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세계

by 빈자루

내가 4학년에 올라가면서 우리 가족은 다시 소도시로 이사를 했다. 아빠가 진급을 못 해 군대에서 나와야 한다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나와 동생은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고 큰 도시로 전학을 간다고 좋아했다.

아빠는 터미널 근처에 슈퍼를 차렸다. 가게에 과자랑 껌이랑 아이스크림 같은 물건들이 많았지만, 동생과 내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엄마는 앞으로 물건을 아껴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얼마 후, 아빠 가게 앞에 더 큰 슈퍼가 생겼다. 엄마와 아빠 둘 다 가게에 나가 계신 시간이 길어졌다.

아침마다 새로운 교실에 들어가는 건 고역이었다. 친구들이 말을 걸까 봐 겁이 났고 선생님이 내게 질문을 하실까 봐 두려웠다. 틈만 나면 화장실에 들어가 팔꿈치를 씻었다. 아무리 문질러도 팔을 꺾어 보면 하얀 때가 지워지지 않았다. 도시 친구들의 얼굴은 하얬다.

동생은 유치원에 가지 못하고 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영숙이를 떠올리며 동생이 학교에서 혼날까 봐 조바심이 났다. 손을 잡고 학교에 가며 허공에 니 이름을 써보라고 지시했다. 동생이 가만히 손가락 끝으로 자기 이름을 더듬었다.

성적은 중간이었다. 전 학교에서는 영숙이와 나, 둘 중 하나가 1등이었고 내가 무조건 1등이었다. 나는 선생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일기장과 숙제 노트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더는 1등을 할 수 없었다. 1등을 했다고 으스대는 친구의 얼굴을 보면 부럽기보단 부끄러웠다. 그 아이가 나를 어떻게 볼까 부끄러워서 그 아이의 얼굴을 바로 볼 수 없었다. 나는 공부를 점점 안 했다.

“형. 촌놈이 뭐야?”

어느 날 동생이 물었다. 나는 다음 날 동생의 교실로 가서 동생을 촌놈이라고 부른 아이의 얼굴을 때렸다. 엄마가 학교로 와서 그 아이의 엄마에게 사과를 하셨다. 다시는 친구의 얼굴을 때리지 않겠다고 나는 엄마와 약속했다. 엄마는 그날 저녁부터 동생의 얼굴을 직접 씻겼다. 나는 동생에게 매일 저녁 글자 쓰기를 시켰다.


중학생이 되면서 우리는 더 큰 도시로 이사를 했다. 가게는 망했지만, 아빠가 동사무소에 동대장으로 취업 됐다고 엄마가 말했다. 이사 오던 날 저녁, 아빠는 나와 동생을 꿇어 앉히곤 술을 마셨다. 러닝셔츠 밖으로 아빠의 목과 가슴이 빨갛게 달아있었다.

“뒤 쳐지는 건 안 돼.”

아빠가 눈을 반쯤 감고 말했다. 분홍색 눈두덩을 보며 나는 눈을 감고 누워있던 분홍 새가 떠올랐다. 맞아, 뒤 쳐지는 건 안 돼. 나는 생각했다. 아빠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학원에선 이미 다음 학기의 끝부분에 할 것을 배우고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학원 수업을 따라가기 위한, 학원의 학원을 다녔다. 나는 뒤 쳐지지 않게 그들 뒤를 따랐다. 뒤 쳐질 때마다 분홍 새와 아빠가 생각났다. 그러면 나는 무서워져, 더욱 그 뒤를 밟았다.

동생은 별자리에 빠져 있었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오면 동생은 방바닥에 엎드려서 발을 까불며 책을 보고 있었는데, 표지를 뒤집어 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라든지, 별의 탄생 같은 제목이 적혀 있었다. 나는 동생이 과학자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해보았다. 동생은 국어나 영어, 수학을 더 열심히 해야 했다. 하지만 동생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생도 학년이 올라가면 국영수가 중요하단 걸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생은 국영수를 공부하지 않았다.

성적이 조금씩 올랐다. 한번 뒤 쳐진 걸 따라잡으니 그다음부터는 처음보다 어렵진 않았다. 학원에서 예습하고, 학교에서 복습하면 그게 다였다. 하지만 예습을 하다가 모르는 게 나오면 식은땀이 날 정도로 긴장이 됐다. 초조하고 불안해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뒤 쳐지는 건 안 돼. 학교에 가기 전, 기를 쓰고 그날 학원에서 배웠던 걸 공부했다. 학교에서는 점점 학원 책을 꺼내 놓고 공부를 하게 됐다. 새가 점점 두렵지 않았다.

“애들이 너 재수 없다던데?”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고 있는데 키 작은 친구가 와서 말을 걸었다.

“누가?”

나는 집으로 돌아와 그 친구가 나에게 말한 것이 맞는지, 맞다면 왜일까 고민했다. 책을 펴고 복습을 시작했다. 친구의 말이 점점 생각나지 않았다.

