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대

5화

by 빈자루

쌀칵.

얼마나 걸었을까. 주위에 더는 사람이 없었다. 이따금씩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귀를 스쳐 지나갔다.

쌀칵.

다리 난간에 몸을 기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불이 흔들거리다 사라졌다.

쌀칵쌀칵. 라이터의 부싯돌을 다시 당겼다. 하얀 담배가 소리 없이 빨갛게 타들어 갔다. 연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옆을 돌아보았다. 검은 차가 검은 도로 위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나는 몸을 돌려 다리의 난간에 가슴을 기대었다.

강둑 옆에 있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하얀 불빛들이 퍼져 나와 검은 수면 위에서 번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검은 물 위와 흔들리는 하얀빛을 보며 담배의 연기를 빨아들였다. 습.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폰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빈 트럭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를 향해 달려왔다. 비에 젖은 공기가 나를 지나 사라졌다.

습.

연기를 한 번 더 빨아들이며 멀리 있는 물을 봤다. 후.

일렁이는 하얀 불빛 위로 작은 물방울들이 떨어지며 원을 그렸다.

나는 문득 저 검은 강물 위에 하얀 불빛들이 떠다니는 게 아닐까 궁금해졌다. 난간에 몸을 기대어 가슴을 교각 밖으로 빼내고 다리 밑으로 목을 내밀었다.

다리 밑에는 검은 물이 소리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첨벙. 첨벙. 첨벙.

지퍼가 풀리면서 뒤에 매고 있던 책들이 우르르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나는 급하게 허리를 세우고 어깨에서 가방을 내려놓았다. 책이 반쯤 떨어져 물을 따라 흘렀다.

나는 가방을 안고 급히 도로 건너편으로 뛰어갔다. 펜스를 넘고 둑을 내려와 얼른 가방을 팽개치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첨벙첨벙. 물이 허벅지를 감싸고 배꼽 위까지 차오르더니 아래로 나를 잡아 당겼다.

잡아야 해.

부드러운 흙을 밟아 밀며 나는 앞을 향해 나아갔다. 발이 흙 속에 처박혔다.

물이 가슴 높이까지 올랐다. 팔을 저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잡아야 해.

이 떠내려오고 있었다. 잡아야 해. 기를 쓰고 앞을 향해 몸을 당겼다.

퍽.

밟고 있던 돌멩이 위에서 미끄러지며 물속으로 얼굴이 처박혔다. 비릿한 맛이 입을 헤집고 안으로 들어왔다.

철썩.

두 손으로 물을 쳤다.

퍽.

손과 발에 걸리는 것이 없었다.

살려주세요.

물 위로 올라오며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목구멍을 열고 물이 들어왔다. 빠져나올 수가 없어.

살려주세요. 퍽.

힘을 다해 팔로 물을 내리쳤다.

살려주세요. 퍽퍽.

몸이 돌며 아래로 흘러갔다.

퍽.

손끝에 걸리는 무언가를 눈을 감은 체 잡아당겼다.

억.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것과 함께 몸이 아래로 잠겼다.

살려주세요. 물이 다시 입을 열고 들어왔다.

살려주세요. 물에 잠긴 독서대를 끌어안고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떠내려가는 책이 보였다.

살려주세요. 나는 독서대를 안고 힘껏 발을 찼다.

헉. 발끝에 조그만 돌이 차였다.

헉. 헉. 발끝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턱. 돌이 빠지며 몸이 다시 잠겼다.

헉. 헉. 있는 힘을 다해 발을 찼다.

턱.

조금씩 단단한 땅이 발에 걸렸다. 한발. 한발.

당기는 물살을 뿌리치며 나는 아래를 밟고 올라섰다.

서서히 몸이 드러나면서 끌어당기는 물과 맞서 싸웠다.

헉. 헉. 검은 물이 소리 없이 내 가슴과 뒤를 지나고 있었다.

점차 물이 아래로 빠지고 나는 힘이 빠져 바닥에 손을 짚었다. 천천히 손과 발을 짚으며 검은 강 속을 빠져나왔다. 검은 물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뭍으로 나와 한동안 누운 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추워. 몸이 떨려 견딜 수가 없었다.

추워. 바닥에 손을 짚고 사방을 둘렀다. 가지들이 비에 젖어 흔들거렸다.

추워. 팔을 감싸고 몸을 안았다.

쌀칵. 가방을 뒤져 라이터를 꺼냈다.

쌀칵. 쌀칵. 부싯돌이 물에 젖어 불이 일지 않았다.

쌀칵. 쌀칵. 쌀칵. 나는 멀리 보이는 다리 밑을 향해 기어갔다.

쌀칵. 젖은 손을 벽에 비비고 부싯돌을 다시 당겼다.

팔랑. 주홍 불꽃이 잠시 일었다 사라졌다.

틱. 나는 불을 댕기고 손을 모아 마른 종이에 불을 대었다.

휙. 바람이 불며 불이 꺼졌다.

쌀칵. 손을 모아 다시 불을 붙였다.

팔랑. 다시 주홍 불꽃이 일며 종이에 불을 주었다.

휙. 바람이 지나며 불을 빼앗아 가자 나는 뺨을 바닥에 기대고 작아지는 불꽃을 향해 김을 조심히 불어넣었다.

팔랑. 가느다란 연기가 솟으며 검게 변하던 종이가 다시 붉게 흔들렸다.

북. 가방 속에 책을 찢어 죽어가는 불 위에 올렸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더니, 이내 종이에 방패연 같은 작은 구멍이 생기고 아기의 손과 같은 작은 불길이 종이를 뚫고 나왔다.

북. 나는 아기가 사라지기 전에 종이를 갖다 대었다. 부욱 부욱.

있는 힘을 다해 종이를 찢어발기고, 작은 불 위에 종이를 먹였다. 촘촘하게 활자가 적힌 종이들이 불 위로 떨어지고 앞뒤로 뒤틀리더니 이내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검게 되었다.

휙.

바람이 불며 다시 불꽃이 흔들거렸다. 나는 등을 돌려 바람을 막고 불을 에웠다. 안쪽에서 붉은 불꽃이 다시 출렁거렸다. 나는 종이를 계속 찢어 발겼다.

부욱. 북. 북. 찢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다 찢어 넣었다.

부욱. 북. 북. 손가락이 얼얼해질 때까지 손에 잡히는 것은 모조리 찢어 넣었다.

찢어발길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찢어발기자 가방을 뒤져 던질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던졌다. 연필을 던지고 필통을 던지고 지우개를 던지고 축구화를 던지고 도시락통을 던지고 분홍색 더플코트와 양털 후리스까지 던져 넣었다. 그래도 더 던져 넣을 것이 없자 가방을 탈탈 흔들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알바가 튀어나오고 자물쇠가 튀어나오고 장수생과 남녀 무리들이 튀어나왔다.

원장이 튀어나오고 군바리가 튀어나오고 총무가 튀어나오고 노숙자와 넥타이들까지 튀어나왔다.

펑.

라이터가 깨지며 불꽃이 크게 흔들렸다. 순간 검은 물에 비치는 어떤 빛보다 환한 빛이 교각 아래에 흔들렸다. 나는 흔들리는 그림자를 보며 불 앞에 서서 춤을 추었다. 흔들리는 빛과 흔들리는 몸짓이 검은 물 건너편에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었다.

나는 오랫동안 춤을 추었다. 흔들리는 불과 그림자를 보며 나는 오랫동안 춤을 추었다. 검은 강이 나와 그림자 사이를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이내 불이 꺼지고 나는 홍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니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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