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두

6화

by 빈자루

빈방은 나올 때와 마찬가지였다. 구겨진 이불. 꽁초가 가득한 패트 병. 담뱃불 구멍에서 새어 나온 누런 물자국. 나는 불을 켜고 들어가 벽에 몸을 기대었다. 맞은 편엔 검게 슬은 곰팡이가 벽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처음에 놈은 엷은 푸른색이었다가 점차 녹색으로 변하더니 이젠 썩은 내를 풍기는 짙은 검은색이 되었다.

놈을 제거하기 위해 왁스질을 해보고 벽지를 새로 발라봐도 소용이 없었다. 놈은 슬그머니 다시 찾아왔고 전보다 더 짙게, 더 넓게 내 방에 스미었다.

죽이려 하면 할수록 놈은 더욱 거세게 반발했다. 어젠 놈의 숨통을 끊으려고 젖은 걸레를 녀석 얼굴 중앙에 대고 세게 문질렀다. 벽지가 벗겨지고 그 속이 드러났지만, 놈은 사라지지 않았다.

놈은 더욱 크고 사납게 입을 벌리며 나를 마주 보고 있다. 성난 머리칼을 휘날리며 나를 향해 소리치고 있다. 벽에 붙어있던 죽은 모기의 피가 놈의 눈에 묻어 이제는 놈이 내게 눈을 부라리며 소리치고 있다. 나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탕탕탕.

홍두가 왔나 보다. 어느새 또 깜빡 잠이 들었다. 요새 통 잠을 자지 못했으니까. 나는 바닥을 짚고 일어나 현관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을 열었다. 홍두가 앞에 서 있었다. 뿌연 김이 홍두의 안경에 어려있었다. 비에 젖어 얇은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있었다.

"니 잤나?"

홍두가 물었다.

"응."

내가 대답했다.

"니 잘 있나?"

홍두가 물었다.

"응 기냥."

내가 대답했다.

"니는?"

"머 잘 있지. 머."

홍두가 대답했다.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와 맥주캔을 밀쳐내고 홍두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홍두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니 머했노?"

"나 잤다."

"응. 그래. 잘했네."

홍두가 말했다.

나는 홍두 쪽으로 빈 병을 밀어주었다. 홍두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홍두가 말이 없이 불을 끌어당겼다.

"니 잘 있나?"

홍두가 다시 물었다.

"응. 잘 있다."

"그래? 그럼 됐노."

홍두가 병에 재를 털며 말했다.

나는 냉장고로 가서 큰 콜라병을 가지고 와 홍두에게 밀어주었다.

홍두가 마개를 열고 콜라를 입에 부어 마셨다.

그의 앞에 마주 앉아 나도 담배를 입에 물었다.

"거 영재 갸는 어떻게 됐노?"

홍두가 물었다.

나는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취업한다고 나가더만 취업 됐노 우옜노. 왜 연락이 없노."

나는 잘 모르겠다고 다시 대답했다.

"됐으면 됐다고 말을 해야지. 싸가지 없노."

나는 잘 모르겠다고 다시 대답했다.

"갸는 우예 지내는지 아노? 거 너거 후배. 같이 공부하던 아."

연락을 하지 않아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니 가 아나? 승미이. 내랑 같이 공부하던 아. 갸 돼서 나갔다."

"잘 됐네."

"그래, 머 잘 됐지."

홍두가 병에 재를 털었다.

우리는 말이 없었다. 말이 없이 담배를 피웠다. 방에 연기가 가득 찼다.

"니 우애 지내노?"

홍두가 다시 물었다.

오늘 독서실을 옮겼다고 홍두에게 대답했다.

"어디로 갔노? 와?"

종로로 옮겼다고 대답했다.

"종로? 와 거로 옮겼노?"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와 모르노?"

그냥 잘 모르겠다고 다시 대답했다.

홍두가 더는 묻지 않고 병을 들어 음료를 마셨다.

"니 우야노?"

홍두가 물었다.

"머가?"

"열심히 해라, 인마."

나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내 이번에는 되야는데. 우냐노."

홍두가 물었다.

"잘 되겄지."

내가 대답했다.

"뭐 재미난 거 없나?"

홍두가 물었다.

재미있는 게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몰래."

잘 모르겠다고 내가 대답했다.

"이제 우리 머하노. 할 것도 없고."

홍두가 바닥에 누우며 말했다.

나는 다시 한번 우리가 할 것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학교 갈까?"

나는 싫다고 대답했다.

"머 먹을래?"

나는 됐다고 대답했다.

"그름 와 불렀노?"

홍두가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이 없자 홍두가 옆으로 돌아누우며 말했다.

"머 재미난 거 없노? 나 발표 날 때까지 암것도 모하는데."

홍두는 2차 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머 시험이 끝나면 머하노. 할 것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는데."

홍두가 누워서 한쪽 발에 다른 발을 올리며 말했다.

"이자 머하노."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승미 누나. 니 머하는지 아노?"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 누나 참 예뻤는데."

"예뻤지."

"누나 어디 취직했다고 들었는데. 남자친구 있을라나."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홍두가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는 빈 페트병을 홍두에게 다시 밀어주었다.

