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온

2화

by 빈자루

비급의 완성을 저지하려는 마교의 공작이 점차 노골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유튜브 쇼츠나 미장 강세로 장수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더니, 최근에는 보험 가입과 대출권유 전화로 장수의 동태를 염탐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최근에는 카드 배달원으로 위장해 장수의 서재까지 난입했었다.

은근슬쩍 장수의 서책을 훑어보려던 그를 장수가 표범같이 막아섰음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스승의 유지가 적힌 비급이 순식간에 백지로 돌아갈 뻔했었다.


*

스승은 현경의 경지에 오른 고수였다.

당시 무림에는 정파와 사파를 통틀어 현경에 오른 자가 없었다.


무림의 모범이라 일컬어지는 무림맹주 정사홍도 간신히 화경었다.

사파 최초로 사도연맹을 구축해 스스로 련주의 자리에 오른 김사인도 화경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정사홍이 최근 환골탈태에 도달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이는 개방의 거지들이 정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퍼뜨린 헛소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무림맹의 카드 지출 내역에 정사홍이 필러 시술을 여러 차례 받은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정사홍은 단순 미용 목적일 뿐이었다며 당당함을 내비쳤지만,

사도연합은 정사홍에게 연맹원들을 다스리지 못한 책임을 지고 맹주의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했었다.

결국 정사홍이 개방 거지 몇의 목을 베며 그 일은 일단락되었었다.


현경은 정파와 사파의 고수들이 생을 다해 이루고자 하는 꿈의 경지였다.

반로환동(返老還童). 만독불침(萬毒不侵).


외골격과 근육을 조정해 신체를 젊게 바꾸고 만 가지 독을 분해하는 신비의 경지.

그곳에 가장 먼저 다다랐던 것은, 정과 사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홀로 무림촌에서 은거하며 후학을 양성하던 스승이었다.


*

현경에 오른 첫날밤.

스승은 아이의 모습으로 신체를 바꾸고 장수 앞에 나타났었다.

장수는 놀라 스승 앞에 고개를 떨구었고, 스승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감축드리옵니다."


"... 고맙네..."


무림은 지금, 혼탁의 시대.

정파와 사파의 싸움은 극에 달해있었다. 정파와 사파는 모두 양민들의 뜻이 자신들에게 있다며 상대에게 칼을 겨눴지만, 무림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협의란, 오로지 자신들의 사욕을 위해서만 사용된다는 사실을.

그들이 말하는 협의에, 피를 흘리는 것은,

오로지 아이에게 젖을 물려야 할 여인

세상물정에 어두운 젊은 무사들 뿐이라는 것을.


"이제 강호로 나가시는 겁니까?"


장수도 모르게, 묻고 있는 그의 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


"..."


"..."


스승은 대답이 없었다.


스승과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으레 있어야 할 말 끝에, 있어야 할 답이 없고

기다리던 이가 민망함과 초조함에 다른 질문을 고민하고 있을 때쯤,

긴 시간 동안 숙고하던 스승이 한 마딜 짧게 뱉곤 했었다.

그 바람에 스승과의 대화는 늘 박자가 맞지 않았다.


"..."


"..."


"..."


"... 옷이 너무 크구먼..."


긴 시간, 스승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옷이 크다는 거였다.


아닌 게 아니라, 아이가 된 스승의 손발이 옷자락에 모두 파묻혀 있기는 했다.


"옷은 당장 내일 새로 맞춰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


"... 이거 이거 칼도 무거워졌구먼... 허허허..."


스승이 옷자락을 걷고 두 손으로 칼을 들며 말했다.


"스승님! 조심하십시오!"


장수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장수가 얼른 칼을 빼앗아 스승의 발치에 놓고는 스스로의 무례에 놀라 스승에게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 허허... 괜찮네. 괜찮네. 고개를 그만 들게, 자네."


"..."


이번에는 장수 쪽에서 말이 없었다.


현경은 정파와 사파의 고수들이 생을 다해 이루고자 하는 꿈의 경지.

무림은 지금 혼탁의 시대.


하지만 지금 더 혼란스러운 것은 정파도 사파도 무림도 아닌 장수의 마음이었다.


(이 몸으로는... 이 몸으로는...)


스승이 간신히 반로환동에 이렀음에도, 아이의 몸으로 칼자루 하나조차 제대로 쥐지 못한다면...


강호에서 죽어가는 무수한 양민들의 비명 소리가 장수의 귀에 울리는 듯했다.


(스승님...)


장수의 얼굴에 뜨거운 눈물이 쉬지 않고 쏟아졌다.



그때,


보드라운 무언가가 장수의 머리칼을 감싸며 장수의 목을 꼬옥 안아주었다.


맑은 웃음.


도저히 무림인의 것이라고 볼 수 없는 함박웃음을 띤 아이가,


장수의 목을 꼭 껴안고,


등을 토닥이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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