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나 Apr 11. 2021

엄마의 눈으로 본 죽음의 순간

나는 이상하리만치 이 삶에 그다지 큰 미련이 없었고,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그냥 살아 있으니까 사는 거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단지 헤어짐이 서러울 뿐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헤어짐을 상상하기 시작하려는 그 순간만으로도 이미 눈물이 고여올 만큼 슬퍼져 왔지만, 그 감정은 엄밀한 정의로서 죽음의 반대급부로서의 삶에 대한 애착과는 또 다른 범주의 것이었다.


반대로 엄마는 삶에 대한 애착이 그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바람만 불어도, 풀내음만 맡아도 행복을 느꼈고, 살아 있는 게 얼마나 좋냐고 늘 이야기했다.


그런 엄마에게 왜 남들보다 짧은 시간이 주어진 걸까 하는 생각에 미칠 때면 나는 매번 깊은 곳에서부터 화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차마 밖으로 꺼내놓지도 못한 채 그저 내 안에서 스스로 부서지게 두어야 했고, 그런 악조건 하에서도 그 누구보다 살고 싶어 하는 엄마 때문에 더 속이 상했다.


‘인생은 찰나일 뿐이야 엄마~ 잠깐 왔다 가는 건데 인생 뭐 있어? 미소가 항상 여기가 지옥이고 죽어서 영원한 천국이 펼쳐지는 거랬어’라고 옆에서 자꾸 말해주다 보면 엄마도 혹시나 조금은 이생에 대한 애착을 조금씩이나마 내려놓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막상 엄마가 죽음 앞에 서 있는 순간이 되었을 때, 엄마는 죽는 것 그 자체는 무섭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죽음에 이르기까지 암성 통증을 느껴야 하는 그 과정이 더 무섭고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고, 편안하게 갈 수만 있다면 정말로 다 괜찮다고 했다.


형형색색의 예쁜 환상을 보다가 깨어났던 날 엄마는 그러다가 죽는 건 줄 알았다며, 그렇게 어딘가로 아스-라히 멀어지듯 스리슬쩍 죽음의 세계로 넘어가는 거라면 참 좋겠다고 진심으로 말했다.


토악질을 하던 날에는 아침부터 아빠한테서 급하게 전화가 왔다. 당장 빨리 오라고. 정신없이 달려가 보니 엄마는 그대로 죽는 건 줄 알았다며 간호사한테 계속 딸을 불러달라고 했단다.


“저 지금 죽는 거면 딸내미 빨리 불러주세요. 딸이랑 얘기해야 해요. 아들은 부르면 안 돼요, 걔는 그거 보면 못 살아요”라며 그렇게 나를 찾았다고 했다.




그 날, 조금 진정된 엄마와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엄마는 죽음으로의 경계로 넘어가게 되면 암흑이 펼쳐지지만 그 어두운 터널을 따라서 계속 걸어가다 보면 다시 빛이 나오면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다고 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엄마 본인 생각은 그러하다면서, 그 와중에도 특유의 신중함을 놓지 않고 엄마 생각을 이야기했다.


나는 사실 그때까지 그렇게 생각해 왔던 적은 없었지만 엄마 말을 듣고 보니 엄마의 가설이 꽤 그럴싸하다고 느꼈고, 엄마가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도 그럴 것 같다고 격하게 동의를 표했다.


엄마는 세상에 태어나는 아가들도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이 세상에 어느 날 갑자기 툭 하고 던져지는 걸 보면, 죽는 것도 그렇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일 거라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어떻게든 다 되는 그런 일일 것 같다고 했다.


미처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제야 처음 알게 되었다. 엄마가 생각보다 훨씬 더 죽음에 대해 깊게 많이 생각해 왔다는 걸..


실제 죽음 앞에 선 자의 마음을 차마 짐작도 못할 거면서 엄마 앞에서 쉽게 떠들어댔던 내가 너무 죄스러웠고, 그런 나를 그저 귀엽다는 듯 바라보며 웃어주던 엄마의 표정이 자꾸만 떠올라서 몇 번이고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나던 그 순간은 어땠을까.


내가 보았던 이 곳에서의 임종의 순간이 아니라, 이 세상의 끝 저편으로 넘어가던 그때 엄마의 눈으로 본 죽음의 순간은 과연 어떠했을까. 엄마가 상상 혹은 예상한 그대로였을까?


엄마는, 사람이 죽고 나서 귀가 제일 오래도록 열려 있대, 라는 말도 했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떠나던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엄마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 목소리 톤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며 말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 흰 빛이 보여? 그 빛을 따라가면 돼.


조금만 더 걷다 보면 새로운 세상이 나타날 거야. 그때까지 내가 옆에서 계속 말해줄게. 거기서 조금만 기다려, 엄마.


천국에서의 하루가 여기서의 백 년이라고 하니까, 외할아버지랑 인사하고, 먼저 간 친구들도 만나고, 토리랑도 좀 놀아주고, 그렇게 잠깐만 구경하고 있으면 우리가 금방 갈게. 그러니까 걱정 말고 우리 금방 다시 만나.


엄마 우리 진짜 행복하게 살았다, 그치. 엄마 덕분에 우리 가족이 정말 행복했어. 엄마 전부 다 고마워. 엄마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 Ana_J, 출처 Pixabay


엄마가 흰 빛을 따라 천국에 잘 도착했기를.


그 길이 부디 무섭거나 외롭지 않았기를.


따사로운 빛이 가벼워진 몸과 마음을 감싸 안고 엄마를 사뿐히 데려갔기를.



우리가 그곳에서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커버 이미지 © geralt, 출처 Pixabay

이전 07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 나의 대나무숲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