"니 종로라?"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거기 사람 안 많노? 오늘 사람들 모인다고 하던데."

나는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우리 거나 가 볼까?"

나는 가기 싫다고 대답했다. 벽에 등을 기댔다.

홍두가 방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꺼내 보며 말했다.

"내 2차 커트 69점이라는 썰이 있고, 73점 이상이라는 썰이 있다. 이번에 나 가채점해봤을 때는 71점 나올 수도 있고, 72점 나올 수도 있는데 니는 어떻게 생각하노?"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지금까지 커트가 70점 이상인 적은 없었다. 근데 73점이라고 말하는 놈들은 지들도 안될 것 같으니까 괜히 사람 쫄리게 하는 거다. 안 그렇노?"

나는 그럴 것 같다고 홍두에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커트가 70점 이상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안 그렇노?"

나는 그럴 것 같다고 홍두에게 대답했다.

"맞제?"

나는 맞다고 홍두에게 대답했다.

홍두가 핸드폰을 보다가 다시 말했다.

"이건 뭐 시험이 끝나도 놀지를 못하노. 시험 떨어지면 내 좆된다. 씨바. 이번에 떨어지면 내 우야노."

나는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괜찮나?"

나는 괜찮을 거라고 홍두에게 대답했다.

홍두는 다시 말이 없었다. 나는 벽에 등을 더욱 기대었다. 나도 더는 말이 없자 홍두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홍두를 보며 더욱 몸을 벽에 기대었다. 홍두는 작은 핸드폰 속을 들여다보며 내게 말을 걸지 않았고 더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을 물을까, 무슨 말을 건넬까, 무슨 말을 물어야 할까, 생각하다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다.

"니 괘안나?"

홍두가 물었다.

"응."

내가 대답했다.

홍두가 다시 핸드폰 속을 들여다보았다. 홍두의 작은 핸드폰 속을 벽에 기댄 나는 들여다볼 수 없었고, 홍두는 다리를 까딱까딱하며 바닥에 누워 폰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홍두의 폰 속이 궁금했지만 어떤 것도 홍두에게 물을 수 없었고 아무런 말도 건넬 수가 없었다.

"니 괜찮나?"

홍두가 다시 물었다.

나는 다시 응, 이라고 홍두에게 대답했다.

더 묻지 않고 홍두가 폰을 들여다보았다. 작은 불빛 속에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모르겠다."

홍두가 말했다.

"우예 되겄지."

홍두가 다시 말했다.

"우예 안되겄노."

홍두가 다시 말했다. 그래,라고 나는 홍두에게 말을 걸까, 아니면 그러지 말까, 아니면 그렇다고 대답을 할까, 하다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는 어떻게 하냐고, 나는 이제 어떻게 하냐고, 나는 이제 어떻게 하냐고, 나는 이제 어떻게 하냐고, 작은 불빛 속에 들어가 있는 홍두에게, 나는 이제 어떻게 하냐고,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고,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 거냐고, 홍두에게 묻고 싶었지만, 묻고 싶지 않기도 했다.

"니 와그노?"

홍두가 물었다.

"응?"

이라고 내가 대답을 했다.

"니 와그라는데?"

홍두가 다시 물었다.

응, 이라고 대답을 하려고 하는데, 응, 이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것은 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는 점점 더 아무것도 모르고 더는 견딜 수 없이 무서워졌다.

응. 나는 도대체 왜 그러냐고.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냐고. 홍두에게 묻고 싶었지만 나는 그렇게 묻지 못하고, 내 손과 발은 덜덜 떨리고, 덜덜 떨리는 가슴을 잡고 싶어서 어깨를 힘껏 잡았지만 떨림은 멈출 줄을 모르고, 나는 이제 어떡하냐고. 나는 이제 어떻게 하냐고, 나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묻는 말을 하고 싶은데 묻는 말을 왜 해야 하는지,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니 괘안노?"

아니, 나는 괜찮지 않다고, 아니 나는 괜찮을 거라고, 아니 나는 괜찮지 않다고, 아니 나는 괜찮을 거라고 나는 홍두에게 말하지 못하고 몸을 벌벌 떨며 울지를 못했다.

"괘안타. 괘안타."

홍두가 내 등을 두드리며 괜찮다고, 괜찮다고 말을 해주었다.

"나 어떡해."

내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홍두가 괜찮다고, 괜찮다고 나를 토닥이며 나를 꼭 잡아 주었다.

나는 내 팔을 세게 잡은 홍두의 팔을 보았다. 홍두가 잡은 홍두의 손 밑으로는 검붉은 피가 세게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피가 보이면 보일수록 더욱 세게 내 온몸을 껴안았고, 홍두는 그러면 그럴수록 나를 더욱 세게 안아주었다.

괜찮다. 괜찮다.

우리는 검은 곰팡이가 핀 벽 앞에 앉아있었다. 검은 곰팡이는 우리는 마주 보고 있었다. 나는 검은 곰팡이를 마주 보았다. 검은 곰팡이는 우리를 마주 보고 있었다. 우리는 검은 곰팡이를 마주 보았다. 우리는 검은 곰팡이에게 먹히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는 검은 곰팡이에게 먹히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우리가 검은 곰팡이에게 먹히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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