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낡은 의자 바꾸고 새것으로 사라."
새 의자 구매를 고민하다 보니 그제야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내 의자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난다. 이제는 낡고 해진 상태지만, 25년을 함께 한 의자이다.
처음 이 의자를 들여놓았던 그때는 새것의 냄새가 났고, 가죽은 윤기가 흘렀으며, 앉는 순간의 탄탄함이 있었다. 그 의자 위에서 나는 수많은 것들을 학습하고 배우고 경험했다. 밤늦게까지 켜놓은 책상 조명아래에서 자료를 읽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때로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의자는 나의 무게를 고스란히 받아왔다. 몸의 무게뿐 아닌 고민과 한숨으로 무거운 그 무게를 지탱해야 했다. 회사재정에 대한 걱정, 프로젝트의 실패, 인간관계의 어려움들. 수많은 것들이 이 의자 위에서 일어났다.
힘든 일이 있던 날은 사무실에 혼자 남아 깊은 한숨으로 긴 시간을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무도 모르는 눈물을 아는 것도 오직 이 의자뿐이었다.
많은 고민에서 나온 생각들이지만 모든 생각들에 동의받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는 건 예전에도 어려웠지만 여전히 지금도 어렵다. 그런 와중에 접하게 되는 나의 약한 모습도, 좌절되는 순간들도 언제나 이 의자와 함께했다.
그리고 기쁨의 순간들도 함께 했다. 어려움 속에 해내는 일들이 생겨났을 때, 중요한 계약을 성사시켰을 때, 가시적인 성과를 이뤘을 때 느꼈던 감사하고 벅찬 기운 또한 이 의자 위에서였다. 돌이켜보면 그동안의 시간들을 이렇게 지켜온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장인어르신이 용돈을 건네주시며 말씀하셨다. "그 낡은 의자 바꾸고 새것으로 사라."
새 의자 구매를 고민하다 보니 그제야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의자라 해도 이 오래된 의자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의자를 구매하지 않기로 결정을 하니 의식하지 못했던 안도감이 불쑥 올라왔다.
새 의자가 주는 편안함과 쾌적함보다는, 25년을 함께 해온 이 의자와의 이별이 더 두렵게 느껴졌던 거 같다.
이 의자는 내게 단순한 가구가 아니다. 나의 성장과 좌절, 기쁨과 슬픔을 모두 지켜본 증인이자 파트너였다.
그 긴 세월 동안 쌓아온 이야기들을 아직은 놓아버리고 싶지 않다.
오직 이 의자만이 알고 있는 나만의 순간들이 여전히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 모든 기억과 의미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맡길 때 스며드는 만족감을 음미할 수 있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