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3화

by 빈자루

앨리스라는 개념이 탄생한 것은 미국의 과학자 제이미 케인러너에 의해서였다. 그는 1871년, 포경 산업이 한창이던 미국 동부 해안의 한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곳의 어른들은 모두 포경업에 종사하고 있었고, 그의 누이와 여동생들을 학대하던 그의 아버지 길버트 케인러너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남긴 회고록에 따르면,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그가 신앙심을 잃지 않고 교육 과정을 이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 테레사 케인러너의 사랑 덕분이었다고 한다. 테레사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그는 전도유망한 젊은 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불행히도 그의 어린 여동생들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다. 이 사건은 제이미 케인러너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 사건으로 인한 죄책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오랜 기간 우울병적인 증세를 보였다.


그가 침대에서 걸어 나와 다시 세상과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제자이자 연구소 직원이었던 피오나 허브슨 덕분이었다. 피오나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제이미를 세상 밖으로 나오도록 보살펴 주었고, 둘은 이듬해 겨울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던 피오나는 제이미를 누나처럼 보살폈고, 그런 그녀의 따뜻한 성정은 병적으로 말라가던 제이미의 영혼을 구원해 주었다. 둘의 뜨거운 사랑은 앨리스라는 어여쁜 여자 아이의 탄생으로 결실을 맺는 듯했으나, 술에 취해 마주 오던 차를 피하지 못한 어느 겨울밤, 피오나와 앨리스는 제이미의 곁을 떠나버리고 만다.


이 일로 사람들은 제이미가 다시 재기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던 1937년 여름,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제이미 케인러너가 뜻밖에도 ‘제이. 케이. 엘로이(J.K. Elroy)’라는 이름의 논문 한 편을 발표한다. 논문의 제목은 단순했다. "앨리스에 관하여." 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단순하지 않았다. 인간의 감정은 파동이며, 그 파동은 일정한 주기의 반복과 간섭을 통해 하나의 ‘존재’로 응고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학계가 이를 허무맹랑한 소설이라 조롱했지만, 몇몇 전자공학자와 초기 인지과학자들 사이에서 이 논문은 서서히 다른 의미로 읽히기 시작했다.

그가 말한 ‘앨리스’는 사람이기도 했고, 이론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기록 장치이기도 했다. 그는 앨리스를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떨림을 기록하는 ‘기억의 방사선계’라 정의했다. 구체적인 장치도, 수식도, 실험도 없었다. 다만 한 인간의 삶에 미친 고통을 파동의 언어로 변환해 하나의 대상으로서 파헤치겠다는 일종의 선언문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고, 또 한동안 그를 잊었다. 하지만 케인러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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