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놔라! 이거 놔라!"
_ 원기옥(元氣玉)!
나는 거대해진 에너지의 덩어리에 부장을 냅다 꽂았다. 천장이 흔들리고 바닥이 진동했다.
"부디 성불하시길."
널부러진 박부장을 뒤로 하고 나는 집무실을 나섰다. 현재 시각 오후 열한시 반. 나는 회장실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
1차 정사대전이 발발했을 때 나제철은 현제양, 오온과 같이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동했다. 살구검 오온. 검의 극 현제양. 초년시절 동경하던 이들과 한편에 서 싸운다는 것만으로 그는 감개했다. 허나 그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에게 그들은 너무나 큰 산이었다. 그들의 높은 식견과 무공. 범인이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들의 뒷모습을 볼 때 마다 느껴졌다. 나제철은 결국 산을 오르기를 포기한다. 산은 반드시 올라야만 하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
띵.
"왔는가."
천장을 받치고 선 기둥의 끝에서 회장이 나를 맞이했다.
천장이 흔들렸다.
나는 회장을 향해 걸었다.
뿌연 먼지가 낙하했다.
미녀들과 무사들은 이미 자리를 피해 없었다.
권좌에 비스듬히 앉은 회장이 나를 내려봤다.
"아무도 없군요."
내가 말했다.
"그렇지. 아무도 없네. 마치 이곳을 처음 세울 때처럼."
회장이 말했다.
밖은 식령귀들의 울음으로 요란했다.
"왜 제게 거짓을 말하였습니까."
내가 물었다.
"느끼고 싶었네. 그때의 마음을."
회장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소년의 빛이 잠시 담겨있었다.
"자네 스승과 전장을 누비며 참 많이도 이야기 했었지. 무엇이 옳은가. 무엇을 타파해야 하는가. 지금 생각하면 나도 자네 스승도 어렸던 게야. 어린 것은 순결하지. 순결한 것은 깨지기 쉬운 법이고."
그가 말했다.
나는 묵묵 그의 말을 기다렸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의 끝에서 나와 오온은 같은 걸 느꼈던 게야. 이 싸움은 누구도 승리할 수 없다라는 걸. 누구의 승리도 누구의 패배도 아니라는 걸. 애초 칼을 빼들고 전장에 나간 순간 모두가 패자로 정해진 게지. 나도 오온도 그것을 몰랐어."
그가 말을 이었다.
그의 빛이 노인의 그것과 같이 애처로웠다.
"전쟁이 끝나고 오온은 다른 길을 선택하더군. 무림을 등진 그를 나는 도망자라 비웃었어. 나는 다시 시작하겠다고 다짐했지. 무림에 피와 잔혹을 가져오는 정과 사 말고. 나 단독의 길을 가겠다고. 그것이 대륭이었어."
그의 소리가 떨렸다.
천장의 부스럼이 가라앉았다.
"양민들은 굶주려있었어. 정과 사의 싸움에 신물이 나 있었지. 그들에겐 당장 먹고 입을 것이 없었어. 인간에게 먹고 입을 것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겠나. 사업은 급물살을 탔지. 나도 그때는 신이 났어. 비로소 오온과 현제양의 그늘에서 벗어났다고 착각을 했지. 칼에는 의미가 없으나 나는 적어도 양민들에게 재화를 주니까. 그들이 그르고 내가 옳았다고 확신했네. 그것이 오판이었지."
"그래서 스승을 살해하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회장이 나를 보았다.
"아닐세. 그것은 내가 아닐세. 자네는 그리 믿고 있었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구먼. 오온과 현제양의 죽음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 역시 나였으니까."
그가 눈을 감았다.
"양민들은 금새 현혹되더군. 재화의 재화. 재화의 재화. 그들을 타락으로 몬 건 내가 아니었어. 나는 단지 뜻 없는 칼에 뼈를 붙이려 했을 뿐이야. 강자들은 더욱 강해지길 원하고 가진 자들은 더욱 갖길 원하지. 나는 그들에게 뜻을 제공했어. 뼈에 살을 붙이고 살에 살을 붙이고 그 살에 또 살을 입힌 건 양민들이었어. 그들이 바란 게 남보다 강해지고 남보다 더 갖는 것이었으니까. 그들은 초라함을 견딜수가 없었던 게야. 초라함은 사람을 욕망하게 하지. 나는 그것을 알아. 그것은 막을 수 없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물었다.
"자네도 알지 않는가. 의미없는 칼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배경화면은 다케히코 이노우에님의 배가본드에서 가져왔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