묵호까지 왔는데 다시 삼척가라고? 그까짓 케이블카 하나 타려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소가 웃다가 코뚜레 부러질 일이다. 바보들의 행진 2탄이다.

    

  더워서 속은 울렁거리고, 우리가 바보같다는  우울함에 마지막 병아리 눈물만큼 남아있던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이 삼베  꼬장주 방귀 새듯 퓨수숙 새고 있었다. 왼쪽 다리에 기가 쭉 빠지면서 다리에 힘이 없어 걸음을 걸을 수 없다. 택시타자고 하고싶었지만 열명이니 택시 세 대 잡기가 여의치 않다. 다리를 질질 끌면서 표 나지 않게 하려고 무던 애쓰며 따라가고 있었다. 걷고 걸어 묵호항에 도착해 생선회 흥정하는데, 어떤 회원 이  박스 골판지 두 장 들고 주차장 구석으로 내뺀다. 거기서 노숙자처럼 앉아서 승용차 매연을 에피타이저로 저 쨍쨍 내려쬐는 땡양지를 디저트로 먹자고 한다. “참자참자 참는 자에 복이 오나니”속으로 수천번 외쳐도 소용없다. “이 나이에 4,000원 아끼려고 쭈그리고 앉아서 먹어야 하나? 무릎도 안 좋은 시니어들이며, 매운탕은 어떻게 할 건데?” 우리 몇몇이서 우기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점심을 제대로 못 먹어서 맛있게 먹었다.


  나오는 길에 일행 모두 화장실로 향했다. 남성 회원들이사 까짓거 거시기 잡고 흠칫 진저리 한번 치면 끝날 일이지만, 여성 쪽은 다르다. 긴 줄이 서 있고, 들어가서도 행사가 길고, 나와서도 손 씻고 거울 한번 쳐다보고 치아 확인하고 헹구고 나온다.  나오니 일행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밖으로 나갔거니 하고 일층으로 계단을 내려오다니, 짝꿍 전화가 요란하다. 혼자서 당황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난리다. 다 어디 갔냐니까, 화장실서 나오니 아무도 없더란다. 이건 뭐, 일행에 대한 배려도 없고 살벌하다. 조선 시대도 아니건만 각자 도생해야 한다.  미아가 된 두 바보는 "어드메 계시온지요?" 하고 가장 신뢰가 가는 일행에게 전화했더니, 라운지에 전망이 좋고 시원하다며 올라오라고 한다. 엘리베이터타려고 대기하고 있는데,또 다른 선발대는 우르르 내려오고 있다.

까마귀날자 배떨어진다고, 오르지도 내리지도 못 하는데, 벌써 선발대는 저만치 가고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라운지에 전화해서 한 팀은 어디로 가고 있다고 하니 그럼 우리가 따라 가야지 하면서 내려오겠다고 해서 나는 라운지 가보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기다리고 있고, 또 짝꿍은 선발대 놓칠까봐 따라가다, 우릴 기다리느라 중간쯤 서서 기다린다. 돼지 삼형제 소풍도 아니고 오른발은 계단에 걸치고 왼발은 선발대 가는 방향으로 놓고 우왕좌왕하는 내가 꼭 봉숭아학당의 맹구 같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모두 사랑하는 고향 친구들 아닌가? 왼 다리를 질질 끌다 시피하고 선발대 따라 갔더니, 커피숍도 아니고 건어물 시장이다. 우리 바보들은 시장으로 끌려 온 거다.



   진짜 입에서 욕 나오려고 하는데, 짝꿍이 옆에서 위태한 내 모습을 보더니, 참으라고 내 손을 꼭 잡는다. 그래, 이렇게 마음 넓은 벗도 있는데, 나라고 못 참을소냐, 하는데 기우뚱 쓰러질 것 같다. 사람은 마음을 바로써야 하는데, 내 성질에 못 이겨 내 건강을 헤친다. 봉숭아 학당 열 명의 바보들은 건어물 시장 입구에서 할 말을 잃었다.

    

  두 명의 남자 회원이 와서 “엄청 지쳐 보이는데, 괜찮으냐?”고 걱정을 해 준다. 한쪽 다리를 끌다시피 짝꿍에게 기대어 묵호 역에 도착했다. 출발 시간은 두 시간이나 남았다. 두 평 남짓한 시골 역 대합실이 을씨년스럽다. 두 시간씩이나 앉아서 발을 주무르며 지루한 출발시간을 기다린다.  묵호항 시장건물 라운지에서 시원하게 전망내려다보다 시간되어서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일정이 전혀 상의가 없는 깜깜이 불통 여행이다.

나는 오늘 영락없는 맹구다. 아니다. 맹구는 손들고 할 말은 한다. 할말을 삼키니 맹구보다 못하다.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짝꿍은 나를 위로하느라 여러 방도로 애쓴다. 자기가 바닷물에 발 담그면 갈아 신으려고 사 온 새 덧버선도 내어 주고, 방울 토마토도 건네며 어떻게든 내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한다. 내 짝꿍을 비롯하여 모든 회원이 불평 한 마디 없으니, 이런 바보들만 있다면, 굳이 맹자의 성선설이 필요치 않겠다.


 

  명일역에 내려서 엉금엉금 기다시피 겨우 집에 도착했다. 우황청심환 한 알 삼키고 그대로 쓰러졌다. 이튿날 병원은 휴진일이고 그대로 침대에서 시체놀이하고 있는데, 짝꿍이 괜찮냐고 톡이 와서 그때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월요일 병원에 가니 열사병이라고 하며 무더위에는 가급적이면 외출을 삼가라고 한다. 별 치료는 없으니 영양제만 한 병 맞고 돌아왔다. 목소리가 좋아지기 전까진 이 그룹 여행에는 불참하는 것이 옳겠다. 목소리가 작아 의견개진이 전혀 안되니, 속이 터져 마음의 병이 생기기 전에 단속 할 일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정동진과 묵호의 땡볕은 몽땅 베낭에 집어 넣고, 부시리 회 몇 점, 고등어 회 몇 점과 더위만 잔뜩 먹고 왔다.


   이상한 나라 바보들의 행진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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