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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 Mar 23. 2021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 나의 대나무숲

“엄마 몰-래 먹었어, 아빠가 젤리 줘서”


작은 두 손으로 입을 호다닥 가리고는 손가락 너머로 배시시- 웃으면서 말한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이럴 때 ‘몰’과 ‘래’ 사이는 기일게 늘여서 발음한다. 들리는 그대로 적자면 ‘모올래’겠다.


엄마인 나에게 엄마 몰-래 젤리를 먹었다고 아-주 자랑스럽게 말하는 너.


평소에 엄마는 젤리를 안 주는 거니까 뭔가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한 것 같기는 한데, 그래서 왠지 민망하기는 한데, 아빠가 준 거니까 먹어도 되는 것 같기는 하고, 그런데 또 엄마한테 말하고 싶긴 하고, 해서, 애매하게 몸을 살짝 꼬면서 까르르 웃어버리는 너.




오늘 누군가와 이야기하다가, 내가 너에게 한 가지 물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엄마와의 관계’라고 답을 했어.


살다 보면 때로는 심지어 나 자신에게까지 진실을 속이게 되는 때도 있으니, 나 아닌 사람에게 말하고 싶지 않거나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생기지 않을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엄마는 시시콜콜한 수다부터 인생의 커다란 의사결정까지 웬만하면 엄마의 엄마에게 모두 다 말하고 싶어 하는 딸이었어. 어디 가서 친구들한테도 말 못 할 솔직한 심정, 때론 부끄러운 내면까지 낱낱이 꺼내놓을 수 있는 사이였지.


엄마는 내가 똑같은 이야기를 아무리 많이 해도 처음처럼 들어주고,  기분과 생각이 어떤지 매일매일 궁금해해 주는  인생 최고의 친구였거든.


© scoutthecity, 출처 Unsplash


그때 나는 우리가 성향이 참 잘 맞는 소위 ‘베프’로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났다거나, 호흡이 완벽하게 잘 맞는 대화 상대를 우연히 한 가정에서 만나게 되었다거나, 혹은 대화를 많이 하다 보니 서로가 익숙하고 편안해져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줄로만 알았었는데,


엄마를 보내고 아기를 낳고 보니,


엄마가 내 삶을 하루도 빠짐없이 궁금해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동력은, 엄마가 엄마였기 때문이었어.


엄마만큼 내 인생을 소중히 여겨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는 거더라고.


엄마니까 내가 찰나에 시무룩한 낯빛을 비추고 나가면 종일 먹구름이 낀 날씨처럼 걱정스러웠던 거고, 엄마니까 내가 신이 나 하는 것 같으면 똑같은 이야기를 백번씩 하는 그 모습조차 사랑스러워서 계속해서 맞장구를 쳐주었던 거야, 또 해보라고.


엄마가 지금 세 돌 안된 네게 그러는 걸 엄마의 엄마는 엄마가 서른이 넘도록 똑같이 했던 거야.


이거 봐 이거 봐, 나로서는 이거 놀라운 발견인데 남들은 관심 없을 소소한 차이라 딱히 공감받지 못할 이런 이야기조차 나는 엄마랑 제일 먼저 나누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져서 이렇게 타자만 두드리고 있는거야.


엄마,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고 있을까?


늘 궁금해. 이것조차 엄마랑 얘기하고 싶은데. 도돌이표야 맨날ㅎㅎ





네가 ‘몰래’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고 ‘비밀’을 제대로 지키는 날이 정말 금방 오겠지?


앞으로 혹여나 엄마한테 말하기 어려운 것들이 생기더라도, 부디 엄마한테 몰-래 말해주라, 오래오래. 


© YHBae, 출처 Pixabay


내가 너의 대나무숲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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