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캐치 앤 볼 (마지막)

by 빈자루

평범하고 밋밋하기 때문에. 자취방에 여러 날을 누워 혼자 내린 결론이었다. 보통의 존재여선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나는 인터넷을 열어 각종 자격증을 검색했다.

-자격증 없이 회사에 입사하는 건 맨몸으로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따발총이라도 들게 지금이라도 때려치우고 공부하고 싶네요 ㅠㅠ

어느 게시판에서 본 글이었다. 지금 내 나이 스물일곱. 길게 본다면 삼 년 정도 투자를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라 판단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해서 삼 년 안에 든든한 장총 하나를 손에 쥔다면 분명 해 볼 만했다.

전공과 가장 겹치는 시험을 검색했다. 회계 과목이라면 학교 다니면서 이골이 나게 공부했었다. 다만, 시험 준비할 동안 생활비가 걱정되었다.

취업이 늦어질 것 같다는 말에 아버지는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는 나를 믿는다고도 말씀하셨다.

나는 이동 거리를 줄이기 위해 학원 근처로 자취방을 옮겼다. 2.5평짜리 잠만 자는 방이었다. 책상과 침대만 있는 방을 보고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생활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학원 아르바이트를 하며 수업을 들었다. 다른 학생들이 스터디를 한다며 까페에 가고, 독서실을 끊을 때 나는 혼자 고시방으로 갔다. 가끔 복도에서 옆방 사람을 만나면 목을 숙이고 벽에 몸을 붙여 그가 지나갈 길을 만들어주었다. 그게 사람하고 마주하는 전부였다.

친구들과 연락도 끊었다. 취업하고 자리 잡았다는 친구들의 소식을 들으면 공부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 폰은 항상 꺼놓았고 자기 전에만 열었다. 연락 오는 곳은 없었다.

가족들과의 안부도 점점 뜸해졌다. 잘 있냐는 엄마와 동생의 물음에 며칠이 지나고야 그렇다, 라고 답장을 했다. 엄마가 박스에 반찬을 가득 채워 보냈지만 넣어둘 곳이 없어 책상 밑에 내려두었다. 며칠 후 반찬은 모두 상해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먹을 것을 보내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첫해 1차 시험에서 몇 문제 차이로 떨어졌다. 수험 게시판에서 초시생이 그 정도면 잘한 거라고 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다음 해엔 한 과목 과락으로 시험에 떨어졌다. 게시판에서 시험 전날 열렸던 학원 특강에서 문제가 8개나 나왔다고 난리였다.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게시판에서 용하다는 강사들의 책과 동영상을 사며 2차 준비를 했다. 내년엔 꼭 한 번에 2차까지 붙어야 했다.

세 번째 1차 시험에선 점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떨어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1차 준비가 부족했던 것도 같고 집중력이 떨어진 것도 같았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서른, 고시 실패, 취업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누구에게 묻고 싶었지만 물을 곳이 없었다. 인생 존망, 이라는 댓글도 있었고 취업하기에 늦은 나이는 아니라는 댓글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수험 생활을 그만두기가 두려웠다. 1차와 2차 준비, 취업과 고시 준비를 오락가락하며 1년이 지났다. 네 번째 시험에선 네 과목을 과락했다. 시험을 그만둘 수도, 시험을 준비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2.5평 방에 홀로 남았다.

처음, 고향에 내려갔을 때 아빠는 내가 지쳐서 쉬러 온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누워서 보내는 날이 잦아지고, 그 기간이 길어지자 초조해하셨다. 불쑥불쑥 방문을 열고 들어오려다, 문이 잠겨있는 걸 보고 말없이 돌아서셨다. 엄마는 방 문고리에다 담배 봉지와 견과류 같은 것을 걸어놓았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거나 책장에 꽂힌 수험 서적들을 보며 누워있었다. 책을 펼쳤다가 다음 장으로 넘어갈 자신이 없어 책의 겉면만을 보았다. 책 겉면을 보다가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책을 버릴 수도, 펼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책의 겉면을 보다가, 잤다.

자고, 또 자고. 또 잤다. 홑이불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그 끝을 쥐고 옹크린 채, 자고, 자다, 또 새를 생각했다. 새. 그것은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하고 둥지 밖으로 떨어져 목을 구부리고 있었다. 몸보다 긴 목을 배에 붙이고, 그것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것의 날개에는 털이 없었다. 나는 그 새를 생각했다.

어떤 때는 웅크려서 태아를 생각했다. 그리고 영숙이를 생각했다. 태아는, 그 새와 같았다. 그리고 영숙이와 같았다. 나는 몸을 더욱 옹크렸다.

