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
(1)
돌고래 :
최초에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대지를 딛고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마주 보며 음식을 나눴고,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으며, 깊은 바다를 헤엄쳐 사랑을 나눴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알기 전이었다.
우리는 사랑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사랑 그 자체였다.
우리의 다리를 자른 것은 신의 이기심이었다.
어느 날 제우스가 물었다.
"이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지?"
그 물음에 우리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기 때문이었다.
화가 난 신은 말했다.
"뭍과 바다를 지배하는 너희들에겐 모자란 것이 없군. 좋아. 그렇다면 내가 너희에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제우스는 번개를 일으켜 우리의 다리를 잘랐다.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더 이상 뭍을 걸을 수 없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대지와 하늘을 기억했지만, 그것을 만질 수 없었고 바라볼 수 없었다.
뭍과 하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슬피 울었다.
그리고 뭍과 하늘에 대한 기억은 흩어져갔다.
모두가 그것을 그리워했지만 모두가 그것을 다르게 기억했다.
그것이 사랑의 시작이었다.
같은 것을 그리워하면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사랑의 기원이었다.
*
(2)
돌고래 :
제우스의 번개를 피할 수 있었던 나는 오랫동안 홀로 떠돌았다.
그동안 뭍에선 공룡들이 다리를 잘리고, 인간들이 반으로 쪼개졌다.
신들은 우리에게와 같은 방식으로 그들에게 결핍을 가르쳤다.
그들 역시 그것을 사랑이라 불렀다.
동족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들이 사랑한 것은 오로지 자신뿐이었다.
그들은 상대에게 비친 자신의 모습에 심취했다.
인간들.
하지만 나는 인간들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그들은 상처 입을 줄 알면서도 서로를 껴안았고, 찢어질 줄 알면서도 서로를 노래했다.
사랑은 그들에게 영원하다는 착각이었으며, 결핍을 나누려는 행위였다.
하지만 그들은 완전하지 않기에 서로를 바라보았고, 완전하지 않기에 서로를 열망했다.
그리고 종작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인간들은 인간들의 방식으로 사랑을 계승시켰다.
소멸과 호혜의 방식으로.
*
"이봐요. 정신을 좀 차려봐요. 제발."
눈을 떴다.
귀가 누워있는 나의 뺨을 때리며 간절하게 울고 있었다.
"지금 이곳이 사라지고 있어요. 어서 피해야 해요!"
나는 아직도 꿈속에 있는 듯한 얼굴로 위를 바라보았다.
아니 사실, 어디가 위이고 어디가 아래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위와 아래가 동시에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낙타의 엉덩이에서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귀에서는 이명이 울렸다.
멀리서 스핀들 바가 가라앉고 있었다.
doors가 스핀들 바와 함께 아래로 쓸려나갔다.
"저기예요!"
귀가 손가락으로 우리가 들어왔던 문을 가리켰다. 우리는 그곳을 향해 뛰었다.
선로를 벗어난 기차가 우리를 향해 돌진했다.
내가 육중한 철문에 어깨를 기대었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힘을 좀 더 써봐요. 기린."
귀가 소리쳤다.
- 빠앙
옆으로 넘어간 열차가 관성에 의해 밀려오다 공간의 아래로 떨어졌다. 또 다른 제이와 또 다른 귀의 모습이 아래로 함께 사라졌다.
바닥이 허물어지며 검은 심연이 우리 쪽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귀가 나와 함께 오래된 철문의 손잡이에 무게를 실었다.
문은 움직이지 않았다.
문은 오랫동안 닫혀있던 입과 같았다.
귀가 발로 문을 걷어찼다. 문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대로 우리는 사라지는 건 가요?"
귀가 말했다.
"어쩔 수 없군."
내가 답했다.
그때, 돌고래가 다가오며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이리 와 보세요."
그의 눈빛은 평온했고, 예전처럼 웃고 있는 입가가 위로 살짝 솟아 있었다.
그가 차분하게 말했다.
"애초에 이곳에 들어올 때부터 나는 알았어요. 이곳을 나갈 수 있는 문은 나 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가 들어온 저 문은 프런트 도어예요. 한번 들어오면 저 문으로는 나갈 수 없죠. 나는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백 도어에요. 슈퍼 파워 거대 괴물 로봇의 유일한 허점이자 탈출구죠. 그래서 세르게이가 저를 이곳에 함께 들여보낸 거예요."
"그럼 너는?"
귀가 물었다.
"저는 슈퍼 파워 거대 괴물 로봇과 이곳에 함께 남겠어요. 그것이 저의 운명이에요."
"안돼! 돌고래야!"
귀가 소리쳤다.
- 빠앙
또 다른 기차가 기적을 뿜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바닥이 아래로 사라졌다.
"저와 친구가 되어 주어 고마웠어요. 당신과 함께여서 즐거웠습니다. 당신에게도 평화가 있기를."
돌고래가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꺼내 귀에게 전해주며 말했다. 사진 속에서는 귀와 돌고래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브이 자를 그리며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안돼!"
귀의 눈이 슬픔으로 가득 찼다.
돌고래가 말했다.
"나를 기억해 줘요. 그리고 당신과 함께여서 즐거웠습니다. 사랑합니다."
- 빠앙
기차가 우리 앞에서 쓰러졌다.
돌고래가 우리를 안았다.
그리고 우리는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