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피라미드

by 빈자루

서울은 넓고 캠퍼스는 컸다. 학교 정문에 들어서면 세상에 하나쯤, 작지만 내 자리를 예약한 기분이었다. 과 잠바를 입고 지하철을 탔다가 나보다 못한 학교 잠바를 보면 일부러 그 칸에 멈췄다. 다음 역에서 나보다 나은 학교 잠바를 보면 슬그머니 칸을 옮겨 잠바를 벗었다.

친구들은 서울 출신과 지방 출신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일반고 출신과 특목고 출신으로 갈렸다. 나는 특목고 출신 패거리들을 기웃거리다 거기에 끼지 못하고 방학을 맞았다. 집에 내려가선 동생에게 서울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걸 자랑스럽게 말했다. 동생은 집중하며 내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정작 학기가 시작하면 수업을 빼먹고 자취방을 나가지 않았다. 나는 일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

세상이 교묘하게 쌓아 올려진 피라미드라면 군대는 자를 대고 맞춰진 피라미드였다. 나는 그곳에서 나의 앞날을 다시 생각했고, 진급 심사를 앞둔 대대장이나 중대장을 보면 아빠를 떠올렸다. 그리고 아빠의 반쯤 감긴 눈을 생각했다. 아빠의 눈은 여전히 분홍 새의 그것처럼, 가늘게 반짝이는 무엇을, 감긴 눈 아래 깔고 있었다. 그래, 뒤 쳐져서는 안 돼.

전역하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수업에도 빠지지 않고 영어학원을 다녔다. 학점을 잘 주는 수업을 골라 들었다. 교수가 깐깐하다 싶으면 자체 드롭으로 그 과목의 성적을 지워버렸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돈을 주고 족보들을 긁어모았다. 그렇게 모은 족보들을 다시 인터넷에 올려 팔았다. 방학에는 대외활동, 리더십활동, 여름인턴, 겨울인턴. 가리지 않고 ‘활동’이나 ‘인턴’ 자가 들어간 공모에 응했다. 스펙이란 걸 쌓기 위해 내키진 않았지만, 교내 봉사 동아리의 부회장까지 맡았다. 그리고 틈만 나면 인터넷 취업 까페에 들어가 남들에게 스펙 평가를 받았다.

식스펙. 식스펙. 구리다는 평가가 달리면 그 사람이 쓴 글을 찾아 니 스펙은 더 구리다며 욕을 하고 싸웠다. 싸움은 종종 어느 학교의 어느 과가 어디 학교의 어디 과를 따라잡으려면 봉사활동 몇 회에, 학점 몇 이상이어야 한다는 식의 참전 글로 번졌고, 그 댓글에 언급된 어떤 학교에 대해서는 비웃음을, 어떤 학교에 대해서는 열등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평가했다. 뒤 쳐져서는 안 돼. 아빠의 말이 옳았다.

동기들이 휴학하고 잠깐 안 보인다 싶으면 해외 연수를 갔거나, 상위권 대학으로 편입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는 토익책을 더 두꺼운 것으로 바꾸고, 돈으로 리포트를 사 과제의 내용을 더 채웠다. 토익과 학점은 올랐지만 스펙이 크게 나아지는 것 같진 않았다.

그해 겨울, 동생은 재수에 실패했다. 동생이 삼수를 선택한 건 순전히 내 영향이 컸다. 동생의 성적으론 지잡대도 못 갔다. 지잡으론 동네 빵집도 차릴 수 없었다. 나는 서울로 올라와 제대로 공부해보라고 동생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동생은 나와 부모님의 뜻에 따라 노량진에 자리를 잡았다.

지하철 노선도에서 본 노량진은 바다 냄새가 날 같은 동네였다. 그런 도로 바닥에 물고기가 있을 것 같은 데 없고, 입시학원이 없을 것 같은 데 있었다. 나는 육교를 건너는 사람들에게 밀려 동생이 다니고 있는 재수 학원의 앞에 섰다.

동생이 촘촘히 열이 맞춰진 가느다란 책상 사이를 지나 복도로 나왔다. 얼굴이 많이 야위어 있었다. 나는 동생을 끌고 근처의 고깃집으로 갔다. 불판 위에서 얇은 고기가 멀건 국물을 흘리며 익었다.

“할만해?”

내가 물었다.

동생은 말없이 웃으며 고기를 한 점 입에 넣었다. 버텨야 한다, 라고 하려다 나는 동생의 말라붙은 여드름을 보고 말을 삼켰다. 고기를 하나 더 주문했다.

