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났다. 그가 갔다.
전남 구례로 흑염소를 먹으러 갔다.
승합차 한 대를 빌려 타고 단합대회를 하러 갔다.
여직원이 생일 선물로 줬다는 티셔츠를 입고 갔다.
여직원이 왜 남에 남편 생일을 챙겨?
회사로 전화했을 때 상냥하게 웃던 그 여자인가?
망할 것, 언제 봤다고 실실 웃어?
옷장에 못 보던 넥타이는 누가 줬을까?
생일이 지난 지 며칠인데 꾸깃한 티셔츠를
그제서 가져와서 슬그머니 옷장에 밀어 넣는다.
며칠 전 본 쇼핑백이 아직 차 포켓에 꽂혀 있는데
갑자기 문 닫으며 출장 간다는 말에 질려버렸다.
냅다 전화 걸어서 '갑작스러운 출장 통고라니!' 소리를 빽 지르니 차를 돌려 다시 온 장.
해명인지 변명인지 들어야겠다고 히스테리를 부리니 자신을 그렇게 만든 내 탓을 한다.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 자라 보고 놀란다고
선물 받은 티셔츠를 입고 갑자기 출장 간다고 내뱉고 차에 오르는 그를 보니 오만가지 잡생각으로 가슴은 불이 붙는다.
다 포기한 줄 알았는데 아직도 불씨가 남아 있었나 보다.
이래저래 당신을 이해 못 한다고
오두방정에 히스테리를 다 부리니
결국은 빌미를 제공한 그의 굴복, 굴복은 곧 승리!
좀 투명하게 살자는 것은 내가 그에게 절실히 원하는 바다.
직원이 선물로 줬다면 누가 뭐라 하나?
내가 못한 것 받으니 소비재의 순조로운 공급이요,
그 잘난 얼굴을 나만 독점할 것이 아니라
그 여자들도 대가를 지불하고
즐거움을 얻는 것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말이 났으니 말이지,
여자들은 남자가 좋으면 좋은 것이지
왜 쓸데없이 돈을 쓰고 그러나 모르겠다.
남자들은 좋은 건 좋은 거지만 선물 잘하지 않던데,
나만 못 받았나.....
남사친이 프랑스에 출장 갔다가 향수, 화장품 등
몇 개를 사다 준 적은 있다.
그 외에 남자에게 이렇다 할 선물 받은 것이 생각나지 않는다.
나도 이제부터 남자에게 선물 받으면 누가 줬다고 말할 테니 너도 말해 줘.
부부 사이에 투명하게 살고 싶어.
모르는 게 약이라고? 아는 게 병이라고?
머나먼 전남 구례는 잘 찾아가고 있는지
날씨도 꾸지레하다.
누가 운전하는지 잘난 우리님 무사하게
운전이나 잘하시게.
믿음을 주면 뭐라고 하나,
신뢰를 주면 어디가 덧나나.
작은 거 숨기려다 지뢰 밟지 말고
잔머리 굴리려다 머리털 빠지지 않게
이 밝은 세상에서 투명하게 살자, 좀.
세상만사, 부부간에 모든 일 다 알려고 하면 다친다지만 스스로 치유가 가능하면
즐기면서 할 일이다.
지금 즐기고 있는 것인지
상처를 후벼 파는 것인지 심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