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맹

3화

by 빈자루

무림의 소문은 빠르게 번져나갔다.


지난밤, 아이로 모습을 바꾸던 스승에 대한 소문은

같은 시각, 장을 푸러 나왔던 순이 엄마에게서 순이 아빠에게로,

객잔에 술을 대러 나왔던 순이 아빠에게서 점소이 용이에게로,

우연히 그 시각 객잔에서 한 잔 걸치고 있던 녹림 패거리와 개방의 거지들에게로,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그 일은 정사홍과 김사인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

다음날,


소박한 노인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는 스승이 장수에게 말하였다.


"... 비가 오려나 보네. 사립문에 우산을 걸어놓게."


정말로 그날 밤.

바다와 하늘이 바뀐 듯 비가 퍼부었고,

정사홍의 무리가 스승을 찾아왔다.


정사홍의 호위가 사립문을 밀치는 바람에 걸려있던 우산이 쓰러졌고,

정사홍이 탄 가마의 가마꾼들이 그 우산을 밟고 지나쳤다.


장수가 댓돌에 올라 스승님께 정사홍의 방문을 알리었다.


"스승님. 무림맹주 정사홍께서 스승님 뵙기를 청하옵니다."


"..."


장수의 말에도 기척이 없었다.

장수가 다시 말하였다.


"스승님. 무림맹주께서 오셨습니다."


정사홍의 호위들이 장수에게 어서 방으로 건너가 스승을 깨우라는 신호를 보내자, 이를 눈치챈 사홍이 호위들을 가로막았다. 장수가 낮게 스승을 다시 불렀다.


"스승님. 주무십니까."


세 번만에 스승의 방에서 소리가 나더니 스승이 잠뱅이 차림으로 마루청을 밟으며 나왔다.


"... 허. 송구합니다... 늙은이가 되니 귀가 어두워져 그만..."


옷깃을 여민 스승의 얇은 가슴팍엔 검버섯 핀 쇄골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기다리는 내내 긴장한 체, 딱딱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던 사홍의 눈길이 스승의 앙상한 뼈가지에 닿자

그의 간사한 얼굴이 자뭇 안심했다는 듯 편안하게 바뀌었다.


그가 뱀 같은 웃음을 지으며 스승에게 말했다.


"이곳에 훌륭한 뜻을 품은 분이 계시다 하기에 몇 마디 가르침을 받고자 왔습니다."


"..."


"..."


스승이 말없이 멋쩍은 듯 쭈그러진 손가락으로 이맛살만을 긁적이자 사홍의 안면이 점차 굳어졌다.


"..."


"..."


정사홍이 침착하게 얼굴을 펴고 다시 스승에게 말하였다.


"요새 무림이 시끌시끌합니다. 법과 정의를 멋대로 해석하는 자들로 인해 그 혼란이 고스란히 양민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숨죽이고 있는 무림인들을 위해, 부디 한 말씀만 하시지요."


"..."


"..."


"..."


스승은 끝내 말이 없었다.


뭔가를 말해달라는 사홍의 재촉에, 대체 무슨 말을 듣고 싶냐는 듯 스승은 되려 사홍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사홍의 눈가가 찌그러졌다.


"대협. 정녕 대협께서는 자기 뜻대로 법과 질서를 유린하는 저들에게 아무 할 말도 없으시단 말씀입니까?"


"..."


스승은 말없이 정사홍에게 찻잔을 내밀었다.


입술이 타들어가던 사홍은 차를 들이켜다 혀를 데었고,


그의 호위들이 칼을 뽑으려다 정사홍에게 제지당했다.


애써 웃음을 되찾은 사홍이 간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대인. 과연 대인의 뜻이 이리도 깊은 줄 몰랐습니다. 허허. 덕분에 오늘 제가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갑니다."


정사홍의 올라간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리었다.


"..."


"..."


스승은 아무 말 없이 사홍의 가능 길을 마중했다.


사홍의 호위와 가마꾼들이 문을 나서며 침을 뱉는 소리가 장수의 귓가에 번졌다. 그들이 떠나자 장수가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어찌 무림맹 앞에서 반로환동을 감추셨습니까? 저들은 무림에서 최고의 세를 누리고 있는 자들입니다. 저들의 정의에 힘을 보태시지요."


"..."


"..."


"... 어찌..., 어찌, 아이의 모습으로 저들에게 힘을 보탤 수 있겠는가."


"하오나, 스승님..."


"저들에게 정의란, 자신의 것을 지키는 것 말고는 없네. 그렇다면 그것은 정의라 할 수 없지."


이어서 스승이 말했다.


"하지만 아이에게 정의란, 그저 부모의 사랑일 뿐이야."


장수는 더 이상 스승의 말에 덧을 댈 수 없었다.방울 소리가 요란하게 무림촌의 모든 집의 지붕을 때리고 있었다. 차가운 달이 빗소리에 가려진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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