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2)

17화

by 빈자루

*

"오랜만이네, 기린." 제이가 먼저 말을 건넸다.


몇 년이 흘렀고, 취업을 했었고, 비가 내리는 날이었고, 헤어진 후로 처음이었다. 나는 서점의 문을 밀고 들어서는 참이었다. 문이 열리면서 작은 종이 딸랑 울렸다. 제이는 계산대 근처에 서 있었고, 얇은 시집을 한 권 들고 있었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빗물에 살짝 젖어 있었다. 나는 잠시 그녀를 쳐다봤다.


"오랜만이네." 내가 대답했다.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잘 지내?"


제이가 물었다.


"뭐. 살아있다는 점에서는."


제이가 웃으며 말했다.


"여전하네. 그 말투."


"너도 여전하네. 그 시집."


"아, 이거? 아직도 기억해?" 제이가 놀라며 물었다.


제이의 손에는 우리가 함께 서점에서 골랐던, 꽤 오래된 시집이 들려 있었다.


"물론이지. 네 생일날 함께 샀잖아. 네가 좋아했었고."


"아, 그랬나? 나는 기린이 선물로 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우리는 같은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지만, 그 장면의 중심이 서로 달랐다.


그녀는 받았던 마음을, 나는 함께한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랬었나? 아무튼 그 시집 읽고 같이 영화 봤었잖아. 이영애 나오는."


제이가 대답했다.


"아니야, 우리가 그날 봤던 영화는 '호우시절'이었어. 이영애가 나오는 건 '봄날은 간다'고. 그 영화 보고 좋아서 '봄날은 간다'까지 찾아본 거였잖아."


우리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녀의 말이 어쩐지 내 기억과 조금씩 어긋나 있다고 느꼈다. 내 기억에 '봄날은 간다'는 훨씬 나중에, 다른 이유로 찾아본 영화였다.


내가 말했다.


"글쎄. 기억이라는 게 원래 좀 제멋대로인 모양이야. 어쩜 머릿속에 커다란 두더지가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여전하네." 제이가 입을 가리며 살짝 웃었다.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며 나는 잠시 말이 막혔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인데,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았다.


하지만 낯익다고 해서, 모든 시간의 틈이 메워지는 건 아니었다.


제이가 말했다.


"나 배고파."


"서점에선 밥을 팔지 않는데."


내가 대답했다.


제이는 대꾸 대신 웃더니, 내 팔을 잡아끌었다.


나는 순간 움찔했지만, 저항하지 않았다.


우리는 나란히 우산을 쓰고 걷기 시작했다. 예전과 같이 좁은 골목길을.


그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혹은 우리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어색했지만, 동시에 부드럽기도 했다.




*

예전에 이 길을 이렇게 걸은 적이 있었나, 나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그랬던 것도 같고, 아니었던 것도 같았다.


역시.


내 머릿속에는 커다란 두더지가 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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