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휘와 생명 제6호 게재
풋굿 먹는 날
동네가 들썩인다. 온 마을이 심상치 않다. 어정칠월이 지나 동동 팔월에 논매기를 마치면 길일을 택한다.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만나고, 여름의 끝자락이 가을의 시작과 만나는 날이다. 마을의 안녕을 빌고 동민이 화합하는 날이다.
우리 동네는 크게 벌족한 집안은 아니지만, 조선조에 안동 풍산의 비산비야에 낙향하여 대대로 내려온 집성촌이다.
잔치 전날에는 설마흔쯤 된 장정들이 나와서 도랑을 치고 무너진 길을 보수한다. 길옆의 풀도 베고 샘도 친다. 샘물을 다 퍼내면 제일 약빠르고 몸집이 작은 젊은이가 윗옷을 벗고 큰 두레박을 타고 깊은 바닥까지 내려간다.
샘 바닥에 빠트린 두레박이나 잡동사니를 건져 담으면 두레박으로 올려서 걷어낸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물이 차서 못 올라올까 봐 가슴 졸이며 안달이 난다.
“아재요, 단디 하소. 안 춥니껴? ”
“내사 하나도 안 춥따 카이. 김이 모락모락 나서 훈훈하기는 한데, 하이고 고마 쓰레기가 천지 삐까리라 언제 다 건지노?”
그가 바닥을 깨끗이 치우고 긴 장대에 매단 두레박을 타고 개선장군처럼 올라온다. 모두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지른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뮈우는 맛에 그렇게 깊은 곳에 들어가면서도 으쓱대며 좋아했지 싶다.
해가 한 나절가웃 자빠지면 온 동네가 깨끔해진다. 마치 바리깡으로 더벅머리를 상고머리로 깎은 형상이다.
이날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문중의 내력을 숨기고 있는 앞마당 큰 감나무 밑의 볕뉘도 이지러지도록 눈부시다. 덩달아 웃음소리와 음식 냄새가 호박을 업고 있는 낮은 돌담을 넘어 고샅에 깔린다.
지글지글 감자전 부치는 소리는 침이 꼴깍 넘어간다. 안방 여인네들의 감자 긁는 풍경도 빼딱 숟가락의 추억과 함께 저며 들게 그립다.
집집이 술을 거르고 떡을 빚는다. 밀주 단속이 심할 때지만, 이 무렵만은 눈 감아 준다. 밀을 디딜방아에 대충 분쇄해서 원반형으로 만들어 밀짚에 넣어 띄우면 술을 빚는 데 쓰는 누룩이 된다.
발효될 때는 시큼한 냄새가 많이 난다. 하지만 고두밥을 섞어서 술을 빚어놓으면, 첫맛은 걸쭉한 게 텁텁하고 중간에 단맛이 살짝 느껴지다가 뒷맛은 깔끔해진다. 그 시절 일꾼들은 이 농주 힘으로 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긴 나도 어릴 때 농주를 한 모금씩 맛본 덕에 소주 두 잔쯤은 깔축없다.
풋굿 먹는 날, 풍물패 소리가 가까워지면 어머니는 마당에 멍석을 깔고 상 차리기에 종종걸음이다. 맨 앞에 꽹과리 치는 사람, 뒤에 징을 치는 사람, 그 뒤에 북을 메고 두드리는 사람과 장구를 치는 사람이 들어온다.
종가 상머슴은 등에다 옷을 둘둘 말아 넣고 곱사춤을 추고, 새집 작은 머슴은 품바 흉내를 내며 따라오니 구경꾼 모두 배꼽을 잡는다. 춤을 너풀너풀 추면서 추임새를 넣는 옆집 아재 입은 반달이고, 어깨춤을 들썩이는 구장 아재 금니는 실한 옥수수처럼 짱짱하다.
마을 젊은이들도 어깨너머 실력으로 탈춤을 추며 리듬을 탄다. 긴 줄을 서는 아이들의 생일이다. 동네 멍멍이도 꼬리를 흔들며 줄을 따른다.
풍물패는 우선 툇마루에 올라서서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고방 앞에 가서 신 나게 두들긴다. 다음에는 정지(부엌)로 가서 지신밟기를 한다. 어머니도 머리를 조아리고 두 손을 비빈다.
마당에서 한참을 두들기면 농주와 안주와 떡이 푸짐하게 나온다. 칙사 대접이다. 한 집도 거르지 않고 지신을 밟아 준다.
머슴을 두엇 두고 노적가리가 집채보다 큰 집들은 얼마씩 추렴해서 일꾼들이 먹고 마시게 해 준다. 그날 하루는 어떤 바쁜 일이 있어도 쉬게 한다.
한 해 농사에서 가장 힘든 세 벌 김매기가 끝났으니 호미를 씻어 걸어둔다는 뜻으로 ‘호미씻이’라고도 했다. 그 시절에는 푸리 굿과 살풀이 등으로 풍년을 기원하는 뜻으로 알았다.
이것이 내가 자라면서 본 안동 지방의 세시풍속이다.
경북 북부지방 일대를 중심으로 전해 내려온 일꾼들의 축제이기도 하다. 고문헌에는 초연(草宴)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머슴 날로 부르기도 한다. 이런 소중한 기억들이 인생의 삽화로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음은 축복이다. 그러나 이 좋은 풍속이 두레가 소멸하면서 점차 사라졌으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얼마 전 고향을 다녀온 친구로부터 요즘 안동에는 풋굿 축제가 한창이라는 말을 들었다. 고향을 가 본지가 언제였든가. 지금은 기억에도 우련하지만, 고향과 유년을 너무 잊고 살았다는 깨단함이 너울진다. 안동 풋굿 축제는 예전에 하던 것을 세밀한 고증을 거쳐 지난 2004년부터 복원하여 올해로 10번째를 맞는다고 한다.
전국에 풋굿이 거의 사라지고 있으니 안동 풋굿 축제가 그나마 명맥을 이어간다고 볼 수 있다. 이 축제는 관람이 아니라 오는 사람 모두가 먹고 마시며 춤추니 다 같이 주인이 되는 축제란다.
일이 풀린다면 장삼이사 다 모이지만, 일이 꼬인다면 갑남을녀 다 떠난다는 말처럼, 이런 축제에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모인다면 그 지역은 이미 일이 잘 풀리고 있음이다.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많은 민속놀이와 축제가 있지만 이처럼 농부들이 고된 농사일을 잊고 하루를 즐기며 풍년을 기원하는 노동축제는 드물다. 이런 가치 있는 민속축제는 꾸준히 이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