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1화

by 빈자루

"내가 소설가라니. 그것은 당치 않다."


웍을 쥔 장수의 아귀에 공력이 들어갔다. 웍 속의 야채와 기름이 천천히 떠오르더니 허공에서 맴을 돌았다. 기름이 바깥으로 튀어 가스레인지 위의 불꽃과 공명하였다. 장수가 공력을 거두어들이자 잘게 썰린 채소가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장수가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짜파게티 먹어)


전음을 보냈으나 기척이 없었다. 진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일요일 오전. 명월이 일어나 있기에는 이른 시각이었다. 아침을 먹이고 다시 재울 생각으로 공력을 2할 올려 전음을 흘려보냈다.

일반인이라면 이 정도의 내력이 실린 음공으로도 달팽이관과 고막이 손상되겠지만, 상대는 명월. 그녀는 한때 무림촌의 수제로, 스승의 총애를 받던 여걸이었다.


반응이 없었다. 불안감을 느낀 장수가 안방으로 돌진하였다. 명월이 바닥에 엎드려 신음하고 있었다.


(주화입마?)


장수가 얼른 그녀의 맥을 짚었다. 불안정한 떨림이 그의 손 끝으로 전해졌다. 얼른 그녀를 안아 침대에 눕히자 옅은 신음을 뱉으며 명월이 돌아누웠다.


(기마세)


장수가 다리를 벌리고 허벅지에 체중을 실었다. 양팔로 허공을 가른 후, 단전에 기를 모았다.

헙.

장수의 양 손바닥이 명월의 등에 닿자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몸에 온기가 돌아올 때까지 장수는 일주천을 계속하였다.


"나 물."


이윽고 정신을 차린 명월이 두 발로 이불을 걷어차며 말했다.


최근, 마교의 암습이 잦아지고 있었다.

다행히 오늘은, 명월자다가 혼자 굴러 떨어진 것으로 보였지만,

장수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스승의 죽음 이후, 명월의 기억이 온전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장수가 빠르게 신형을 일으켜 부엌으로 이동해 사발에 물을 받았다.

명월이 시원하게 물을 넘긴 후, 자신의 등 쪽으로 손을 까닥했다.

장수가 손가락을 동그랗게 오므려 명월의 등을 가볍게 두들기기 시작했다.

마침내 명월이 정신을 차렸다.

비틀거리며 거실로 걸어 나가는 그녀를, 장수가 짧은 숨을 몰아쉬며 따라나섰다.


"오이 안 썰어 넣었어?"


젓가락으로 면발 속을 헤집으며 명월이 물었다. 그 물음과 동시에 장수의 신형이 솟구쳤다.


(진전살적)


스승에게서 전수받은 초식을 변형해 잽싸게 오이를 채로 썰었다. 살수의 길에서 물러난 지 오래.

하지만 그간 연마했던 무공이 집안일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곱게 썰린 오이가 명월의 그릇 위로 금세 올라왔다. 짜파게티 면의 열기에, 채 썰린 오이가 촉촉이 젖어들고 있었다.


"요즘 어때?"


명월이 물었다.


"응? 좋은데?"


발을 깨물며, 장수가 대답했다.


"그래? 그럼 다행이네."


명월은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장수가 명월의 입가에 묻은 춘장을 손가락으로 슬며시 닦아주었다.



명월.

무림촌 제일의 여검.

살구꽃 아래에서 봤던 그녀의 칼은

부드러웠고, 또한 무거웠었다.


명월의 칼 날에 내려앉은

한 송이 연분홍 꽃잎을 보며

장수는 절망했었고, 또한 망설였었다.


흐드러지게 핀 꽃에

하얀 달이 가려지던 밤이었다.


그녀의 칼은 멀리 있었다.



*

"소설은 잘 돼 가?"


장수는 대답 없이, 묵묵히 면발을 빨아들였다.


장수에게서 아무 말이 없자, 명월은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일은 언제 시작할 거야?"


"어." 라며, 장수가 애매하게 답을 흘렸다. 장수는 현재, 3년 6개월째, 무직 상태였다.


10년째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던 순간, 장수의 몸은 허공을 가를 듯이 가벼웠었다.


장시간의 데스크잡. 출퇴근길의 지옥철.


한때 무림의 총아였다고는 하나, 오랜 시간의 직장 생활은 그의 무공을 갉아먹었다.


왜? 냐고 사람들이 묻는 말에, 장수는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목적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스승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남겨놓으신 비급을 완성하는 일이었다.


혼탁해진 무림의 기를 정순하게 돌려놓기 위해서는,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 시급했다.


그래서 장수는, 퇴사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리곤 외부와의 접촉을 모두 금한 체, 오로지 비급의 완성에만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언 3년.


집에서 쉰 덕에 내력은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지만, 비급의 완성은 여전히 요원해만 보였다.


허구한 날, 책상 앞에만 앉아있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소설을 쓰냐고 물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비급을 적어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세상을 악으로부터 긍휼 하기 위해서...



*

명월이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갔다.


스승님의 유지도 좋고, 정순한 기운도 좋지만,

먹고사는 문제도 중요했다.


(명월...)


당분간 생계를 명월에게 의존하고 있는 한, 집안일은 오로지 장수의 몫이었다.


장수가 빈 그릇을 설거지 통으로 옮기고 싱크대 앞에서 홀로 읊조렸다.


(내 반드시...)


장수의 손등 위로 쏟아지는 물줄기가 거품이 되었다 터지기를 반복했다.


(내 반드시, 스승님의 유지를 세상에 알려, 그대의 수고를 헛되이 하지 않겠소...)


방울들의 생과 멸을 견하며, 장수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소설가가 아니다...)


독서실과 카페에서 장수가 쓴 비급을 보며, 이게 소설이냐고 묻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소설가가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내력이 올라와 장수의 입에서 단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소설가가 아니다."


하하. 장수가 보여준 비급을 보며 웃음을 숨기지 않던 동료들.


"나는 소설가가 아니다!"


이건, 일기도 아니고ㅡ 소설도 아니라며 평을 하던 도반들.



순간, 장수의 단전에서 끌어 오른 기가 임맥과 백회, 독맥을 타고 다시 단전으로 돌더니, 장수의 주위로 물방울무늬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내가 소설가라니, 그것은 당치 않다!"


쓰러져 가던 스승의 모습.

불에 타던 무림촌.

쓸쓸하게 웃던 조평의 마지막 모습과

그를 바라보던 명월의 아련한 눈빛.



장수의 주위로 떠오르던 물방울들이 천천히 장수를 중심으로 공전하더니,


물방울이 일순간에 증기로 화하며 사라졌다.


장수가 말하였다.


"나는 무림촌맹 12대 당주,


검결 오온 선생의 마지막 제자.


무사. 이장수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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