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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진 Oct 30. 2022

남이섬의 단풍



  남이섬의 단풍

     

   이 화창한 가을에 남이섬 단풍을 안 보면 후회할 것 같아 운동화 끈을 다시 조였다. 굳이 운전할 필요 없이 전철을 타면 가평역까지 간다. 경춘선 시발역이 청량리역이라 여유롭게 자리 잡고 가려고 우리 팀 넷은 청량리역에서 모였다. 정확한 출발 시간에 차가 들어 왔는데, 앞머리에 청량리라고 써져서 망설이다 먼저 타신 신사분에게 춘천 가는 열차냐고 물었다. “네, 맞아요.” 그래도 긴가민가해서 망설이니 앞에 타고 있던 아주머니께서 “춘천 가는 거 맞아요.”한다. 그런데, 때마침 열차 내 청소하는 분이 오니까 “이거 춘천 가는 열차 맞아요?”하고 돌다리를 한 번 더 두들겨 본다. 

“내가 춘천 간다고 했는데, 왜 자꾸 다른 사람에게 또 물어요? 못 믿을 거면 묻지를 말든가….” 처음 말씀하신 신사분께서 상당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언짢아하신다. “죄송합니다. 처음 길인데, 앞에 청량리라고 써져서요.” 아침부터 결례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뭐든 잘 모르면, 남을 기분 나쁘게 한다. 역지사지! 입장 바꿔 생각해 보니 나라도 기분 나쁠 것 같다. 인상착의로 봐서 사회에서 결재란에 사인께나 하시던 분 같다. 그런데도 우리 또한 확실하지 않은 길은 안 가는 세대가 되었으니 어쩌겠는가.  얼추 세상을 살아내다 보니, 철두철미 정신으로 무장된 양쪽이 서로 민망하다.

   

  상봉역에 도착하니 우르르 밀려들어 오는 시니어들의 자리 잡기 쟁탈전이 시작된다. 모두 배낭족이다. 춘천으로 가평으로 남이섬으로 청평으로 나들이 나온 무리다. 조용하던 열차 안이 소란스럽기 짝이 없다. 부부끼리, 친구끼리, 동창끼리, 동호회끼리, 모두 끼리끼리다. 열차 손님이 모두 공짜 손님이면, 교통 공사는 어떻게 운영이 될까 하는 어쭙잖은 걱정이 앞선다. 백세 시대에 지하철 공짜는 70세부터가 적당하다는 생각이다. 가평역에 내려서 택시를 타니 10분 만에 남이섬 입구에 데려다준다.


  여객선도 5분 만에 남이섬에 건네다 준다. 관광버스가 빼곡하게 늘어섰고, 외국 길잡이 깃대도 곳곳에 펄럭인다. 수학여행 온 학생이 많고, 깃대 부대는 중국인이 가장 많은 것 같다.

    


  단풍이 곱게 물들어 눈물 나게 아름답다. 특히 빨간 단풍이 색감이 진하다. 자연이 뿜어내는 장관에 입이 벌어져 턱 빠지게 생겼다. 눈 맞춤할세라 카메라에 담을세라 바빠진다. 엄지 검지만 잘라 낸 장갑 낀 손이 분주하다.

   단양 도담삼봉을 재연한 곳도 있고, 거창한 폭포도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한참 단풍에 빠져 행복을 추구한다. 빨간 단풍 아래 잘 갖춰진 탁자에 앉아 솜씨 좋은 언니가 해 온 찰밥을 먹는다. 각자 갖고 온 간식도 잔뜩 꺼내 놓고 소풍하러 온 학생처럼 기분이 달뜬다. 우리 주위를 윤기 자르르한 청색 빛깔 예쁜 공작 한 마리가 빙빙 맴돈다. 꼬리를 펼칠 때는 그야말로 환상이다.

   구름이 너무 예뻐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하늘 향해 셔터를 눌러 준다.  

자작나무 군락지와 메타세쿼이아 길도 운치가 압권이다. 자작나무가 인제에 있는 나무보다는 흰빛이 덜하다. 그러나 여기서 만날 수 있는 것만도 어딘가. 메타세쿼이아 나무 둥치를 안고 포즈를 취해 본다. 저 높은 우듬지에는 어떤 이름 모를 새가 살고 있을까.


강변에 둘레길이 있어서 걷기 좋다. 강 건너 멀리 흰색 별장이 보인다. 어쩐지 외롭게 느껴진다. 분명히 저런 별장이 부러울 때도 있었을 텐데. 미니멀하게 살기로 결심한 지금은 저런 것이 부담스럽게만 생각된다.


  우리는 겨울연가 코너에도 눈길 주며, 그때를 추억한다. 특히 남이섬에는 ‘겨울연가’ 촬영지라는 이유로 일본 여행객이 많이 온다. 욘사마와 지우희매는 벌써 엄마 아빠가 되었건만, 여기서는 그때 그 시절로 멈춰있다.          

  뭍으로 가면 사랑이 보이고 물로 가면 희망이 보인다는 삶과 꿈을 강조한 펜스에 눈길이 머문다. 경포정에 상상이 머문다는 글귀도 심오하다. 야경을 위하여 공중에 귀신 연출을 많이 걸어 놓았다. 데이트족이 자연스레 딥 포옹을 하게 해 줄 연출인가 보다. 야외무대도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고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보인다.

   외국인이 많이 찾아오니 관광 사업과 외화벌이가 아주 짭짤하겠다. 덕분에 이 가을 단풍을 만끽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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