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핀들 바

4화

by 빈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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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을 옮기는 것은 하나의 바다를 탐험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 바다에 무엇이 살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장을 옮기는 것은 도박과 같다. 특히 쪽방에서 밤을 새우고 담배에 쩔어 이른 새벽 문 밖으로 나설 때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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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케인러너의 학문이 널리 퍼질 수 있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이 컸다. 케인러너가 ‘제이. 케이. 엘로이(J.K. Elroy)’라는 이름으로 "앨리스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했을 당시, 독일은 영국, 프랑스와 전쟁이 한창이었다. 히틀러는 미국의 참전으로 연합국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고,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역시 1939년 9월 영국의 대독 선전포고 직후 미국 연안으로부터 멀리 대서양까지를 안전수역으로 설정하는 등 철저한 중립을 지키려 했다.


그러나 상대측 전함의 국적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독일의 잠수함 U-보트는 1941년 10월 10일 상선 호위 임무를 맡고 있던 미국의 구축함 카니에 어뢰를 발사하였다. 그리고 역시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같은 해 10월 31일 미국의 구축함 루벤 제임스 호를 침몰시켰다.


이 사건으로 미군은 2차 세계대전에 깊숙이 개입하게 된다. 당시 미군의 입장에선, 뉴욕을 포함한 동부연안 앞바다에서 활동하던 U-보트를 격침시켜 자국의 상선을 보호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루스벨트는 독일이 에니그마라는 암호생성기를 잠수한 간 통신에 활용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음파 해석과 암호 해독에 유능한 과학자들을 수소문한다. 그 과정에서 제이미 케인러너가 다시 주목받게 된다.


제이미는 U-보트 간의 통신을 간단히 파훼하며, 연합국의 승리로 이끌고, 단숨에 세계의 전쟁 영웅으로 거듭난다. 인간의 언어로서의 감정과 파동. 이제 그의 이론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이미 케인러너는 홀연히 암흑의 장막 속으로 사라진다. 그의 책상에는 오직 "silence".


라고 적힌 메모만이 남아 있었다.




*

2025년 6월 22일 13시 57분. 장소, 스핀들 바.


14시 25분. Doors, People Are Strange.


15시 3분. Beatles, Oh! Dariling.


17시 40분. Pink Floyd,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II).


21시 30분. Taliking Heads, Psycho Killer.


쥐가 말했다.


"그것 봐. 내가 얘기 했잖아. 그 남자는 오지 않을 거라고."


LP판에서는 Iggy Pop의 The Passenger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끔은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시도해 봐야 하는 법이야."


내가 브루클린 브루어리를 목으로 넘기며 말했다. 탁한 흑맥주의 향이 올라왔다.


"자. 어떤 여자가 사무실을 다녀갔어. 이 사진을 전해주더군."


쥐가 말했다.


사진 속에는 아무것도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 그림자는 바닷속에서 느릿하게 움직이는 중인 듯 했다. 해저에 닿아 있으면서도, 헤엄치며 부유하고 있는 듯한. 그 푸른 이미지가 뿜어내는 기묘한 느낌으로 인해, 나는 마치 꿈의 가장자리에 머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뒤를 봐."


사진 뒤에는 필기체로 마구 갈겨쓴 알파벳이 몇 자 적혀있었다.


e l o y


나는 펜을 들어 빠르게 메모했다.



https://www.youtube.com/@%EB%8F%8C%EA%B3%A0%EB%9E%98%EB%8B%A4%EB%A6%AC%ED%81%B4%EB%9F%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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