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와 기린 (5)

34화

by 빈자루

달칵.


"..."


"..."


"뭐죠?"


귀가 물었다.


"뭐가?"


내가 답했다.


"뭐냐고요.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 놓고, 갑자기 사라져 버리면 어쩌자는 거예요?"


귀가 말했다.


"미안해."


내가 대답했다.


"..."


"..."


우리는 말이 없었다.


"... 그래서..."


귀가 말을 이었다. 그녀의 허스키한 음성이 전파인지, 전화선인지, 파이브 지인지 포 지인지 모를 뭐를 타고 흘러들었다.


"... 할 말은 그게 다인가요?"


그녀가 물었다.


"... 미안해."


그녀가 말했다.


"아니요. 그런 말은 됐어요. 미안하다는 말 말고는 할 말이 없는 거예요?"


"..."


"정말 바보 멍청이군요. 끊어요."


"아니, 잠깐만."


내가 답했다.


"아니 잠깐만. 나한테도 기회를 줘."


"무슨 기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기회는 모두에게 공평잖아?"


"지금 저한테 기회를 달라는 건가요?"


"그래. 맞아. 나한테도 기회를 달라는 거야."


"좋아요. 줬어요. 자, 이제 됐나요?"


"사랑해."


...


"사랑해."


...


"사랑해."


...


"사랑해서 미칠 것 같고. 니가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아. 니가 사라지고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됐어. 나는 니가 아니면 안 된다는 걸 네가 떠나고 난 후에야 알어. 그걸 이제야 깨달은 나는 정말 바보 멍청이야. 나는 니가 없으면 안 돼. 니가 없으면 나는 살 수가 없어. 니가 없이는 숨 쉬는 것도 괴로워. 그런데 그 고통마저 없다면 나는 정말 숨 쉴 이유도 없어지는 것 같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서 미칠 것 같아.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사랑하는 게 어떤 건지도 몰라. 하지만 사랑한다고 너한테 말하지 않으면 당장 심장이 터 것 같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지구가 망고 우주 망해도 영원히 너를 사랑해. 영원히 너를 사랑해. 영원히 만을 사랑해."


내가 말했다.


"잠깐. 방금 뭐라고 했죠?"


"지구가 망해도 상관없다?"


"아니요. 그전에요."


"나는 바보 멍청이?"


"아니요, 더 그전에요."


"영원히 너만을 사랑해?"


"아니요. 비슷한데 더 짧게."


"사랑해?"


"아니요. 그렇게 말고요."


"사랑해?"


"아까랑 조금 달라요. 좀 더 부드럽게."


"사랑해."


"좀 더 강렬하게."


"사랑해."


"좀 더 아이처럼."


"사랑해."


"됐어요. 지금이 딱 좋아요. 한 번 더."


"사랑해."


...


"사랑해."


...


"사랑해."


...


"좋아요. 그렇게 계속 얘기해 줘요. 질릴 때까지 들어보고 그다음 어떻게 할지를 결정해 보죠."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나는 귀가 질릴 때까지 사랑한다고 말하고, 귀는 소파에 앉아 종일 그렇게 사랑한다는 말을 질리지 않고 끝까지, 끝까지, 끝까지 유심히 듣기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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