어떡하지. 서른이 넘어 아무것도 못 할 줄은 몰랐다. 뭔가는 되어 있겠지. 뭔가가 아니어도, 뭔가가 되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겠지. 그런데 난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이 되기 위해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방에 숨어서 담배를 피웠다. 창틈을 열고 담배를 피우다, 지나가는 노인을 보면 부러웠다. 지팡이를 짚고 한낮의 아파트 단지를 걷는 그들을 보면, 그들은 그들에게 맞는 시간과 장소에 있는 것 같아, 그들이 부러웠다.

모두가 잠들면, 아무도 마주치지 않을 것 같을 때,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노인들이 걷던 보도 위를 조금 걷다가, 아파트 옆 둔덕 아래로 가서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피우다 앞 동에 사는 젊은 남자가 슬리퍼를 끌고 오면 자리를 피했다. 그의 머리카락도 떡이 져 있었다. 가끔은 그가 나를 보고 자리를 피했다. 우리는 서로를 못 본 척했다. 그게 서로에 대한 배려였다.

동생이 내려오면 밖으로 나갔다. 동생은 서울의 작은 전기 회사에 취업을 해 전봇대에 오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동생의 옆에서 걸으면 내가 평범한 사람인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일에 일하다가 주말에 쉬러 나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동생의 곁에서 걸으면 안심되었다. 동생은 나를 위해 주말마다 서울에서 내려왔다.

“형 나가고 싶으면 말해. 같이 나가자.”

어느 날, 동생이 야구공과 글러브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싫다고 소리 질렀다. 동생이 방문을 닫고 나갔다. 글러브 위의 공이 굴러와 나의 머리맡에 멈추었다. 나는 공을 집어 동그란 면을 매만졌다. 오돌토돌 두른 실밥이 손안에 들어왔다. 나는 공을 던져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다시 꿈을 찾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때, 창문 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나는 다시 공을 만졌다.

이불을 걷고 일어나 동생에게 다가갔다.

“나갈래?”

동생이 그러겠다며 일어났다.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운동장에는 조무래기 몇이 빈 골대에 공을 차고 있었다. 그 주위를 아줌마 몇이 돌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생각했다.

동생이 공을 던졌다. 공이 멀리서 날아와 나의 손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공을 쥐어 허공을 향해 뿌렸다. 공이 동생의 글러브 안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해야 하지?

동생의 공이 다시 내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말 없이 공을 다시 뿌렸다.

동생도 나도, 말이 없었다.

우리의 캐치 앤 볼이 계속되었다. 볼은 때론 높은 포물선을 그리고 내 안으로 들어왔고, 데굴데굴 굴러 동생의 안으로 들어갔다. 캐치 앤 볼이 계속되었다. 조무래기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축구공을 챙겼다. 나는 동생을 향해 다시 공을 뿌렸다. 동생이 물었다.

“힘들어?”

그렇다, 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렇다, 라고. 나의 볼이 동생에게 캐치되었다.

“너는?”

내가 물었다.

“괜찮아.”

동생이 대답했다.

동생의 볼이 나에게 캐치되었다. 폭. 동생의 볼이 나에게 들어왔다.

“괜찮을 때도 있고, 안 그럴 때도 있고 그래.”

동생이 이어 말했다.

나의 공이 엇나갔다. 공이 굴러 동생의 발치에 가 멈추었다.

“나는,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동생이 볼을 집어 올렸다.

“글쎄….”

동생이 이어 말했다.

동생의 볼이 돌아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땐,”

“그렇게 그냥 있어도 돼.”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멀리서 가로등 불이 켜졌다. 우리는 더 말없이 캐치 앤 볼을 계속 이어나갔다.

멀리, 때로는 가깝게.

볼은 우리의 사이를 오고 갔다. 누군가,

볼을 받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 나는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캐치 앤 볼은 계속되었다.

공은 포물선을 그리기도, 땅을 구르기도 하면서 반드시 나와 동생의 안으로 돌아왔다. 동생이 말했다.

"나, 별이 왜 빛나는 지 알 것 같아."

내가 물었다.

"왜 빛나는데?"

"멀리 있고",

동생의 볼이 굴러 나의 발치에 멈추었다.

"흔들리기 때문이지."

나는 조용히 공을 주워들었다.

그리곤 말없이 높게.

공을 던졌다.

공이 동생의 글러브에 캐치되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흔들리면 어떻게 되는데?”

내가 물었다.

동생의 볼이 나에게 캐치되었다.

“가장 보통의 존재가 되는 거지.”

동생은 하늘을 올려 보고 있었다. 하늘에는 가장 보통의 존재들이 서로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나에게도 그것들이 보이는지 알기 위해


한참 동안 그곳에 서있어야 했다.








https://youtu.be/ji7NiEwW_TA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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