명문 고등학교 진학에 성공했다. 아버지는 나를 자랑스러워하셨다. 뒷바라지를 다 해줄 테니 마음껏 공부하라고 하셨다. 환하게 웃는 아빠의 얼굴을 보니 나도 얼굴이 편해졌다.

-프로가 아니면 죽음을

책상 복판에 글귀를 적어 유리 아래 깔았다.

프로라.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세상은 바늘꽃같이 날카로운 피라미드였다. 그 피라미드에서 자리를 차지해 올라가지 못하면 둥지에서 밀려나는 거다. 아빠처럼. 혹은 분홍 새처럼.

나는 다음 목표를 정했다. 인서울. 시골 산동네에서 소도시로 옮겨왔다. 소도시에서 다시 대도시로 자리를 옮겼다. 다음 갈 곳은 서울뿐이었다. 서울로 가자. 나는 머리를 밀고 공부를 했다. 하지만 성적은 제자리걸음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자율학습을 안 하고 집으로 갔다. 검은 승용차가 친구들을 태워갔다. 친구들은 1학년 때 이미 3학년 책을 꺼내 보고 있었다. 나는 간신히 중위권을 지킬 뿐이었다.

‘재들은 안전해서 좋겠다.’

학교 정문에 붙어 있는 모의고사 순위표를 보며 생각했다. 거기 내 자리는 없었다. 그리고 종이 바깥의 어디쯤 내 이름이 있을까 헤아려보았다. 나는 불안해졌다.

공부를 포기하는 친구들이 생겼다. 친구들은 교실 뒤에서 춤을 췄고, 화장실 뒤에 숨어서 담배를 피웠다. 그 아이들과는 말을 섞지 않았다. 말을 섞으면 위험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수학여행 때나 학교 축제 때 그 친구들이 추는 춤을 무대 아래에서 지켜봤다. 그 춤을 보고 발가락을 간신히 꼼지락거리면 초라하게 느껴졌다.

초라하구나. 초라해.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노는 걸 잘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열광하는 친구들의 틈에서 빠져나와 정문의 성적 순위표 아래로 걸어갔다. 멀리서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퍼져 나왔다. 친구들이 추던 춤을 몰래 따라 해보다 그만두었다. 고개를 들어 굵게 적힌 이름들을 읽었다. 주머니에서 밑줄 친 단어장을 꺼내 보다 집어넣었다. 몰래 무대 아래 모여있는 친구들의 뒤에 가서 섰다. 축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너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

어느 날, 동생에게 물었다. 동생은 여전히 별에 목을 매고 있었다. 밤 열 두시가 넘어 집에 가면 늘 신화와 별이니 우주의 시작 같은 책이 동생의 책상 위에 흐트러져 있었다.

“아니.”

동생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럼 뭐가 되고 싶은데?”

잠시 고민하더니 동생이 말했다.

“모르겠는데.”

“그럼 왜 맨날 과학책만 봐?”

내가 다시 물었다.

“몰라, 그냥 좋아서.”

동생이 웃었다. 동생은 웃었지만 나는 불편했다. 동생에게 교과서를 가지고 오라고 시켜서 진도를 확인했다. 이다음엔, 이거야, 여기는 중요하니까 잘 외우고 여기는 버려. 내 책과 동생의 책을 번갈아 가리키며 동생에게 말했다. 동생은 웃었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그 후로도 집에 가면 여러 번 동생을 깨워 이것저것 충고를 늘어놓았다. 그러고 난 다음에야 마음이 놓여 잠을 잘 수 있었다.


고3이 되면서 동생과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말을 나눌 시간이 없었다. 집에 와서는 잠만 잤다. 이른 아침에 나가고, 새벽 한 시가 넘어 집에 돌아왔다. 주말에도 학교에 가고, 버스를 타면서도 머릿속으로 배운 것을 암기했다. 그런데도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반에선 피라미드의 끝에 오르기 위해 친구들이 모두 열심히 기었다. 기지 않고 노는 것은 오로지 축제 때 춤을 춘 아이나, 화장실 뒤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이뿐 이었다.

나는 그 아이들처럼 상관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나는 더욱 열심히 기었다. 오르기 위해서라기보단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다행히 인서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커다란 대학 입시 도표에서 중간보다 살짝 위에 있는 학교였다. 서울로 대학을 못간 친구들을 보며 나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

“너도 잘 할 수 있을 거야.”

서울로 올라오기 전날 밤, 너절하게 쌓인 문제집을 동생에게 밀어주며 말했다. 나는 동생이 그 책들을 다 풀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풀거나, 못 풀거나 그것은 동생의 문제였다. 나와는 상관이 없었다. 다만 동생이 나의 뒤를 따라오기를 바랐다.

“그래서 걔가 집을 나갔대.”

엄마였다. 짐을 싸는데 밖에서 엄마와 아빠가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예전 살던 곳의 교회 권사님과 통화를 한 모양이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 영숙이의 소식을 묻지 않았다. 영숙이의 세계는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일이었다.







https://youtu.be/6FxkJ1dgObk


졸리네용. 얼른 자러가야징. 넘 졸려용.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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