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주리가 사는 법

만남과 결혼 그리고 이혼(25)

by Anima

# 어쩔 수가 없다.

봉 주리가 P와 헤어졌다는 말을 전하자 S는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왔다.

영업직이라 비교적 자유로운 그는 점심시간에는 전화를 하고 퇴근 무렵이면 학교 근처로 와서 매일 기다렸다. 밥 먹고 차 마시고 이른 저녁에 차로 그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오는 일이 반복되었다. 둘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늦게까지 같이 있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윤아를 생각해서 아쉬움을 남기고 각자의 집으로 향하곤 했다.


어느 날은 밤잠을 안 자고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봉 주리를 보고 부친이 한 소리했다.


뭐 하는 거냐? 잠도 안 자고, 폰섹스라도 하냐?


아버지가 구식인 줄 알았는데 그런 용어를 쓸 줄이야! 아마도 아직도 P를 만나고 있는 줄 아시는 것 같다. 봉 주리 자신도 아직은 그와 헤어지고 새 남자, 새파랗게 젊은 남자와 만나고 있다는 말은 못 하겠다.

그냥 좋으니까 만나자, 둘이 결혼을 할 것도 아니고 누가 둘 사이를 알면 잘 사귀라고 축복해 줄 사이도 아니니 지레 발설하고 다닐 필요도 없다.


헤어진 P를 끄집어내어 비교하는 것은 치졸한 짓이겠지만 그에 비하면 S는 상남자다. 봉 주리는 데이트를 할 때 여자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신중히 장소를 정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남자가 정해 놓은 대로 가자! 하면 따라가는 것을 선호한다. 데이트하기 전에 봉 주리가 무엇을 좋아하고 먹고 싶어 하는지 묻지도 않는다. 사실 봉 주리가 보신탕 빼고는 웬만한 음식은 다 잘 먹고 식성이 까다롭지 않다는 것을 다 파악한 S다. 만나기 전에 시장 조사를 다 해놓고 정한 대로 착착 진행하니 봉 주리는 마음이 편하다. 만나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이것 먹을까, 저것 먹을까 하다가 시간 다 보내고 결국 내키지도 않은 저녁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서울대 입구에 아담한 카페가 있었다. 조명도 적당히 은은하고 얼굴까지 가릴 만한 칸막이가 있어서 데이트하는 남녀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였다. 봉 주리와 S 역시 저녁을 먹고 한 시간 정도 들렀다 가는 카페다.

봉 주리에게 푹 빠진 S는 골목에 세워 둔 차 안에서도 격정적인 키스를 퍼부었지만 이 카페만 오면 봉 주리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아무리 칸막이가 있어도 옆 자리 대화가 다 들리는 곳이라 무척 남을 잘 의식하는 봉 주리로서는 힘든 시간이다. 물론 봉 주리도 싫지는 않지만 사람들을 의식하다 보면 응하고 싶지 않았다.


왜 자꾸 피해?

여기만 오면 왜 그래, 사람들이 다 보잖아, 여기서는 싫어!

그럼 모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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