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1
"와!! 이런 디자인은 처음 본다 ~ 선배 부자였어? "
1994년 겨울, 강한 추위 속에서 보낸 군생활은 매서웠다.
어느 밤, 잠결에 강한 충격을 느끼며 잠을 깼다. 누군가 나를 때리고 있었다. 왜 맞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맞고 있었다. 89학번의 민주화 데모 끝자락 때 총학생회 회장을 하다가 피신차 군대로 온 듯한 최고참이었다.
계급차이가 많이 나서 '인생의 좌우명이 뭐냐',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냐'는 철학적 질문을 주고받았던 기억 말고는 접촉점이 없었던 사이였는데, 날벼락같은 일이 일어났다.
십여 분간 맞았던 것 같다. 기억도 희미하지지만 누군가의 만류로 정리는 되었으나, 살기(殺氣)를 스스로 억누르는 분노 가득한 밤이었다. 그때는 내가 왜 맞아야 하는지 이해도 안 되었는데, 나중에 생각해 봤을 때 대구출신이라는 게 이유일 수 있겠다는 추측 정도만 할 수 있었다
그 선임은 전역 전날밤에 사과를 했지만, 끝내 왜 나를 그토록 때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일을 제외하면 위아래로부터 인정도 받으며 재미있게 군생활을 했다.
군생활동안 특별한 선임이 있었는데 앞의 선임과는 정반대로 나에게만 친절했다.
성질이 얼마나 예민하고 사나운지 중대원 모두가 조심 스러 할 정도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만은 다정했다. 말도 편하게 놓을 정도로 친했다.
그렇게 군생활을 마무리하고, 제대한 지 4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그 선임은
4시간 거리를 달려 나를 찾아왔다.
하얀 스포츠카를 타고 왔는데, 당시 도로에서 보기 힘든 고급 차종이었다.
'뭐지? 이렇게 부자였었던가?' 충격이었다.
꼬치꼬치 묻다가 알게 된 선임의 직업. 향락업소를 운영하는 대표였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몇 개월 후, 선배가 일하는 곳에 가게 되었다.
사무실 안쪽에 있는 테이블의자에 앉아 몇 시간 동안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직장인의 1년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을 두 시간도 되지 않은 시간에 벌어들이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의자 1
'엄청나네, 너무 놀라워서 말이 안 나온다. 무섭다는 생각이 드네'
'어떤 구조로 운영이 되는 거야?'
많은 질문을 했고, 선배는 다정하고 상세하게 대답을 해줬다. 어느 정도 파악이 되는 시점에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질문을 던졌다.
의자 1
'선배는 10년 뒤에 무엇을 하고 싶어?'
이 질문은 앞으로의 기대에 대한 궁금함이 아니라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의자 2
'여기 있는 직원들은 예쁜 카페를 갖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모두에게 카페를 차려주고, 난 테마파크를 만들고 싶어'
의자 1
'왜 테마파크야?'
의자 2
'언젠가 결혼하게 될 때 내 아이가 좋아할 것 같아서.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이런 일을 그만두려고 해'
의자 1
'그래, 좋은 생각 같다. 선배 돈 적당히 벌고, 좋은 일 많이 하면서 살아'
선배의 멋쩍어하면서 당황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엔 선배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말을 해주고 싶었다. 설령 가시 같은 말일지라도. 오늘 아니면 이런 대화는 앞으로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 선배를 다시 볼일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선배는 용돈, 술, 선물등 자꾸 뭘 주려고 했는데, 나는 한사코 모든 걸 거절했다.
여러모로 불편했을 것 같다. 이 선배와의 만남은 이게 끝이었다.
서울에서 대구로 장시간 내려오면서 묘한 감정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작 그 선배에게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라고 호기롭게 이야기했지만
내 안에서는 부러운 게 있었나 보다. 상대적인 초라함도 느껴졌다.
그때 밀려왔던 그 헛헛함을 어떤 말로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동대구역에 도착해서는 망설였다. 그 날 만큼은 택시를 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알 수 없는 부끄러운 마음을 결국 버스를 탔다.
한적한 버스 안이라 에어컨 바람은 더 시원하게 느껴졌다.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가고 있었다.
한 참 가다가 무심하게 밖을 쳐다보았는데, 인도 위에서 보도블록을 교체하는 어르신을 보게 되었다.
특별히 뭔가를 생각하면서 본 것도 아니었는데, 보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지금 그 생각을 하는 이 순간에도 전율이 느껴진다
멋있어 보였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그러면서 내 입으로 내뱉는 말은
의자 1
'그래, 그래 저거야, 저거지'
돈의 양이 자신의 마음의 떳떳함보다 클 수 있을까?
양이 중요한 세상이라 하지만, 두 장면에서 느꼈던 퀄리티 차이는 전율이 생길 만큼 컸다.
그 장면 하나로 허전해했고, 부끄러워했고, 가치 있는 것인지 무엇인지 헷갈렸한 의심들까지
모든 복잡한 생각들이 한순간에 정리되기 시작했다.
선택과 결정이 필요한 삶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돈은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
그 기준으로 더 달리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그때의 경험은 내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돈의 크기와 마음의 떳떳함 사이에서 고민할 때마다,
여전히 그 보도블록을 교체하던 어르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진짜 부는 숫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서 찾는 의미와 떳떳함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로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이 선택은 나를 당당하게 할 퀄리티가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