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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진 Oct 25. 2022

제주 아끈다랑쉬 오름 억새



                  제주 아끈다랑쉬 오름 억새

    

'오름'은 조그마한 산체를 뜻하는 제주 말이다. 다랑쉬 오름은 분화구가 ‘달처럼 둥글다’하여 다랑쉬라고 한다. 아끈은 ‘작다’란 뜻의 제주 말이다.

오늘은 화산체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어 ‘오름의 여왕’이라고 불리어지는 다랑쉬 오름을 가기로 했다.

다랑쉬 앞에 도착하여 쳐다보니 데크로 된 계단이 45도 경사각이다. 일행 중에는 날다람쥐형도 있고 다리가 불편한 분도 있으니 포기하고 왼편의 아끈다랑쉬 오름을 택했다.


     


개발이 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라 아마도 개인 사유지인 것 같다. 오르는 길에 숨이 차서 쌕쌕거리는 휘파람을 하얀 구절초가 깔깔거리며 비웃는 것 같다. 고난의 뒤에 맛보는 환희를 생각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서 내려다 본 경관이 속을 탁 터지게 한다. 서울의 하늘과 비교가 안되게 쨍한 쪽빛 하늘에다 더 찐한 바다가 보인다.      

제주의 가을을 억새를 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은빛 물결의 일렁임에 황홀함을 떠나 어떤 주술적인 느낌마저 든다.


짜릿함을 오감으로 경험하는 첫 눈 같은 두드림이다. 정신을 차리고 아래를 보니 분화구가 동그랗고 아주 예쁘다. 이 분화구에도 빽빽하게 억새가 흔들리고 있으니 지구촌을 빠져나와 어떤 별에 온 듯 착각에 빠진다. 가슴속 한 점 오염물도 없이 다 비워낸다. 춤추는 억새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흔들린다. 흔들리는 억새 사이에서 오직 사랑과 배려와 희망만 간직하고 싶다는 다짐의 춤을 춘다. 감격에 겨워 필자가 춤추는 모습을 일행이 동영상을 찍는다. 내가 바람을 좋아한다는 결론이다. 바람! 아, 나는 바람이고 싶다. 마음대로 흔들리는 바람이고 싶다.   


김수영의 '풀'이란 시가 떠오른다.


풀/김수영


풀이 눕는다/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더 빨리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자연의 모습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가 볼만한 곳이다. 아니 바람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더욱 가볼 만한 곳이다. 문득 이 바람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얻을 방법을 연구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잠긴다. 이 필부필부가 무슨 힘이 있을까만, 생각만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내려오는 길도 평탄해서 긴 여행객이라면 피로도가 적어서 안성맞춤이다. 내려오는 길에 하얀 메밀밭을 본다.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이 아니라도 하얀 수평선은 객의 마음을 적신다.


    

군락을 이룬다는 것, 서로 어깨를 댄다는 것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만고진리를 깨우친다. 우리 인간 세상에도 저와 같이 서로 힘을 합치면 무엇인들 못할까. 억새와 메밀꽃에게도 한 수 배우고 뿌듯한 마음과 흥겨운 마음으로 아끈다랑쉬를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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