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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여는 의자 04화

의자 위 CO2

by 수케시오

26세 되던 해 벤처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호떡 프랜차이즈라는 도전을 해보겠다는 당돌함과 과감한 추진력으로, 비록 한 달밖에 해보지 않았지만 그 경험을 높게 평가받아 공채 1기로 입사하게 되었다. IT기술을 시장 맥락에 결합한 비즈니스를 펼치는 회사에서 기술영업을 시작으로 좋은 성과를 내며 인정받는 직장생활을 했다. 카니발 첫 출시해에 풀옵션을 장착한 새 차도 제공받았으며 그렇게 전략 파트의 부서장으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고, 이후 대형 쇼핑몰 사업을 진행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다가 인터넷 관련하여 직접 사업을 운영해보고 싶은 생각에,

퇴근 후 공부할 수 있는 사무실을 구했다.

책상 한 개와 야상침대 겨우 들어갈 정도의 월세 10만 원의 작은 지하 사무실이었고, 퇴근하면 그곳으로 다시 출근했다. 그 좁은 공간에서 웹개발 도서, 디자인 도서, 서버기술 도서들을 펼쳐놓고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던 중 화장품 회사 홈페이지 개발 계약을 성사시켰고, 포항시 주관의 교육콘텐츠 개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면서, 배우는 것들을 실제로 적용하는 일로 이어지는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혼자 시작하다 보니 전전긍긍하는 일들이 많았다. 약속한 납기일은 다가오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예상치 못한 장애들은 계속 나타났다.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에서 막히고, 그렇게 의자에서 잠을 자는 일이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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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1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아, 이것 때문이네. 이제 되겠다.' '또 안 되네... 뭐지? 왜 안 되지?'



마감이 있는 일을 하면서부터는 혼자 그 공간에서 탄식 섞인 독백이 늘어났다.

하나씩 깨닫는 것도 있었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들로 인해 그 작은 사무실은 혼자 내뱉은 이산화탄소 가득한 한숨으로 채워졌다.


프로젝트 약속일이 일주일채 남지 않았는데 해결되지 않는 똑같은 문제로 이틀간을 끙끙 앓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의자에 앉아서 온갖 고민과 한숨을 충분히 내뱉다가 지쳐 책상에서 그렇게 몇 시간을 잤는데,

일어나자마자 갑자기 불현듯 해답이 떠올랐다.



의자 1

'혹시 그것 때문인가? 한번 해봐야겠다.'

그렇게 떠올린 생각으로 재시도해보면 밤새도록 안 되던 것이 갑자기 그렇게 해결되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났다.

그렇다고 막힐 때마다 자고 일어난다고 해서 해결이 매번 되지도 않았다.

근데 체감적으로 느껴지는 건, 꼭 내가 의자에서 내뱉었던 고민과 한숨의 양이 충분히 채워졌다 싶으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의자 1

'치열하게 해 보는 데까지 해보자.'



그렇게 내 비즈니스는 시작되었다.


되돌이켜보면 치열하게 고민한 만큼 결국 내 것으로 돌아온 것 같다.

그 경험을 통해 만든 현재 내 회사의 슬로건은 '문제는 풀면 되지'이다.

이제는 무작정 많은 시간을 들여가며 솔루션을 찾는 방식에서 벗어나 우선순위와 효율성에 입각해서 결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의자에서 쏟아낸 치열했던 노력의 가치는 지금도 소중하다. 그 시간들이 지금을 만들었고, 어떤 문제든 결국 풀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치열함은 단순히 시간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와 마주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였다. 그리고 그 태도야말로 모든 해답의 시작이었다.








에필로그. 호떡

IMF라는 거대한 폭풍이 온 나라를 휩쓸던 그때, 30년 전 이야기다.

친구와 나는 호떡 프랜차이즈라는 거창한 꿈을 품고 있었다. 서로 다른 대학에 다니는 처지였지만, 시간만 나면 한 집에 모여 호떡 굽기에 열중했다. 일반 호떡부터 시작해 과일 호떡까지, 마치 호떡계의 에디슨이 된 듯한 기분으로 온갖 실험을 반복했다.

드디어 학교 앞 노상에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기로 하고 D-day까지 정했건만, 운명의 그날이 다가오자 함께하겠다던 친구는 "나는 안 해!"라며 쿨하게 포기를 선언했다. 배신감도 잠시, 고심 끝에 혼자서라도 해보기로 결심했다.

구루마 대신 화물용 다마스를 선택한 것부터가 남달랐다. 혼자서 각종 시장을 누비며 시설과 재료들을 준비해야 했다. 첫 출격지는 전략적으로 선택했다. 북적이는 번화가보다는 한적하지만 고객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고등학교 앞. 다마스를 주차하고, 앞치마를 매고, 뒷문을 열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5분여 동안 차 안에서 주저주저하며 망설이는 나의 모습이란 마치 번지점프대 앞에서 떨고 있는 사람 같았다. 결국 용기를 내어 시작한 첫 장사에서 받은 500원은 지금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처음엔 기본 호떡만 팔다가, 일주일 후부터는 양념오뎅까지 메뉴를 확장했다. 나름 사업가다운 행보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나는 시점에 계속할지 판단하는 시간을 가졌다. 애초 그렸던 장밋빛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더 이상 진행하는 것이 좋지 않겠다는 판단을 하고, 정확히 한 달을 채우고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렇게 나의 짧고도 굵었던 호떡 사업은 막을 내렸다. 비록 프랜차이즈 사업은 실패했지만, 함께 얻은 값진 경험은 이후 다양한 비즈니스에 초석이 되었고 여전히 내 마음 한구석 소중한 내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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