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공정에 얼마나 분노하고 있나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

by 소봉 이숙진

(사진: 다음 포털사이트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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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뉴스 매체에 ‘불환빈 환불균’이란 말이 확산하고 있다. ‘백성은 가난보다 불공정에 분노’한다는 말이다. 맹자도 다산도 정치에선 가난보다 불공정을 더 걱정하라고 가르쳤다는 고문(古文)을 인용하기도 했다.

2차 재난지원금 선별 지원이 가져올 부정적인 결과의 우려라 이해는 가지만, 나라 곳간이 비웠다니 어쩌겠는가. 애초에 의결에 부쳐 결정했다면, 결과에 승복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지금 사회 거리 두기 시점에 주민 자치센터에 몰려가 서류 제출과 심사를 거치는 건 거리 두기에 역행하는 일이니 그 또한 마뜩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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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다음 포털 사이트 이미지에서 퍼옴)



이래저래 불공정과 공정에 대한 건으로 지나온 옛일이 오버랩된다.

아들 둘을 연년생으로 키울 때의 일이다. 둘째를 낳고 퇴원해서 왔을 때, 큰애가 오랜만에 온 엄마에게 화났다는 표현으로 뽈뽈뽈 다른 방으로 가더니 벽을 보고 얼굴을 감싸고 돌아서지 않는다. 엄마가 사과하고 손을 잡고 와서 “너의 동생이야, 엄마가 안아 봐도 되겠니?”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아가는 내 동생이야. 엄마도 안아 봐”라며 허락했다. 그 후로 동생을 샘내는 일은 한 번도 없이 늘 동생을 보살피고, 엄마의 아들이기 전에 자기의 동생이었다.

아기에게 좋은 음식과 좋은 공기를 먹게 해 주는 것보다 좋은 마음을 먹게 해 주는 것을 더 중요시했던 결과였지 싶다.

형 옷을 물려 입기도 했지만, 되도록 비싸지 않은 걸로 두 벌을 같이 사서 입혔다. 동생이 불공정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둘째 손녀가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퇴원하는 날, 똑같이 아비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

“뭘 그렇게 까지나요?”

“애들을 수월하게 키우려면, 아무리 박사라도 경험자 말을 들어야 한다.”


내가 아기를 보러 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갓난아기를 먼저 보지 않고

“OO야, 너 동생 소개해 주겠니?”

“어떻게 소개해요? 하더니 아기그네를 슬쩍 밀며 아기 손을 내게 얹어 준다. 그때 그 아이의 맑고 깊은 눈동자는 오만가지 신뢰가 스치고, 쪼끔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동생이 생겨도 자기가 주체라는 걸 확신한 거다. 이제 주위의 사랑을 동생과 나눠 가져야 한다는 공정을 배우는 첫 교육이기도 했다. 식스 포켓이란 말이 있듯이 조부모와 외조부모 네 분에다 엄마 아빠 모두 여섯 분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던 거다. 여섯 살이란 나이 차이도 있지만, 절대 샘내지 않고 여태 잘 돌보고 있다.


이 공정과 불공정에 대한 시선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고정 수입이 있는 쪽은 거리 두기로 영업을 못 한 소상공인들에게 양보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먹고사는 일이 천차만별인 시점에 그 기준이 공정할 수 있을까.

선별되지 못했으니 중산층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라고 한다면?

불공정의 분노에 찬 분들이 "배부른 소리 하고 자빠졌다."라고 머리끄덩이 잡지나 않을지 찜찜한 이 기분은 또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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