“형은 잘 있어?”

동생이 물었다.

“너나 잘해, 인마.” 내가 말했다.

“미안해.”

동생이 말했다.

“뭐가?” 내가 되물었다.

“그냥”, 이라고 동생이 대답했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헤어지는 데, 동생이 나에게 힘을 내라고 말을 했다. 뭐라고? 내가 뒤를 돌며 묻자, “힘내라고.”, 라며 동생이 말했다.

“내가 왜?”

내가 동생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냥, 힘내라고.”

나는 동생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알았어, 너두.” 하고 돌아섰다. 그해 동생은 삼수에 실패했다. 동생은 지방의 직업 전문학교로 들어갔다. 동생과 연락이 뜸해졌다. 나는 취업 준비로 바빴다.

-OO전자는 시계탑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그 시계를 기준으로 시간을 맞춥니다. 그 시계탑 속의 작은 부품이라도 된다면, 그것이 사회에 공헌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동기들은 내 스펙으로 OO전자 인턴 입사에 성공했다고 하면 모두 나를 칭찬했다. 6개월간의 수습 근무 후 평가를 통해 정식 직원으로 임용되는 조건이었다.

“대단하시네요. 정말 성실하셨나 봐요.”

나는 코웃음을 치며, 속으로 ‘지랄하네’, 라고 생각했다.

동기들은 스펙이 다들 대단했다. 나처럼 학점이랑 국내 봉사점수만 높은 입사자는 거의 없었다. 스카이는 기본이었고, 이름을 따라 하기 힘든 해외 무슨 대학, 석사와 전문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

지랄하네, 지들은 얼마나 잘났다고. 스카이는 스카이끼리 뭉치고, 해외 파는 해외 파끼리 뭉쳤다. 뭉쳐진 곳에서 떨어져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짜피 끝까지 올라가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버티는 거라면 자신 있었다. 굴러떨어지고 싶진 않았다. 나는 아빠와는 달랐다.

회사생활은 보이지 않는 적과 나누는 대화 같았다. 적들은 경쟁사에도 있고, 옆 부서에도 있었지만, 가장 큰 적은 파티션 너머에 있었다. 작은 책상을 간신히 가리고 서 있는 파티션. 적들의 눈은 병렬로 길게 도열 된 그 칸막이 너머에도 있었고, 사내 게시판에도 있었고, 그룹 메신저 속에도 있었다. 모니터를 보며 남의 통화 내용에 집중하는 귓속에도, 복도에서 마주치며 인사를 주고받는 눈 속에도 있었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아는 티를 내지 않았다. 나는 매일 그들과 싸웠다. 싸움에서 이겼는지, 졌는지 알 수 없는 싸움이 계속되었다. 회사는 그런 곳이었다.

“김○○씨. 천천히 하세요.”, 라는 말에 나는 화장실을 뛰어갔다가 왔고, “정말 천천히 하라니깐요.”, 라는 말에 나는 오줌을 참고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엇을 정말로 원하는 건지, 점점 더 그 속을 더 알 수 없게 되었다. 오로지 동기들보다 빠르게 출근하고 늦게까지 남아있는 것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출근 시간에 먼저 와 있는 동기를 보면 불안해졌다. 퇴근하면서 남아있는 동기에게 인사를 하는 건 더욱더 불안했다. 하지만 나는 버틸 수 있었다. 나는 아빠나 동생과는 다르니까. 나는 그들과 달라야 했다.

사람들과 말을 섞는 일이 적어졌다. 동기 모임은 물론, 식사 후 선배들과의 커피 타임도 불편했다. 혼자 앉아서 받은 일을 처리하는 게 오히려 편했다. 선배들은 쉬엄쉬엄하라며 일거리를 더 주었다. 나는 그 일을 받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중간 결과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내부 메일로 중간 성적을 보냈어요. 각자 확인하시고 부족한 부분 노력하세요.”

인사팀장이었다. 메일을 열었다. 보통. 각주에 맡은 일은 성실히 처리하나, 동료들과의 관계 형성이 아쉬움. 동기들 간의 상호 평가 결과였다. 관계 형성이 아쉽다는 말보다, 보통이라는 단어가 더욱 무서웠다. 보통. 나는 보통이었다. 고로 떨어질 확률이 높았다. 안전하지 않았다. 보통의 인물들처럼 사라질 준비를 해야했다. 그리고 3개월 후, 나는 정규직 전환에서 최종 탈락했다.








https://youtu.be/kcXGjtILtpE



<비가 잘 내리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다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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