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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여는 의자 02화

다른 공간으로 이어진 의자

by 수케시오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이 하늘거리는 실크커튼, 창가 옆 테이블과 나무의자가 있다.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의자가 있었다.

꿈과 현실 사이를 오가게 하고, 다양한 경험으로 이끌었던 그 의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의자 1

"새벽에 동대문을요?"


의자 2

"그림을 이렇게 잘 그리시는데 왜 새벽에 동대문에 가세요? 좋아하시고 잘하시는 그림만 그리시면 더 좋지 않나요?"


의자 1

"그러고 싶지만, 이 바닥이 그래요. 기독교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이런 그림들로 생계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해요. 제가 그리는 그림은 봉사차원에서 그려달라는 요청이 많거든요."


2010년 무렵, 기독교 그림작가가 영리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콘텐츠 시장은 전무했다. 비즈니스 모델을 접목할 만한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 의자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아이디어 많고 호기심 많던 나에게는 그냥 흘러 지나가는 이야기가 아니었고,

계속 귓가에 맴돌았고, 결국 그것은 '풀어야 할 나의 문제'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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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2호선 역삼역이다.

친구의 소개로 비즈니스 자문을 받을 기회가 생겼다. 그분은 누구나 알만한 기업의 전 대표였고, 수백억 대 자산가였다. 예상과는 다른 소탈한 복장으로 역삼역 지하철 출구에 나타난 그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의자에 앉자마자 난 가슴에 품고 있던 이야기를 쏟아냈다.


의자 1

"저는 지금 풀어야 할 문제가 있어요. 그게 제 문제로 여겨지는 상황입니다. 가진 기술로 이런저런 방법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데, 저는 그들을 도와야 해요."


의자 2

"대표님은 그냥 비즈니스를 하세요. 그런 일은 비즈니스가 안 됩니다. 가지고 있는 기술을 적용하는 비즈니스를 하세요. 지금 이야기하는 일들은 교회가 하도록 그냥 두세요"


충격이었다. 논리적인 말이었어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움켜쥐고 있던 기대가 모래알처럼 손에서 빠져나가는 무력한 순간이었다.


'너무 단호하다. 내가 말을 제대로 표현 못한 건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하면서 속상했다. 그 당시엔 그랬다.

며칠을 생각하고 실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내린 결정은,

'그래도 한다'였다.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 상태에서 그런 결정을 내린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는 일이겠네. 그럼 내가 하자.'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온라인 사이트에서 작가들이 그림을 등록하고 판매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온라인 작가 생태계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림 판매만이 아닌 추가적이고 확장되는 캐시플로우 생성이 중요했다.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단어도 없던 시절, 수요와 공급을 만족시키는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들을 했는데, 여러 가지 해야 할 아이디어와 전략들이 많았지만 한 가지에 집중했다.


'어떻게 하면 작가들에게 더 많은 로열티를 지불할 수 있을까?'


그 집착으로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 구조인

작가가 그림만 올리면, 올려진 그림으로 2차 - 3차 베리에이션 되도록 디지털콘텐츠, 인쇄물, 상품등으로 확장되는 비즈니스모델이었다. 한 작품만으로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는 구조여서

작가들은 기대하지 않은 로열티들이 발생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렇게 공급자의 효율과 퀄리티를 보장되게 하면 수요층도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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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트를 론칭하고 몇 개월 지나지 않은 어느 날, 회의실로 직원 한 명이 다급하게 들어왔다.


의자 1

"대표님! XX 사이트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추가했는데 우리랑 유사한 서비스예요. 우리 서비스를 카피한 느낌이 들어요. 거긴 회원 수가 우리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큰 대형사이트인데, 이제 우리 어떡하죠?


의자 2

"쉽게 우리를 카피할 수 없어. 지금 우리 사이트 외형을 보고 일부 기능을 카피했을지는 몰라도

우리가 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앞으로 어떤 기대와 방향으로 이어갈 건지는 카피하기 어려울 것임이 분명하다. 걱정하지 말고 계속 가보자"


'Proclaim His Beauty' 그의 아름다움을 전하자 라는 슬로건을 만들고, 그 목표에 맞는 기준을 세워갔다.

넘쳐나는 아이디어를 최대한 자제시켜 가면서, 일이 되는 방향 즉 본질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세 개의 의자를 통해 시작된 여정은 회사 내부적으로도 다양한 경험과 좋은 기회들을 가져다주었다.

한 카페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새로운 만남과 고민으로 이어지는 식당 의자로 이어지고,

단단한 결심을 한 업무 의자로도 이어지며, 중간중간 위협을 느끼는 회의 의자에 연결되기도 한다.


각각의 의자는 중요한 접점(node)이었고, 선택의 순간이었으며, 성장의 디딤돌이었다.

그 의자들 위에서 내린 결정들이 모여 지금의 길을 만들어 냈다.


창가의 하늘거리는 실크커튼 나무 의자 위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은 이어진다.





에필로그. 십여 년 후 지금.

현재 그 브랜드는 카테고리챔피언이다. 해당분야에서 유일한 서비스로 성장했고, 300명 이상의 작가들과 20,000개 이상의 등록된 작품으로 베리에이션 된 5,000개 이상의 콘텐츠와 디자인 그리고 1,000개 이상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AI 시대를 맞아 두 번째 도약을 위한 준비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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