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설거지 언제까지 할 거야?"
설거지 통에 담긴 장수의 손등 위로 물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설거지 언제까지 할 거냐고?"
(맹호은림)
문득 등 뒤에서 살기를 느낀 장수는 자신도 모르게 초식을 펼쳐 방어 자세를 취했다.
짝.
명월이 철사장을 연마한 적이 있었던가. 장수의 셔츠 속으로 명월의 가는 손가락 자국이 붉게 아로새겨졌다. 기억을 잃었을 뿐, 명월의 강기는 여전했다. 장수가 반격할 틈도 없이 명월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이게 뭐야. 물 다 튀었네."
아닌 게 아니라, 기가 폭발하며 튀어나간 물자국에 주위가 흥건했다. 아직 운기조식이 서툴러 그런 것뿐인데, 대가는 가혹했다. 장수가 명월의 손에서 걸레를 빼앗아 바닥의 물기를 훔쳤다.
열심히 바닥을 훔치면서도 어느새 기 폭발을 할 정도로 내력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장수는 흐믓한 심경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제 몇 달만 더 쉰다면, 일곱 갑자 정도의 공력은 충분히 회복될 것으로 보였다.
"라면 다 떨어졌어."
(맹호은림)
내력이 회복된 것은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명월의 강기와 부딪힐 때마다 장수는 자신도 모르게 방어태세를 취하게 되었다.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것은 정말로 잘 대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장수가 수인을 풀며 말했다.
"라면을 다시 사야 한다?"
순간 명월이 쥐고 있던 국자에서 검기가 흘러나왔다. 명월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는 듯했지만, 장수의 예민해진 기는 그것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궁신탄영)
장수의 몸이 활처럼 휘며 빠르게 뒤로 물러날 자세를 취하였다.
"뭐? 라면을 다시 사?"
분명 장수는 몸을 피하였다. 하지만 명월의 손에서 떠난 국자는 불규칙한 궤도를 그리며 날아오더니, 이미 장수의 이마에 닿아있었다.
(이것은 이기어검?)
어찌 된 일인지 명월은 기억을 잃었음에도 그녀의 내공은 오히려 장수보다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듯했다. 장수는 조용히 이마를 문지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이 사무사?)
*사무사(思無邪) :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 또는 생각에 그릇됨이 없다. 무림에서는 칼을 낼 마음이 없는데 이미 칼이 나간 상태, 칼을 거둘 생각이 없는데 이미 칼을 거둔 상태를 말한다.
"통장에 돈도 다 떨어져 간다고. 어떻게 생각하냐니깐?"
명월이 속상하다는 듯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알겠어. 이제 거의 다 되어 간다고..."
장수가 떨어진 국자를 주워 올리며 기가 죽어 말했다.
*
정사홍과 김사인이 무림촌에 왔다 간 후, 무림촌 전체에는 냉랭한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다.
중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산골 마을이라, 무림의 일엔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서로 편을 갈라 정사홍과 김사인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아니, 그럼? 칼 들고 남의 걸 뺏는 놈 편역을 들어? 그러고도 니가 사람 놈이야?"
"야 이놈아! 내가 은제 니 놈 집구석 고구마를 훔쳐먹었냐, 내 논 마지기에다가 니 놈 물을 대기를 했나? 어째 너는 말만 하면 시비여?"
조용하던 시골 주막에 사람들이 모이면 싸움이 일었고, 그 싸움의 끝은 으레 스승에 대한 험담으로 이어졌다.
한편에서는,
"그러니께 그 검결 선생이 무림맹 팬을 들었어야지이. 그 비 오는 날 그 무서운 냥반을 그냥 보냈으니 이자 우린 우짜는가?"
"그러게 말이여. 혹시 그 검결이라는 놈도 김사인인가 머시긴가 그 껌은 옷 입고 다니는 놈이랑 한 편 아니여? 순 도적놈이었구먼..."
"그르치? 내 그럴 줄 알았다. 어째 지나가다 말을 걸어도 순 얼굴만 벌게지고. 사램이 답답허니 속을 알 수가 없더만. 속아지가 시꺼맹께 그래 쌘 님처럼 말도 못 했나 보구먼."
다른 한편에서는,
"아니. 대관절 이게 말이 됩니까? 무림의 협, 사인 선생을 그렇게 보내다니요. 가진 자들의 마음은 모두 한결이라더니, 검결 선생도 결국 그들과 다르지 않았군요. 검결 선생에게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참으시오. 정 선생. 소속도 모르고 무림촌에 흘러들어온 자가 감히 반상의 법도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더니, 제 이리될 줄 알았습니다."
그때, 이 무리들의 말을 말 없이 들으며 홀로 술잔에 입을 대던 이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승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