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주리가 사는 법

만남과 결혼 그리고 이혼(29)

by Anima

# 그의 목소리


다음 날 점심시간에 S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낮으면서도 동굴처럼 목울대를 울리는 듣기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 그가 지닌 것 중에서 목소리는 늘 봉 주리를 설레게 한다.


점심 먹었어? 난 동료와 점심 먹고 곧 미팅이 있어서 나가려고 해. 저녁에 끝나고 학교 앞으로 갈게.


아니야, 오늘은 오지 마. 일찍 들어가야 돼. 어제도 아버지께 한 소리 들었고 윤아도 못 보고 잤어. 이제 평일에는 만나지 말고 주말에만 보는 게 어때?


그랬구나. 매일 보고 싶은데...... 일단 알았어. 이따 밤에 전화할게.


봉 주리의 옆에 앉은 선배 동료는 전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전근한 후에는 이혼한 사실을 숨기고 싶었는데 행정실에 가족관계 서류를 제출한 후에 알 만한 사람은 알게 되었다. 그때 옆 자리에 앉은 한 선배 동료와 친해져 허물없이 속사정을 얘기하며 지내던 터였다. 전남편의 횡포를 다 알고 이혼 과정도 다 알고 있는 동료라 봉 주리 앞에 나타난 젊은 남자에게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요즘 가끔 젊고 멋진 남자가 기다리고 있던데 사귀는 사람이야? 정말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 사람이 자기보다 젊은 것 같은데, 맞지? 자기가 동안이긴 하지만 그 남자는 멀리서 봐도 청년 같은 외모던데 그런 사람을 어디서 만났나 궁금해.


만나 지 얼마 안 돼요. 영어회화 수강하다 친해졌어요. 사실 저보다 많이 젊어요. 서로 좋아하지만 그게 제일 마음에 걸려요. 저는 아시다시피 이혼했고 딸이 있고 나이도 많잖아요. 그 사람은 미혼이에요.


와아, 드라마 같은 이야기네!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도 있지. 서로 좋아하면 나이와 환경이 무슨 상관이람. 단지 결실을 보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은 각오해야지. 자기가 그동안 이상한 남자 만나서 고생한 끝에 낙이라고 이제 참된 사랑이라는 걸 시작하려나 보다. 축하해!


아직 잘 모르겠어요. 마냥 둘이 좋다고 사랑에 빠질 수도 없고, 이것저것 재다가 좋은 사람 놓칠까 겁도 나고요. 하루에도 수십 번 고민을 하다가도 그 사람 전화만 와도, 목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어요. 만나면 둘만 있는 것 같아 행복한데 돌아서면 또 고민이 시작되지요.


뭘 벌써 고민을 해. 그냥 가봐. 서로 좋아하고 사랑할 때 그냥 가는 거야. 일생에 진정한 사랑을 느낄 때가 흔하지 않잖아. 그러다가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놓치면 아깝겠다고 생각이 들 때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해야지.


봉 주리 말대로 S는 학교로 오지 않았고 저녁이 되고 밤이 되어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매번 S는 10시 이후에 전화했기에 주리는 기다리지 않고 먼저 전화해 보기로 했다.


여보세요?


S의 낮게 울리는 목소리 대신 들리는 것은 의심을 가득 품은 여자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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